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으로

그리스도인의 삶

신자는 신자와 결혼해야 한다. 왜?
by Matt Boga2023-08-08

지난 수년간 대학생과 이십 대를 제자훈련하면서 끊임없이 받은 질문이 있다. “불신자와 연애해도 되나요?” 그리스도인의 데이트 목적은 배우자를 찾기 위한 것이기에 이 질문은 결국 “불신자와 결혼해도 됩니까”로 바꿔도 무방하다. 


“안 된다”라고 성경은 여기에 아주 간단하게 답한다. 그러나 나는 이 짧은 대답에 많은 사람이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 당신이 이 질문과 씨름하고 있든, 아니면 그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제자훈련시키고 있든, 성경이 왜 불신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명령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말씀을 검토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결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관해서, 그리고 결혼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비전이 얼마나 놀라운지에 관해서 발견할 것이다. 결혼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의 명령 앞에서 불평하기 보다는 그 속에 숨은 보화를 기대하며 갈망하는 게 마땅하다. 


한 몸이 됨으로써 이루는 연합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다 그렇듯, 그리스도인이 불신자와 결혼해서 안 되는 이유에 대한 답도 그 동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마가복음 10:2에서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습니까?”)을 받은 예수님은 과거를 회상하며 말씀을 시작하셨다. 결혼이 태초에 어떻게 설계되었는가를 살펴봄으로 현재에도 그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예수님의 대답도 그 접근법을 취하고 있는데, 우리는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 


태초에 일어난 창조의 정점은 하나님이 그의 형상대로 만드신 유일한 피조물인 인류(남성과 여성)였다(창 1:27). 비록 하와가 나중에 아담의 몸에서 나와서 만들어진 것으로 묘사되지만, 성경이 말하는 결론은 오히려 더 단단하게 하나가 된 두 사람의 모습이다. 성경은 그들을 “한 몸”이라는 결합된 형태로 표현한다(창 2:22-24).


아담과 하와라는 한 몸의 결합은 풀로 붙인 것이 아니라 아예 용접한 상태였다. 나무 조각 두 개를 강하게 붙이기 위해서 우리는 주로 접착제를 쓴다. 접착제는 두 개를 강력하게 하나로 묶지만 궁극적으로 서로 붙어있는 두 개는 여전히 두 개이다. 그러나 용접은 전혀 다르다. 용접이 하는 것은 접착이 아니라 융합이다. 융합에 의해 두 조각은 아예 하나가 된다. 접착제로 붙인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각각의 금속이 녹아서 아예 새로운 것으로 다시 태어난다. 금속이 녹는다는 것은 기존의 모든 특징을 포기한다는 의미이다. 


결혼이 이와 비슷하다. 단지 남자가 주도한 계약에 따라서 결합한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결혼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언약에 따라서 새로운 창조물이 되기 위해서 융합된다. 물론 창세기 3장의 타락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결혼 생활까지도 영원히 바꿔버렸다. 


원칙의 목적


타락의 여파로 성경의 구속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죄 많은 인간의 손에서 결혼은 이제 추악한 일탈을 겪는다. 


족장들의 실패를 지나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광야로 나간 하나님은 그들에게 결혼에 관한 법을 주셨다. 이방 여자들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도망쳐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을 우려한(출 34:11-16) 하나님은 앞으로 정복할 땅의 딸들과 결혼하지 말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단단히 명령하셨다. 이 명령은 신명기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반복된다(신 7:3-4). 그리고 느헤미야는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포로들에게 선포된 10장의 언약 갱신 의식 과정에서 이 주제를 다시 강조한다. 


이 명령이 21세기 서양인의 귀에는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지한 하나님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문제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순결한 혈통이 아니라 순결한 예배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순결하게 예배드리는 것을 중시한다. 그리고 이 명령의 중요성은 솔로몬 왕의 생애에서 생생하게 드러났다. 


솔로몬: 케이스 스터디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은 오로지 하나, 백성을 인도할 지혜였고 그 사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왕상 3:10). 하나님은 상으로 그에게 세상이 알지 못하는 부와 지혜를 주셨다(왕상 4:29-34). 온 세상 사람들이 그의 지혜와 다스림을 기이히 여기고 그로 인하여 여호와를 송축하였다(왕상 10:1-10). 그러나 비극적으로 솔로몬은 그를 여호와에게서 돌아서게 한 많은 이방 여인과 결혼했다. “솔로몬은, 자기의 주 하나님께 그의 아버지 다윗만큼은 완전하지 못하였다”(왕상 11:4).


