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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산을 오르듯 한 걸음 한 걸음
by 박혜영2023-07-08

제천 쪽에 있는 충주호에 가면 구담봉이라는 봉우리가 있습니다. 남한강 뱃길을 따라 단양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이는 경승지로 알려진 곳입니다. 산이라기보다는 절벽 형태로 서 있는 봉우리이기 때문에 아주 가파른 계단으로 힘겹게 올라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보통 계단이라 하면 한글 니은[ㄴ]이나 기역[ㄱ]자 모양 아닙니까? 그런데 여긴 계단 경사가 얼마나 심한지 알파벳 제트[Z]자 모양이었습니다. 위를 쳐다보지도 않고, 아래를 내려다보지도 않고, 오직 발 딛는 계단만 하나하나 보면서 올라갔습니다. 열 개 올라가면 쉬고, 열 개 올라가면 쉬고,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올라갔습니다.


지난 20년을 돌아보면서, 그 계단이 떠올랐습니다. 매번 한 주씩, 한 주씩 오르다 보니 20년이 지났습니다. 20년이란 세월은 올려다보면 먼 미래처럼 보이고, 내려다보면 아득하기만 하여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그런 세월입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났다는 겁니다. 저 자신을 포함해 여러 교인의 나이를 계산해 보면 20년이 지났다는 건 분명한데, 그 긴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났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빨리 지났는지, 책상에 꽂아둔 참된 목회라는 책이 손 타지 않은 채 그대로 있는 걸 보고 알았습니다. 산 지 얼마 안 되어 보였는데, 펼쳐보니 ‘설립 10주년을 맞이하여 참된 목회를 다짐하다’라는 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이게 벌써 10년이 됐다고?’ 어려운 내용도 아니고, 꼼꼼히 읽어야 할 책도 아니고, 다짐까지 담아 놓은 책이었는데도 읽지 않고 있다가 그냥 10년이 지난 것입니다. 느낌은 마치 어제 꽂아둔 것과 같았는데 말입니다.


세월은 그렇게 빨리 흘렀지만, 돌아보는 마음에는 감사함이 넘쳤습니다. 설립 20주년 기념행사 중에 지난 시절의 사진을 보면서 더욱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첫 사진 속 인물들 가운데 많은 분이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저런 이유로 대부분 떠나버렸다면, 그래서 교인 구성에 변화가 있었다면, 20주년을 기념하는 마음이 어땠을까요? 그 세월을 함께 지낸 교인들이 지금 여기 있기에 20년이란 시간이 온전해진 거 아니겠습니까? 20년을 함께했다니!


그리고 기념행사를 위해 예배당을 꽉 채운 지금의 교인들 모습을 보면서 또 한 번 감사했습니다. 계속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늘 수 있었다니! 새로 오신 분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이미 와 있던 분들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이번 산오름교회 설립 20주년을 맞이하여 여러 분이 써낸 글들을 읽어 보면서, 저 또한 산오름교회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교인들이 모이지 않았다면, 들어주지 않았다면, 들은 내용으로 살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면, 산오름교회에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교인들이 과연 가능이나 했겠습니까? 그 여러 글을 읽으면서 이번에는 참된 목회를 기필코 읽으리라는 다짐을 다시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10년을 생각했습니다. 20년 세월이 이토록 빨리 흘렀다면, 앞으로 10년도 그렇게 빨리 흐를 텐데, 과연 산오름교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과제는 분명합니다. 정체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최근에 ‘지속가능한 교회’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성도가 성도를 돌보는 지도력, 그런 지도력에 의한 운영 체계, 정체성을 이어갈 수 있는 후임자, 이 세 가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우리 같은 전통적인 제도권 교회는 이런 세 가지 요소와 기존 교회 제도라 할 수 있는 장로-권사-집사 체계와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야 할 것인지 또 다른 과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든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교회에는 양육과 돌봄을 자기 일처럼 감당하는 훈련된 교인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그러자면 교회를 위해 자신을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하고, 그런 마음을 계발하고 훈련할 수 있는 어떤 과정도 필요할 것입니다. 훈련과 체계와 정체성은 지속가능한 교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동력이 필요합니다. 에베소 교회의 지도력 전환기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능히 너희를 든든히 세우사…”(행 20:32). 교회를 계속 든든히 세워나가려면 “은혜의 말씀”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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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혜영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말씀을 듣고 그 길로 행하자’ 외치는, 안양시 관양동에 있는 산오름교회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