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출현
by 박혜영2023-10-06

우리가 믿기 전에 먼저 ‘믿음’이 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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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사 7:9). 믿는 자란 서 있는 자이며, 흔들리지 않는 자입니다. 믿음은 계속 서 있는 것입니다. 여기선 믿는 자의 의지와 태도를 강조하는 느낌입니다. 분명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의지와 버티는 태도가 ‘믿음’의 전부는 아닙니다. 처음에 서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만, ‘당신은 처음 어떻게 서 있게 되었습니까?’ 그 질문도 중요합니다.


“아브람[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라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본문의 중요성은 “믿음에 대하여 성경이 명백하게 언급하는 최초의 것”(게할더스 보스)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물론 히브리서 11장은 아브라함 전에 이미 아벨, 에녹, 노아를 믿음의 인물로 소개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창세기는 그들이 등장하는 본문에서 ‘믿음’이라는 단어를 등장시키지 않다가, 15장 6절에서 비로소 처음 등장시켰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믿음의 출현을 “명백하게” 소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그냥 믿은 것일까요? 무조건 믿었을까요? “믿으니”라는 말은 히브리어 ‘아만’ 동사의 ‘히필’ 형태입니다. 히브리어 ‘아만’에는 ‘충성, 성실, 진실’이라는 기본 의미가 있으며, 우리가 교회에서 많이 쓰는 ‘아멘’이 바로 이 히브리어 동사 ‘아만’의 파생어입니다. 그런데 이 ‘아만’ 동사가 ‘히필’ 형태로 되어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이는 ‘능동사역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원인이 제공되었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창세기에는 ‘아만’의 히필 형태가 두 번 더 나오는데 이렇습니다. “너희 말째 아우를 데리고 오라. 그리하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창 42:20), “야곱이 그들을 믿지 아니하므로 기색하더니”(창 45:26). 믿기 위해서는 저쪽에서 뭔가 신실함을 제공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평소에 믿음직스럽지 못했기 때문에 아비 야곱을 믿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중요한 특징은 무조건 믿는 게 아니라, 어떤 소식이 나에게 와서 ‘진실함’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은 히브리어 문법 형태로 한 번 더 강조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지 보여주기 위하여 히브리어 “여호와”에 ‘어디에서’라는 의미를 담은 히브리어 전치사 ‘베’가 붙어 있습니다. “그 전치사는 이 확신이 생겨난 곳이 다름 아닌 인격적 여호와임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게할더스 보스는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잘 믿거나 열심히 믿기 전에 이 믿음을 촉발하는 어떤 인물이나 사건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아브라함의 경우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으니”라는 말이 나오기 전, 먼저 하나님에게서 ‘믿음’이 아브라함에게 와야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이란 말이 아브라함이 처음 등장하는 창세기 12장이 아니라, 15장에 가서야 나오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12-14장까지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기 전에 먼저 ‘믿음’이 와야 합니다(참고. 갈 3:23, 25).


이렇게 성경이 말하는 믿음에는 하나님이 먼저 주도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그걸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니…”(창 24:27).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성실하게 대하셨기 때문에, 그걸 보는 종에게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본 것을 말하였지, 그저 믿어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야곱도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성실]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니…”(창 32:10). 아브라함의 믿음이 등장하기 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직스러운 분임을 보이셔야 했습니다. 이에 대해 아브라함은 ‘아멘’으로 응답하였으며,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우리에게 그러한 ‘아멘’의 반응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수 24:14). 그렇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자기가 믿는 대상을 향한 “성실과 진정”이 있습니다. 믿음직스러운 모든 사람은 다 그렇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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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혜영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말씀을 듣고 그 길로 행하자’ 외치는, 안양시 관양동에 있는 산오름교회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