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는 시대에 성경은?
by 박혜영2024-01-23

전철을 타고 앉으면 전 아직도 책을 읽습니다. 후줄근한 면바지에 남방, 운동화, 거의 하얗게 센 숱 많은 머리, 안경을 코에 건 모습으로 책을 꺼내 들면 나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시대에 안 맞는 건 아닌지, 어떤 때는 살짝 위축됩니다. 그럼 나도 전자책 단말기를 사서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볼지 고려한 적도 있습니다. 이내 접었습니다. 종이 질감을 포기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눈을 들어 주변을 둘러봅니다. 책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전부 화면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뭘 보는지 궁금해서 다른 사람들 화면을 슬쩍 쳐다봅니다. 드라마나 게임과 같이 한 곳을 계속 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손가락을 밀면서 여기저기, 이곳저곳 화면을 휙휙 바꾸고 있습니다. 집중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재미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세상입니까? 책은 널려 있고, 얼마든지 살 수 있고, 누구라도 글을 읽을 수 있지만, 점점 고루한 물건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증상, 또는 결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학생이지만 긴 글을 읽지 못하는 일이 있답니다. 읽기는 읽지요, 한글이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수능 시험에서 국어가 극히 어렵게 출제된 적이 있습니다. 문제 자체가 복합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었기에 국어 시험인지 과학 시험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다른 진단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문제 자체가 어렵기도 했지만, 예시된 지문이 아주 길어서 디지털 문장에 익숙한 학생들은 줄거리를 파악할 수 없었다는 분석이었습니다. 뉴스에서 그 국어 시험을 다룰 때 저도 얼핏 본 기억이 있는데, 정말 긴 지문이었습니다. 그러니 누구라도 한 번 읽고 파악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건 극단적인 경우라 치고, 읽은 내용을 이해 못 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생활하면서 아예 읽을 일이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만은 사실 아닌가요? 여러분은 최근 호흡을 길게 하여 30분 정도 한자리에서 무엇이든 읽은 적이 있습니까? 아니, 지금 이 글이라도 읽고 있습니까?  


읽지 않아도, 서로 길게 대화를 이어가지 못해도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 일상에서는 무언가 물어보거나 처리하는 데 필요한 정도로만 말하고 쓰면 되지, 길게 대화하거나 길게 뭘 쓸 일이 없습니다. 물론 예전에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대방을 보면서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일도 어려워지고 있다는 겁니다. 요즘은 주로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전달하지 않습니까? 앞으로는 인간관계도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무슨 단어를 써서 자기 느낌을 전달해야 할지 모르고, 자기 뜻을 전달하기 위해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데, 만나서 말하라고 하면 서로 오해만 쌓일 겁니다. 청소년들은 거의 헐, 대박, 빡쳐 뭐 이런 말로만 자신을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까? 청소년 남자아이 셋이 제 뒤에 걸어오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대화는 아니고, 잡담 같기는 한데 말할 때마다 욕을 하니 ‘담(談)’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그냥 ‘떠들기’였습니다.


역시 저는 구시대인가요? 교회와 신앙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지 않으면 뇌의 읽기 회로에 변형이 생겨, 주의집중과 깊은 생각이 불가능하며, 난독증이 늘어날 거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런 책(다시, 책으로)을 살펴보다가 “위기에 처한 깊이 읽기”라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깊이 읽어야 깊이 생각할 텐데, 읽지 않아도 아무 지장 없고 답답하지도 않은 세상이 되었으니 개념을 모르는 사람은 늘어날 테고….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는 성경 말씀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믿는 도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믿는 도리”를 담은 책을 읽지 못하고, “믿는 도리”에 대한 설교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과연 ‘신자’ 곧 ‘믿는 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믿는 도리”를 읽지 않는 시대에 ‘믿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유튜브 세대에게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요구는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지금도 그런데! 옛날에는 글을 모르고, 책이 없어 스테인드글라스에 성경 장면을 그렸다면, 너도나도 읽을 수 있고 여기저기 성경책이 있는 데도 다시 스테인드글라스에 성경 장면을 그려야 하는 시대로 되돌아갈 것만 같습니다. 돌아다니는 일은 확 줄이고, 화면은 멀리하고, 차분히 자리에 앉아 영원한 말씀을 읽으며, 예수를 깊이 생각함으로 하나님의 관심을 끄는 신자와 교회가 될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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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혜영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말씀을 듣고 그 길로 행하자’ 외치는, 안양시 관양동에 있는 산오름교회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