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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학에서 아름다움은 반드시 인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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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Matt Capps /  작성일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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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Nathan Dumlao on Unsplash

작년에 나는 ‘크리스천이 신학에서 아름다움을 무시하는 5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리고 아름다움에 관한 기독교적인 연구의 첫걸음을 제안하고 싶다.


아름다움이라는 주제에 관한 대부분의 생각과 글은 난관에 봉착해 있다. 신학과 철학 및 전문 분야로서의 미학을 전공한 사람들 때문이다. 심지어 이 철학자들 중에는 아름다움은 폐기되어야 하는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반드시 인식되어야 한다.


크리스천은 아름다움에 관해 뚜렷한 기독교적 관점을 공급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이는 자주 등한시되는 주제이지만 이 세계와 하나님의 말씀은 강변하고 있다. 아름다움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주신 선물이다. 


아름다움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


크리스천에게 있어 아름다움에 관한 연구는 계시 교리에서 출발한다. 왜냐하면 기독교 계시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알려질 내용을 설명하고 알려질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하신다. 칼 헨리(Carl F. H. Henry)의 말처럼, “하나님은 계시의 조건과 이유만이 아니라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드러나게 할 것인지에 관해서도 결정하신다.”


계시 교리는 자신을 능동적으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여기에는 그분의 아름다움이 포함된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그 모든 것 위에 인간을 두신 일은 아름다움에 대한 연구가 나아갈 두 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첫째, 하나님은 아름다움의 근원이시다. 둘째, 인간이 아름다움과 미적 경험에 몰두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일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특권적인 성찬식과 다른 피조물에게 없는 경험을 주신다. 저녁 노을의 위엄 앞에서 생각에 잠기거나 혹은 모차르트의 작품을 주체적으로 즐기는 골든 리트리버를 찾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아름다움을 즐기고 경험하는 능력은 하나님이 인간에게만 주신 특권이다.


아름다움과 일반 계시


역사적으로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이 자연, 문화, 인간의 이성, 선한 행위 등 일반 계시를 통해 미적 진리와 아름다움을 계시하신다고 믿어 왔다. 대부분의 기독교 신학자들은 일반 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얻을 수 있지만 그 범위, 일관성, 깊이에 있어서는 제한된다고 생각하곤 했다. 죄의 효력은 항상 일반 계시를 파괴한다.


일반 계시가 본질적인 권위는 아니지만 신학 안에서 고유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도 사실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에 대한 기록은 하나님이 “매우 좋다”라고 7번이나 선언하시며 창조의 순간을 기뻐하셨다고 명백하게 보여 준다. 이는 그분이 만드신 피조물이 즐겁고 유쾌할 만한 결과라는 뜻이다. 따라서 최초의 창조물을 기준으로, 이 선언은 하나님이 판단하시기에 그분이 만든 것들이 미적 특성을 본질적으로 내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성경은 땅, 나무, 돌 등 창조의 요소들을 아름답고 유쾌한 것으로 자주 묘사한다.


그렇다면 자연 세계의 아름다움은 인간에게 실질적으로 무엇을 알려 주는가?


아름다움과 특별 계시


일반 계시 속 아름다움과 죄로 인한 영적 무감각이라는 현실은 특별 계시, 즉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인간은 타락으로 인해 일반 계시를 제한적이고 왜곡적으로 인식하게 되므로, 성경을 통해 일반 계시를 알려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시편 19편 1-4절은 하나님이 창조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셨음을 명확히 알려 주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또한 바울 역시 하나님이 창조 질서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셨음을 확실히 선포한다. 이는 루스드라(행 14:15-17)와 아덴(행 17:22-32)의 이방인을 향한 그의 연설에서 잘 나타난다. 더불어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도 이 사실을 알렸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롬 1:19-20).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만물은 하나님의 예술 작품이다. ‘시’라는 문학이 저자의 분명한 설계와 의도를 담고 있듯이 하나님은 우주라는 강력한 시를 통해 자신을 분명하게 드러내셨다. 시편 19편의 하늘에서부터 마태복음 6장의 백합화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이 창조하신 피조물의 풍부한 아름다움에 반영되어 있다.


아름다움과 성경


아름다우신 하나님을 인간에게 계시하는 책인 성경은 ‘그 자체로’ 위대한 아름다움을 지닌 중요한 문학 작품이다. 성경은 미학의 중요성을 그 기록뿐만 아니라 특유의 문학적 형식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말한다.


아름다운 문학적 전통들이 성경 전체에 존재하는데 심지어 사실 위주로 건조하게 기록된 역사 부분에서도 그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평행법 같은 문학적 구조들, 이야기 속 세심하게 만져진 표현, 예술적 복합성을 지닌 시는 하나님의 계시 속에 자리한 아름다움의 중요한 역할을 증명한다. 릴랜드 라이큰(Leland Ryken)이 말했듯이, 성경에서 아름다움이 중요한 몫을 담당하지 않는다면  “성경의 작가들이 정교한 패턴을 지닌 운문 형태로 기록하거나, 혹은 탁월한 솜씨로 간단하고 주의 깊게 이야기를 구성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이끄는 곳


아름다움이 없는 세상에서 발타자르(Balthasar)는 이렇게 선언한다. “남은 것은 단지 존재하는 하나의 덩어리일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 아름다운 것들을 이렇게 많이 만드실 필요가 없었지만, 분명히 그렇게 하셨다.


아름다움이 눈길을 끈다면, 그 아름다움에 주목해 보자. 인간의 내면에 아름다움에 이끌리는 본성이 존재한다면, 그 본성이 우리를 이끌어 가게 해 보자. 이 세계와 말씀은 주권자이며 창조주이신 하나님께로 우리를 부르고 있다.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이 세계의 모든 아름다움은 그 자체를 넘어 하나님의 숨막힐 듯한 아름다움을 가리킨다. 아름다움은 모든 사람을 부르는 강력한 표지판이다. “보라. 참되고 유일한 진리인 하나님은 선하시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In Christian Theology, Beauty Demands to Be Noticed

번역: 이주일

작가 Matt Capps

매트 캡스는 노스캐롤라이나 아펙스에 위치한 Fairview Baptist Church의 담임 목사로 Southea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MDiv)와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DMin)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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