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설교
by 전재훈2023-11-16

천국에 커피가 없을까 봐 걱정될 정도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예전에는 달달한 맛에 라떼나 마끼야또를 좋아했지요. 봉지 커피나 자판기를 이용하면 200원으로 해결될 수 있는 커피를 3,000원 넘게 주고 마셔야 하는 부담감이 커서 아무 때나 마실 수는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사 줄 때 한 번씩 마시던 고급 커피를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제게 주는 상으로 한 번씩 마시곤 했지요.


개척 후 아내와 함께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무 생각 없이 카페라떼 한 잔 들고 차에 올랐다가 타박을 받았습니다. 개척교회 목사가 정신이 있냐는 말을 들었지요. 300원이면 될 커피를 3,000원씩 주고 마실 형편이냐는 것입니다. 그 후 2년 정도 라떼를 마시지 못했습니다. 커피에 대한 한이 맺히고 말았지요. 


그 뒤로 누군가가 밥을 사 준다고 하면 밥 대신에 커피를 사 달라고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초라해 보였을 것 같습니다만 덕분에 제 주변 목사님들이 감사하게도 제게 늘 커피를 권해 주십니다. 


우리 교회 인근에 에스플러스라는 카페가 생겼습니다. 목사님 부부가 하시는 카페이고, 교회에서 가깝다 보니 자주 갑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면, 늘 과일을 내어 주시고, 드립 커피도 한 잔 권해 주십니다. 카페에 앉아 목사님과 담소를 나누면서 과테말라에서 케냐AA까지 다양한 커피를 마시고, 텀블러에 아메리카노 한 잔 가득 담아 나옵니다. 


드립커피를 마시면서 문득 든 생각이 커피는 내려 마시는 것이었는데, 그동안 마셨던 커피는 녹여 먹는 커피였습니다. 인스턴트커피를 마실 때는 티스푼으로 저어서 마셨는데 드립은 그냥 마시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커피는 원두를 사다가 볶고 분쇄하여 머신으로 내리거나, 핸드드립을 해서 내립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커피 원액을 에스프레소라고 합니다. 여기에 물을 타서 마시는 것이 아메리카노이지요. 그러나 원액을 건조하여 가루로 만들면 인스턴트커피가 됩니다. 인스턴트커피는 원액을 건조시킨 것이니 물에 녹여 마셔야 했던 것입니다. 


커피는 맛도 중요하지만 향이 중요한 음료이지요. 인스턴트커피를 만들 때 향이 사라지기 때문에 향을 따로 저장하는 장치를 갖추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만든 가루와 향을 잘 배합시켜서 우리가 마시는 봉지 커피가 만들어집니다.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이런 봉지 커피에는 커피 원액이 10퍼센트 미만인 것이 많습니다. 캔 커피의 경우에는 원액을 1퍼센트만 넣고 커피향을 이용해 감히 커피라는 이름을 도용하지요. 그것도 눈속임하느라 ‘1.00%’라 적어 놓습니다. 


요즘은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시는 목사님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갖추신 분들이 많아졌고, 교회에서 커피 교실을 운영하는 곳도 많습니다. 커피 가격이 로스팅한 것과 분쇄한 것의 차이가 많이 나다 보니, 로스팅한 원두를 사다가 직접 분쇄해서 마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는 아예 원두를 사다가 로스팅해서 드시는 고수들도 많아졌습니다. 예전에는 교회에 초 향기가 많았다면 이제는 커피향이 많아졌습니다. 우리 교회도 주일에 청년이 먼저 와서 커피를 내려놓고 있기에 커피향이 진하게 납니다. 


커피는 그 종류도 굉장히 많습니다. 이름조차 외우기 힘들지요. 커피 원액을 에스프레소라고 합니다. 에스프레소를 기본으로 물을 부으면 아메리카노가 되고, 우유를 넣으면 라떼, 우유 거품을 많이 넣으면 카푸치노, 우유와 초코 시럽을 넣은 것을 모카라고 하구요, 우유와 카라멜 시럽을 넣으면 카라멜 라떼나 카라멜 마끼야또가 됩니다. 에스프레소에 아이스크림을 넣은 것을 아포카토라고 하는데 제가 좋아하는 커피입니다. 그 밖에 우유와 커피의 혼합비율로 도피야나 콘파냐 등이 있지만 별로 대중적이지는 않습니다. 카페 로얄, 아이리시 커피, 카페 깔루아, 파리제 등은 커피에 술을 넣어서 만든 것들입니다. 


