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기독교에서 가능성을 찾자
by 김선일2023-11-06

선교한국의 희망을 찾아서


현재 대한민국은 세속화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모든 종교 인구가 계속해서 감소한다. 한국갤럽에서 2022년에 9,18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종교인은 36.6퍼센트이고, 무종교인이 63.4퍼센트이다. 조사 대상의 약 2/3가 종교가 없는 셈이다. 연령이 낮을수록 종교인의 비율은 더 떨어진다. 20대는 19.1퍼센트, 30대는 24.5퍼센트로 평균과 큰 차이를 보인다. 각 종교(개신교, 불교, 천주교)의 인구도 모두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비종교화 상황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있다. 20대와 30대를 기준으로 종교별 인구 비율을 비교하면 개신교가 불교와 천주교보다 훨씬 높다. 20대의 개신교 인구는 11퍼센트로서 불교(3.5%)보다는 3배, 천주교(4.5%)보다는 2배 이상이 높다. 30대에서도 개신교 인구는 14.6퍼센트인데, 이는 불교(4.7%), 천주교(4.8%)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40대에서도 개신교인의 비율이 가장 높지만(21.5%), 그 차이는 줄어든다(불교=15.6%, 천주교=7.5%). 그러나 50대로 가면 불교(27%)가 개신교(17.8%)를 훨씬 상회하고, 60세 이상에서는 그 차이가 더 커진다(불교=33.5%, 개신교=21.3%). 


어쨌든 젊은 세대에서 종교를 갖는 이들 가운데는 그리스도인이 가장 많다. 물론 이들에게서도 사실상 기독교 인구는 계속 줄고 있으므로, 이러한 차이가 마냥 긍정적이지는 않다. 비록 종교를 가진 2030에서 개신교인이 제일 많지만, 그 비율은 이전 조사에 비해 현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20대의 개신교인 비율은 2017년 조사에 비해 9.8퍼센트나 감소했고, 30대는 5.5퍼센트가 줄었다. 전체적인 비종교화, 탈교회 현상은 2030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위의 통계에 대해서는 한국 기독교 분석 리포트: 2023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의식조사를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가진 2030세대에서 여전히 기독교 인구가 가장 높다는 사실은 선교적으로 고려해야 할 가치가 있다. 기독교는 젊은 층에서 가장 활동적이고 친밀한 종교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마도 신앙이나 영성에 관심을 지닌 젊은이가 있다면 주변의 교회나 선교단체를 먼저 떠올릴지 모른다. 교회는 사찰이나 성당에 비해서 젊은이들에게 접근이 가장 수월한 종교적 공간일 것이다. 가시성과 접근성 모두 높으며, 젊은 또래의 신앙 공동체도 활발한 경우가 많다. 


개인주의를 넘어서


한 인터뷰에서 캠퍼스 선교단체 간사는 최근 대면 수업이 전면 재개되면서 유례없는 상황을 경험했다. 믿지 않는 청년들이 자기 발로 기독교 동아리 방을 찾아온 것이다. 대학 축제 때 그 간사가 사역하는 동아리 부스를 차려 놓고 모임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때 좋은 인상을 받았는지 한 번도 교회에 다닌 적 없는 청년들이 직접 신앙 공동체를 찾아왔다. 이들은 코로나가 터진 직후 신입생으로 왔기 때문에 처음으로 캠퍼스 현장 수업에 참여했다. 그동안 대학생 공동체를 경험한 적 없는 이들이었는데, 대면 수업 이후 재개된 교내의 모임이나 동아리는 가볍게 즐기고 생각 없이 노는 분위기가 많았다. 그런데 이들은 그와 같은 전형적인 또래 문화와는 달리 진지하고 탐구심이 많은 구도자 유형에 가까웠다. 이 청년들과 대화해 본 간사는 요즘 청년들이 자유로움 속에서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들이 겪는 외로움이나 관계의 문제가 하나님을 알고 변화의 여정에 들어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하의 인터뷰 내용들은 2023년 10월 5일 국민미션포럼의 ‘한국교회 다음세대 희망터치’ 발표문에 근거한다.)


