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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사실, 감정,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심
by Adam Mabry2023-06-13

“하나님, 도대체 어디에 계세요?”


절망에 빠져 눈물 흘리며 이런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가족의 질병이든, 교회 문제이든, 죄가 초래한 마음의 상심이든,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 하나님이 없는 거 같이 느낀 순간이 적지 않다. 이건 비단 나 혼자만 느끼는 감정이 아닐 것이다. 


살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는 (어쩌면 아주 많은 시점에서) 사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은 상태인데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강하게 느끼기도 한다. 고통과 트라우마와 슬픔을 겪으면, 머리는 하나님이 항상 곁에 계신다고 상기시켜 주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며 멀리 계신 하나님을 비난한다. 사실과 감정, 함께하심과 부재 사이의 불협화음을 해결하지 않고 방치하면, 그나마 다행스럽게 낙담 정도로 끝날 수도 있지만, 최악으로는 믿음 자체가 파괴될 수도 있다.


하나님이 떠나고 없다고 느낄 때,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에만 집착하면 마음이 굳어질 뿐이다


인생이 무너질 때, 내가 의지한 것은 견고한 진리의 발판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facts)은 그 자체가 담고 있는 의미만으로도 측량할 수 없는 위로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인기 있는 어느 팟캐스터의 단골 메뉴 문장을 인용하자면, “사실은 당신의 감정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세상에는 감정을 무시하거나 억누르며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수도 없이 빠진 시궁창이었다.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면서 내 인생을 향한 몇 구절의 성경 말씀을 고백하며 앞으로 더 열심히 살자고 다짐하곤 했다. 이게 내가 늘 하던 방식이었다. 이런 식의 접근 방식은 단순하다. “하나님이 멀게 느껴지니? 아니야. 전혀 그렇지 않아. 하나님은 지금도 네 곁에 계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걸 진짜 느낄 때까지 느끼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살아.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진짜 느끼게 될 테니까. 진리는 네가 느끼는 감정과 아무런 관계도 없어. 그러니까 그냥 믿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얼핏 보면 이런 식의 접근 방식에도 지혜가 담긴 것 같다. 감정이 하나님을 비난할 때, 성경 말씀을 고백하고 담대하게 선포하는 것은 우울증의 수렁에서 벗어나는 여정의 시작으로 아주 좋은 방법이니까.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무엇이 거짓인지를 제대로 분별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백하는 진리는 종종 진리의 그릇된 적용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록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그분이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신다는 성경의 약속을 고백한다면, 나는 진실한 말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내가 감정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나는 어쩌면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거짓을 대면할지도 모른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도, 하나님의 부재가 주는 느낌이야말로 나를 몹시 두렵게 만든다는 점을 깨달을 것이다. 따라서 누구나 감정을 깊이 관찰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곧바로 하나님의 부재라는 거짓말과 대결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곤 한다. 그 결과 우리는 나를 성장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중요한 성경의 진리를 고백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성급한 마음에 감정을 무시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좋은 감정이라는 선물을 마치 무용지물인 양 취급하는 완고하고 굳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감정만 중시하면 불안정한 존재가 된다


감정을 무시하는 접근 방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패하기 마련이고, 결국 나는 모든 통제력을 잃고 감정이 내 존재 전체를 장악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그 결과가 무엇일까?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 고통, 슬픔, 연민, 두려움이 나를 장악하도록 허용한다. 심지어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향해 비난을 퍼붓는 감정까지도 오롯이 나를 잡아먹도록 방치한다. 결국 분노에 빠진 나는 울부짖을 것이다. 그리고 내게 가장 소중한 관계를 해치는 감정의 폭발까지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아담, 당신 지금 꽤나 불안정하게 보이는데.” 그렇다. 그게 바로 요점이다. 불안정이야말로 과잉 감정이 초래하는 결과이다. 


세상에는 감정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감정이 존재 전체를 지배하도록 허용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 연민의 진창 속에서 뒹굴면서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향한 타인의 공감까지도 무기로 만들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진짜 느끼는 게 어떤 건지 알고 싶어? 그러면 내가 뒹굴고 있는 진창 속에 당신도 들어와. 안 그러면 나는 당신이 나를 정말로 공감하고 있다고 도저히 느낄 수 없으니까.” 


서양인 대부분이 감정 표현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강조하는 이야기와 노래, 시트콤 따위에 물들어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의 길이지 결코 교회의 길이 아니다. 하나님이 떠난 것 같아서 분노할 때, 우리는 결국 처음보다 훨씬 더 나쁜 상황에 놓일 뿐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감정과 믿음 


시간과 시련은 세상의 방법이 지혜의 길이 아님을 가르쳐주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부재라는 극심한 상황을 직면한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박국의 시작은 하나님의 오랜 침묵 이후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얼마나 더 살려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까?”(합 1:2)라는 기도로 시작한다. 다윗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시 22:1)라고 탄식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부재가 주는 감정, 심지어 하나님이 자신을 버렸다는 극심한 감정을 경험하고서도 여전히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하나님이 떠난 것 같아서 내 감정이 불타오를 때도, 그는 여전히 일하시며 내가 다가오기를 원하신다. 


감정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은 것은 내게 혁명과도 같은 전환이었다. 하나님은 내가 내 감정을 온전히 느끼길 원하신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감정까지도 들고 당신께 나아오길 원하신다. 하나님이 선하지 않다고 느낄 때도, 하나님이 귀를 막고 있다고 느낄 때도, 심지어 지금 나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고 느낄 때도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당신에게서 원하시는 길이다. 


정체성에 집착하는 거짓된 복음에 빠진 오늘의 문화는 내가 가장 진실하다고 느끼는 것만을 표현하면서 살라고 요구한다. 오로지 그런 표현만이 진실하고 진정성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부재라는,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최악의 경험조차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현실로 바꾸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게 가능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괜찮다. 감정은 당신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려주는 데에만 유용할 뿐이다. 그러나 당신이 감정을 직시하고, 그 감정까지도 하나님께 가져오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이 당신 영혼의 바늘을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가까워진 하나님을 느끼면서 당신은 이제 이전보다 그를 더 잘 알게 된 것이다. 이런 값진 선물은 하나님이 떠나고 안 계시는 것 같을 때만 주어진다. 



이 글은 The Good Book Company와 협약하에 Adam Mabry의 When God Seems Gone에서 간추렸다. 


원제: Facts, Feelings, and the Faithfulness of God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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