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의 네 원칙
by Chris Watkin2023-10-10

THE KELLER CENTER  


변증에 관해서만은 받을 수 있는 모든 도움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서 기독교 신앙을 변론하고 옹호할 때 내가 꼭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네 가지 현명한 원칙은 다음과 같다.


딱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1. 변증은 ‘우리’ 문제이다. ‘내’ 문제가 아니다. 


변증을 잘하려면 서로가 필요하다. 우리 중 누구도 모든 문제를 원스톱으로 다 처리할 수는 없다. 철학자인 나의 주특기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는 동시에 이면에 숨겨진 가정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내게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전달 방식에 관해서 요청한다면, 그건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예를 들어,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거창한 사상의 실제적인 결과를 연구할 뿐 아니라 때때로 그러한 사상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정치와 경제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갖춘 그리스도인이 필요하다. 모두가 힘을 합칠 때에만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완전한 사례를 개발할 수 있다.


변증을 위해서는 나와 다른 형제자매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사나운 불독(바리새인과 싸우는 그리스도처럼)도 필요하지만 온순한 콜리(우물가의 여인과 함께 있는 그리스도처럼)도 있어야 한다. 젊은이와 노인이 다 필요하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흑인과 백인, 아프리카, 동부, 서부의 그리스도인, 모두가 힘을 합칠 때 비로소 우리는 나와 다른 그리스도인의 감수성과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변하지 않고 영광스러운 복음을 제시할 수 있다. 


2. 변증은 ‘무엇’만이 아니라 ‘어떻게’에 관한 것이다. 


당신이 하는 말은 단지 변증의 한 측면일 뿐이다. 똑같은 주장이라도 표현 방식에 따라 기억에 남을 수도 있고 평범하게 끝날 수도 있다. 눈에 띌 수도 있지만 전혀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문장이야말로 진리의 날카로움을 제대로 전달하는 최고의 방식이다. 나는 C. S. 루이스, 재키 힐 페리(Jackie Hill Perry), 그리고 프랜시스 스퍼포드(Francis Spufford)에게서 이 점을 배웠다. 그들은 진실이 스스로 노래하도록 하는 아름다운 문장 작성에 시간을 투자했고, 그 결과 그들의 글은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아마도 지난 수백 년 동안 G. K. 체스터턴만큼 이 일을 잘 해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원한 사람에서 그는 “익숙함이 애정이 아닌 경멸을 불러일으킨다면, 익숙함을 차라리 낯설게 만드는 게 더 낫다”라고 말한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할지 뻔히 안다면 사람들은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체스터턴의 생각은 이것이다. 기독교 예방 접종을 너무 많이 받은 서구인들은 대부분 자신이 기독교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기에 차라리 유럽을 생소한 극동의 환경이라고 가정하고 복음을 전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기독교 이야기이기에 비난받는 환경에서는 차라리 기독교를 이교 이야기로 풀어냄으로써 관심을 받도록 하는 게 나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예수님의 많은 비유 속에서 발견하는 탁월함이다. 어떤 비유 속 일부 행동은 옳지 않다. 또 어떤 태도는 우리의 고개를 갸웃거리게도 만든다. 오래되고 또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라. 하나의 참된 복음을 전하라. 하지만 관점을 바꿔서 말해보라. 불편할 정도로 신선하게 설교하라. 이전에 다 들어서 아는 이야기라고 떠나는 교인들이 결코 생기지 않도록 설교하라. 


3. 변증은 또한 변증하는 사람의 ‘인격’에 관한 문제이다.


그리스도의 대사가 되는 데에는 말보다 더 중요한 측면이 있다. 바로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의 사람됨(character)이다. 나는 언젠가 완고하고 지적으로 뛰어난 무신론자 친구를 데리고 가서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와 케임브리지 철학과의 무신론자 사이의 토론을 듣도록 한 적이 있다. 철학과 교수는 냉철했고, 목표가 명확했으며 무엇보다 완벽하게 일련의 주장을 전개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잔인한 방식으로 크레이그의 자격을 비웃었다.


토론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완고하고 회의적인 친구에게 토론 감상을 물었다. 놀랍게도 그는 비겁한 공격을 받은 크레이그가 반격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가장 인상 깊은 점으로 꼽았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크레이그가 더 맘에 든다고 말했다. 그날 드러난 크레이그의 사람됨은 그이 말보다 더 큰 울림을 냈다(벧전 3:15).


변증이라는 현장을 벗어나서도 인격은 여전히 중요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는 강력한 주장과 빛나는 산문으로 기독교를 옹호하던 몇 명의 저명한 기독교 변증가의 극적인 죽음을 목격했다. 안타깝게도 이들 변증가는 하나같이 세 번째로 중요하고 또 타협할 수 없는 특성인 경건을 놓치고 있었다.


기독교의 진리가 아무리 탁월한 표현으로 강력하게 묘사된다고 하더라고, 그 말이 지속적으로 죄를 지으면서도 전혀 회개하지 않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다면, 그건 카드로 만들어진 집처럼 단숨에 무너질 것이다. 누구나 죄를 짓는다. 그러나 다 똑같지 않다. 우리는 회개하고 투쟁하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과 통탄할 만한 잘못을 탐닉하고 심지어 숨기면서 사는 삶의 차이를 안다. 오, 주님, 우리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4. 오늘날 변증은 동시에 내부자와 외부자가 되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피어스 테일러 힙스(Pierce Taylor Hibbs)가 곧 출간될 책에서 “내부자(insider)-외부자(outsider)”라고 표현한 그 입장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이에 대한 훌륭한 모델 중 하나가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성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 문화를 관찰한 내부자였다. 그는 로마에서 극진한 존경을 받는 키케로가 왜 그토록 훌륭한 작가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단지 로마를 무너뜨리는 방법에 대해서 비겁하게 작성한 목록을 읽어 내려간 게 아니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가 로마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독자가 깨달을 수 있는 방식으로 로마에 대해서 썼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철저한 외부자였다. 생각과 감정이 성경적 시각에 맞춰진 사람의 눈으로 로마 문화를 바라보았기에, 로마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기이함과 특이함도 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내부자(맥락화하라! 관련성을 가지라!)라는 게 더 자연스럽고, 또 누군가는 외부자 (선포하라! 충성하라!)가 더 자연스럽다. 변증을 실천하는 데에 있어서 당신에게는 내부자-외부인의 어떤 측면을 더 노력해야 하는가? 


이것이 내가 변증과 관련해서 내가 배우려고 노력하는 네 가지 원칙이다.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 나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변증의 사명을 실천하는 여러분에게 이 네 가지 원칙을 구현하고 실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란다. 



원제: 4 Principles for Practicing Apologetics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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