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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우리의 눈이 깨끗하게 보일 때까지

신앙 재건: 새 시대에 걸맞은 기독교 만들기⑤

by Tim Keller2022-11-04

신앙 재건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다. 우리가 처한 세상에서 삶을 위한 신앙이 더 강화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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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재건: 새 시대에 걸맞은 기독교 만들기


1. ‘신앙 해체’ 현상

2. 걸어 다니는 나무 같은 사람

3. 해체: 무너뜨림

4. 해체: 세움

5. 신앙의 재건이 일어나는 때

6. 신앙의 재건 그리고 오늘날의 문화

7. 두 번째 만지심


6. 신앙 재건, 그리고 오늘의 문화 


지금까지 살펴본 신앙 재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각자가 직면한 세상의 변화를 감당할 만큼 그들의 신앙이 성숙하지도 또 충만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고통받는 사람들은 종종 믿음이 좋으면 세상에서 고통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믿음은 고통으로 가득한 현실 세계를 만나는 순간 유지될 수 없다. 지도자의 타락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심각한 범죄를 거의 저지르지 않는 매우 선한 사람과 밥 먹듯이 죄를 짓는 매우 악한 사람으로 나눠진 상상 속 세계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현실 세계와의 만남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기독교에 호의적이지 않은 문화가 던지는 회의적인 질문에 흔들리는 사람들도 신앙을 재고하고 변화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이 모든 경우를 통틀어 “변화하는 세상”(change in worlds)이 가져오는 결과는 다음 둘 중 하나이다. 우리로 하여금 아예 믿음에서 완전히 떠나도록 하거나 아니며 더 온전히 성경적이고, 내적으로 일관성이 있으며, 경험적으로 진정성 있고, 나아가서 지적으로도 견고한 믿음을 새롭게 다지게 하거나이다.


신앙 재건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다. 우리가 처한 세상에서 삶을 위한 신앙이 더 강화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고국을 떠나 이교 문화인 바벨론으로 이주한 유대 민족은 졸지에 소수 민족으로 전락했다. 이질적이고 더 적대적인 세상에서 유대인의 믿음은 오히려 더 정제되고 성장했다. 과거와 전혀 달리 바빌론 유배 후에 그들 사이에서는 우상숭배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사사기를 보라).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신앙 재고의 과정을 겪고 있다.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다양한 미디어와 인터넷이다. 누구나 기독교 신앙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들이 아는 다른 모든 사람이 다 기독교를 믿고 간증을 나누는, 이른바 ‘피난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앙의 재고가 믿음 상실이 아니라 믿음 강화라는 결과를 낳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단지 기독교 신앙의 토대를 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기독교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문화적 내러티브까지도 면밀하게 검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해체를 거친 소위 전-그리스도인(ex-Christians)은 기독교가 ‘나 자신에게 진실’하도록 만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가지가 드러난다. 기독교 신앙을 향해서 과거 제기했던 수많은 의문을 새롭게 가지게 된 믿음을 향해서는 전혀 제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19] 그러니까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순진하고 검토되지 않은 하나의 믿음 체계가 사실상 조금도 진지하게 제대로 고려되지 않은 새로운 믿음에 위해 폐기된 것에 불과하다. 


오늘날 문화적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믿음도 재고해야 하지만, 동시에 ‘의심하는 자신을 의심하는’ 법도 같이 배워야 한다. 암묵적이고 잘못된 믿음과 행여 일차적 믿음으로까지 간주되는 이차적인 믿음을 제대로 해체해야 한다. 더불어서 중요한 것은 기독교 신앙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문화적 내러티브의 정체를 바로 파악하는 것이다. 


나중에 살펴볼 것이 바로 이 믿음에서 누락된 부분(다시 생각하기, 재고)이다. 종교적 믿음을 대신하는 서구 세속 문화의 문화적 내러티브는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거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7. 두 번째 만지심


로이드 존스는 설교 “걸어 다니는 나무 같은 사람”에서 예수님의 만지심을 경험한 맹인이 여전히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실을 지적한다. 만약에 그가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이렇게 말했다면 말이다. “예수님, 이제 괜찮습니다. 이제 됐어요. 더 이상 도와주지 않아도 됩니다. 이 정도도 엄청난 발전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다는 것을 깨끗하게 인정했다. 그 결과 예수님은 그를 한 번 더 터치했으며, 그래서 그는 시력을 완전히 회복하게 되었다. 


로이드 존스는 조언한다. 만약에 보이지 않음과 보임 사이에, 믿음과 불신 사이에 갇혀 있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한다. 우리의 눈이 깨끗하게 보일 때까지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찾고 또 찾아야 한다고. 


하나님께 다 털어놓으세요. ‘주님,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나는 진리를 원합니다.’ … 그렇게 하나님께 간구하세요. 그래서 그분이 당신에게 깨끗하고도 완전한 시력을 주시도록, 당신을 온전하게 해 주시기를 그분께 간구하고 또 간구하세요. 그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은 여러분의 간구를 들으십니다. 그 사실을 지금 여러분에게 증거한다는 건 진정 나의 특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분명히 그렇게 응답하실 것이라고, 그분의 축복받은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나는 진심으로 약속할 수 있습니다.[20] 



[19] 자아 치료의 개념은 사실상 오늘날 사회적 압박(social forces)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이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방법으로서는 심각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다 안다’라는 명제가 마치 애초에 ‘주어진 것’처럼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여졌다.


[20] Lloyd-Jones, Spiritual Depression, 48.



원제: Reconstructing Faith: Christianity in a New World

출처: quarterly.gospelinlife.com

번역: 무제

우리의 눈이 깨끗하게 보일 때까지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찾고 또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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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im Keller

팀 켈러(1950-2023)는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MDiv)와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수학했으며, 뉴욕 맨하탄 Redeemer Presbyterian Church의 초대 목사로 섬겼다. City to City와 Faith & Work, The Gospel Coalition을 설립하여 교회 개척, 복음 갱신, 복음 연합에 큰 역할을 했으며,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와 ‘팀 켈러의 센터처치’ 등 다수의 책과 수많은 컨퍼런스 강연과 설교를 통하여 복음적 변증가로 자리매김하며 전 세계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