현대 젊은이들의 문화는 개인주의를 기본값으로 한다. 혼자 사는 게 익숙하고 다른 이들과는 아무리 친해도 적절한 경계를 긋는다. 하지만 인간은 개인주의 영토 안에서 오롯이 살아갈 수는 없다. 개인이 중요한 시대인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주의에 편승하는 것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선교가 아니다.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그러면 젊은이들은 어떠한 공동체를 원할까?


안전한 공동체


인터뷰에 응한 여러 청년은 ‘안전’이라는 단어로 그들이 열망하는 공동체의 성격을 규정한다. 안전은 불안과 위험에 대응하는 단어다. 청년세대는 불안하다. 생계의 문제로 불안하고, 정서적으로도 불안하다. 기후 위기, 폭력, 사회 갈등의 증폭으로 인해 위험을 느낀다. 그럼에도 교회는 아직 안전한 곳으로 보이지 않는다. 때로 기독교 지도자들의 발언과 행태가 위험을 조장한다. 교회에서 전하는 하나님은 편파적이고 무섭게 느껴진다. 


외로움과 불안을 느끼는 청년들은 안전한 공동체를 찾는다. 여러 청년이 자신을 따뜻하게 받아주고 안전함을 느꼈던 교회에 대한 기억을 회상한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으나 한때 신앙을 잃고 스스로 불신자로 간주했던 한 청년은 외로운 유학생 시절, 자신을 살뜰히 보살펴 준 한인교회의 경험으로 다시 신앙과 기도의 의미를 회복했다. 또 다른 청년도 한동안 “가나안 성도”로 지내다가 자기를 잊지 않고 문자로 안부를 묻는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보채지는 않는) 교회 어른이 고마워서 그가 섬기는 청소년부에 보조교사로 참여하다 신앙을 다시 회복한다. 교회를 멀리 한 자신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친절히 기다려 주다가 결국에는 돌아온 자신을 환대하는 어른들에게 감명을 받는다. 


젊은 세대가 원하는 안전한 공동체를 마련하는 일에는 기성세대의 역할도 중요하다. 사회에서 회자되는 세대 갈등론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발붙일 자리가 없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의 신앙 유산을 이어가고 싶어 한다. 단, 환대와 존중의 안전한 공동체 안에서 그렇다.


삶으로 침투하는 영성


공동체만으로 젊은이들의 신앙이 온전히 회복되진 않는다. 청년의 시기는 존재의 외로움과 허무감을 겪는다. 공동체를 통한 관계와 정서적 위로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현실과 미래를 더 큰 세계관 안에서 마주해야 한다. 교회는 청년세대의 가볍고 재미있는 문화를 복제만 할 것이 아니라, 인생과 세계에 대한 기독교적인 설명 체계를 제공해야 한다. 오랫동안 취업 준비를 하면서 낭패감에 시달리던 한 청년은 자기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믿음을 넘어서 나의 삶을 계획하시고 지금 자신의 상황도 그분의 타이밍 안에 있다는 하나님의 섭리를 배우면서 큰 위로와 더불어 ‘감각의 확장’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는 인식의 전환을 통한 삶의 재구성이다. 인식의 전환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앎에서 비롯된다.


싱클레어 퍼거슨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삶을 ‘교훈의 본’(롬 6:17)을 따라 완전히 새로운 모양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더 나아가 복음 교리가 그리스도인에게 확실히 각인되지 않으면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런 흔적이나 영향을 남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성도의 삶, 23). 젊은이들이 교회에 원하는 것은 말랑말랑한 위로나 재미있는 경험만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존적 상황을 해석하고 인생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하는 견고한 답을 원한다. 성경의 큰 맥락을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기도와 봉사만 요구하지 말고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이 언어와 상황에서 들려지도록 전달하는 일은 세대를 막론하고 모든 사역자가 끌어안아야 할 과제다. 


인간은 생애 주기에 따라 위기와 숙제를 마주한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20대는 주체적 성인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자아와 정체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30대는 자립과 가족의 구성이라는 과제를 갖는다. 그때 그들 곁에 누가 선한 조력자의 역할을 할 것인가? 누가 가장 견고하고 분명한 진리를 친절하게 들려줄 것인가? 복음과 그 복음대로 살아가는 공동체는 모든 세대를 막론하고 기독교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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