하나님의 풍성한 지혜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던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과 결혼함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참된 예배에서 여전히 돌아섰다. 나는 솔로몬과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 주변의 이야기지만, 나는 여태껏 믿지 않는 배우자를 만나서 믿음이 더 깊어지고 주님과 더 가까워진 그리스도인을 만난 적이 없다. 불신자와 결혼한 그리스도인은 사실상 세상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길을 거부하는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은 단지 불경건한 길에 들어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하는 세상과 융합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스라엘 이야기가 아닌가? 교회는 다르지 않을까?’


구속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옛 언약으로 정의되는 이스라엘이라는 지정학적 실체를 초월한다. 따라서 새 언약으로 정의되는 교회 시대에도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결혼은 변하지 않았고 하나님도 변하지 않았다. 비록 그리스도의 왕국은 물리적 경계로 정의되지 않고 대신 땅 끝까지 확장되었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여전히 “거룩한 나라”이며 그분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도록 부르심 받았다(벧전 2:9, 15).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로 이 결혼 윤리를 되풀이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불신자와 결혼한 상태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경우라면 이혼하지 말라고 말한다(고전 7:12-17).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결혼인 경우에 그 자체로 인정하신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미혼자를 향한 그의 명령은 전혀 다르다. 반드시 “주 안에서만” 결혼해야 한다는 것이다(고전 7:39). 교회에 대해서 보다 더 광범위하게 설명하는 다른 서신서에서 바울은 우리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매지 말아야”(고후 6:14) 한다고 말한다. 


결혼의 최고 목적


우리가 결혼을 갈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교제일 수도 있고, 함께 정착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좋은 사람”을 찾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이것이 나쁜 욕망은 아니지만, 우리는 모든 욕망을 계시된 하나님의 뜻 아래 두고 그분의 목적에 따라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결혼의 목적은 무엇인지 우리는 쉬지 않고 물어야 한다. 


돛이 올라간 배는 의도하든 아니든 바람을 타고 떠내려가기 마련이다. 배는 그렇게 움직이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결혼도 다르지 않다. 불신자와 평생을 약속하고 서로에게 충실하며 가정을 꾸리게 되면 누구라도 세상 바람에 휩쓸릴 것이다. 하나님은 결혼제도를 사랑하신다. 불신자도 얼마든지 좋은 결혼생활을 할 수 있고, 불신자 간의 결혼을 통해서도 많은 선을 행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단지 결혼이라는 바람을 타고 항해하는 데에 만족하면 안 된다. 결혼이라는 배를 만드신 분을 기쁘시게 하는 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일반적인 그리스도인의 삶과 마찬가지로 결혼도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리고 오로지 이 목적을 위해 살 때 우리는 기쁨을 발견할 것이다. 남편이 자기 자신을 죽이고 또 아내가 십자가와 같은 남편의 리더십에 사랑으로 복종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에 드러날 것이라고 말한 바울의 말씀을 기억하자(엡 5:21-33). 결혼 생활에서 남편과 아내는 예수님의 사랑의 산 증거로서 함께 성장해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지 않는 불신자와 어떻게 예수님을 중심에 둔 결혼의 성약을 맺을 수 있겠는가? 그런 결혼 생활이 어떻게 하나님이 예비하신 심오한 결혼의 신비를 온전히 반영할 수 있겠는가? 


연합이라는 목적을 삶의 정면과 중앙에 위치시키자. 결혼에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바른 방법일까? 하나님의 영광과 명성,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더 멀리까지 복음을 전하겠다는 열망을 중심으로 결혼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배우자는 오늘도 믿음의 경주를 인내하면서 달리도록(히 12:2) 돕는 사람, 하나님을 더 경배하도록 돕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복음을 세상에 선포하도록 도와줄 사람이다. 믿는 자는 믿는 자와 결혼함으로 하나로 연합한다. 



원제: Christians Should Marry Christians?but Why?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

작가 Matt Boga

매트 보가는 Reality Church of Stockton의 협동 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