커피를 찬물로 오랫동안 내린 커피를 더치커피라고 합니다. 카페인이 비교적 적다고도 하구요. 그 맛이나 향이 진해서 ‘커피의 와인’ 혹은 ‘커피의 눈물’로 불립니다. 일반 카페에서 마실 수 있는 커피 중 제일 비싸기도 합니다. 더치커피에 사이다를 부어 마시는 것을 더치소다라고 하는데요. 저는 한 번 마셔보고 다시는 안 마시는 커피입니다. 그러나 더러 더치소다를 즐기시는 목사님들이 계신 듯합니다. 


커피가 맛과 향으로만 즐기던 시대에서 이제는 눈으로 즐기는 시대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커피아트라고도 불리는 라떼아트의 시대가 열린 것이지요. 라떼의 우유 거품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나뭇잎이나 하트 같은 간단한 것에서, 곰돌이 푸우나 고양이 그림 같은 고난이도의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달인들은 입체 캐릭터도 그려내고 심지어 커피 주문한 사람의 초상화까지 그리는 사람이 있다니 가히 예술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커피가 아무리 종류가 다양하고, 멋지고 예쁜 작품까지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저는 아메리카노가 맛있는 집이 좋습니다. 좋은 원두를 쓰고, 원두에 맞게 섬세하게 로스팅한 다음, 신선하게 내린 질 좋은 커피를 제일 좋아하지요. 이런 기본을 무시한 채, 달달한 맛이나 예쁜 그림으로 내놓는 커피는 금방 질려 버립니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손재주가 좋은 바리스타가 있다면 금상첨화이겠지요. 하지만 그런 분들을 주변에서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그럴 바에는 손재주 있는 분들보다 투박하고 느려도 기본에 충실한 바리스타가 더 좋습니다.


커피처럼 설교에서도 기본에 충실하시고, 손재주도 뛰어나신 설교가들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의 설교를 들으면, 복음적이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참 재밌습니다. 하지만 많은 목사님의 설교는 복음적이다 싶으면 졸립고, 재밌다 싶으면 남는 게 없을 때가 많지요. 설교는 이 둘 사이의 적절한 조합이 필요해 보입니다.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설교의 내용을 이루는 신학을 배웁니다. 하지만 졸업하고 목회 현장에 나오니, 세미나 같은 곳에서 내용보다 스킬을 더 많이 배우게 됩니다. 설교를 구성하는 방법에서, 다양한 설교의 형태, 효과적인 언어 전달법, 미디어 사용법 등 다양한 방법론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정작 설교의 내용은 세미나에서 나눠 주거나, 다른 목사님들의 것을 표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설교의 내용보다 형식이 더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전한다 해도 듣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 내용보다 전달력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설교를 할 때, 교인들이 졸아 버리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졸지 않고 들을 수 있도록 유머나 예화도 자극적인 것을 사용하고, 영상도 틀고, 연극도 보여주고, 원맨쇼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 현실상 목사님들이 설교 준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주는 사례비로 먹고살기 힘들어진 시대라 목회 말고도 다른 일을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에만 전념한다고 해도 일주일에 8번에서 12번 정도 설교해야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전도사님 한 분 없이 혼자서 교회 일을 다 꾸려가야 할 경우, 설교를 위해 책 한 권 읽어내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목사님들이 할 수만 있으면 더 많은 시간을 성경을 연구하고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하는데, 오히려 영상을 편집하고, 미디어를 만들고, 유머나 예화를 찾는 일에 시간을 더 많이 소비하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좋은 예화를 만나면 예화를 살리기 위해 설교 본문을 바꿔 버리기까지 합니다. 


바리스타라 해도 좋은 원두를 볼 줄도 모르고, 로스팅을 전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저 로스팅된 원두를 사다가 갈아서 우유 넣고, 카라멜 시럽 넣고, 예쁘게 그림이나 그려내는 바리스타가 더 많지요. 바리스타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목사가 성경을 제대로 연구할 줄 모르고 묵상하는 힘도 없이, 그저 다른 사람의 설교를 가져다가 예쁘게 흉내만 낸다면 사람들의 귀는 즐겁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영혼은 힘을 잃게 되고 맙니다. 


재밌고 좋은 설교를 들을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재밌는 설교보다는 좋은 설교가 듣고 싶습니다. 설교를 듣는 동안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게 지나가는 것보다, 설교자가 얼마나 치열하게 연구하고 묵상했는지를 느낄 수 있는 설교가 더 좋아진 것입니다. 


손재주를 가르쳐 주는 세미나보다 좋은 원두를 고를 줄 알고, 그에 걸맞게 로스팅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세미나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설교자의 고뇌가 설교의 형식보다 내용에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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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전재훈

전재훈 목사는 서울장신대와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발안예향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오히려 위로팀 켈러를 읽는 중입니다(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