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를 알고 있는가?
by Trevin Wax2024-02-22

사람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를 연구한 마이클 그레이엄과 짐 데이비스의 유익한 책, 탈기독교시대 교회(The Great Dechurching)를 계기로 지난 25년 동안 미국에서 발생한 교회 이탈(dechurching)의 원인과 영향에 대한 많은 논의가 최근에 있었다. 여기에는 떠난 이들이 다시 교회에 돌아오도록 유도하는 방법에 대한 제안도 들어 있다. 나는 교회 이탈 현상을 좀 더 자세하게 관찰하기 위해서 내가 운영하는 팟캐스트 Reconstructing Faith에 그레이엄과 데이비스, 라이언 버지를 초대해서 인터뷰했다. 왜냐하면 교회 이탈은 지금 미국 전역에서 화제가 되는 뜨거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교회 이탈을 논하려면 거기에 수반된 다른 질문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왜 교회에 가는가? 왜 교회에 나오지 않는가에만 집중하다 보면, 물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인 왜 교회에 가는지를 까맣게 잊곤 한다. 사람들은 왜 교회에 갈까? 거기에 뭐가 있기에 매주 가는 걸까? 


당신은 왜 교회에 가는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에 대한 간단한 답이 없는 것처럼(The Great Dechurching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왜 다니는가에 대해서도 정답은 없다. 이 문제를 놓고 교인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한다면, 아마도 다양한 이유 앞에서 놀랄 것이다. 


교회 지도자라면 신자가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게 하나 같이 고상하고 또 강력한 신학적 이유 때문일 거라 생각하기 쉽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한다. 자극적인 예배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거라는 사실을 안다. 예배를 위해 모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온다. 그런데 진짜 이유는 보다 현실적인 경우가 많다.


습관적 참석자


사람들이 교회에 가는 이유를 딱 하나만 꼽으라면 그건 순전히 습관 때문이다. The Lamp에 기고한 글에서 매튜 왈더는 가톨릭 신자들이 미사에 가는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를 하거나 추수감사절에 칠면조를 대접하는 것과 똑같이 미사가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식료품점이나 쇼핑몰, 동네 고등학교의 풋볼 경기에 가는 것처럼 교회에 간다. 교회에 가는 이유가 그게 항상 하는 일이고 또 항상 해오던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아직도 교회 다니는 게 당연한 동네가 있다. 거기에서는 이웃에게 “어느 교회 다니세요?”라고 묻는 건 조금도 이상하지 않고 전혀 불쾌감을 일으키는 질문이 아니다. 습관적 참석자(the regulars)는 교회에 가는 게 일상이고, 그건 사회적 결속과 가족 안정을 위한 중요한 일과로 여겨진다. 그러나 지금 시대를 고려할 때, 이런 사람은 점점 고령층이 되어간다. 여기에 해당하는 젊은이는 많지 않다. 습관적 참석자가 누구인가? 어머니날이나 아버지날에 자녀들과 손주들을 데리고 나타나 그들의 일상이 후손들에게 이어지길 바라는 부모와 조부모들이다. 


책임자


사람들이 교회에 가는 두 번째 이유는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을 “책임자”(the Responsibles)라고 부른다. 안내자나 집사, 주일학교 교사거나 유아반 봉사자, 성가대 또는 주차 봉사 등, 가지 않으면 당장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소그룹에 속한 이들이다. 그들이 교회를 가는 이유는 맡은 책임 때문이다. 


Everybody Loves Raymond의 한 에피소드에서 레이는 미사에 참석하지 않은 것 때문에 부모와 가족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 결국 그는 성당에 가기를 꺼렸던 과거를 반성하고,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성당에 열심히 참석하기로 다짐한다. 하지만 그가 성당을 다니면서 깨닫게 된 건 아버지가 성당을 열심히 다닌 게 신앙 때문이 아니라 헌금 봉사와 헌금 계수하면서 사람들과 주고받는 잡담을 좋아해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존경자


사람들이 교회에 가는 세 번째 이유는 가족 생활에까지 영향을 주는 사회적 혜택 때문이다. 나는 이들을 “존경자”(the respectables)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회가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도덕적 본능을 발전시키고 유지하도록 돕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교회는 도덕적으로 존중받는 곳,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연결하는 곳이다. 


크리스챤 스미스와 에이미 아담스직이 쓴 Handing Down the Faith(신앙 전수)는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을 성공적으로 전달한 가족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담고 있다. 그들의 인터뷰에는 ‘토대’ ‘베이스’ ‘기초’ 같은 단어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존경자는 교회 출석이 자녀에게 좋은 삶을 살도록 이끄는 도덕 기반을 제공한다고 믿는다. 교회는 그들이 선하고 도덕적이며 품위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돕는 무언가를 제공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자기들은 가지 않았으면서도 부모들이 굳이 십대 자녀를 교회 청소년 모임이나 교회 캠프에 보내는 이유이다. 자기네는 이미 교회가 제공하는 도덕적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추구자


교회에 가는 네 번째 이유로 진리를 찾기 위해서인 사람들을 들 수 있다. 매주 미국 전역의 교회에는 영적으로 갈구하지만, 아직 신앙에 헌신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추구한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과 그 가르침에 관심이 있다. 대부분은 다른 부류에 해당하는 누군가의 초대를 받아 방문하지만, 일부는 스스로 교회를 찾아 다니거나 온라인에서 검색을 한 후 출석하기도 한다. 


추구자(the reachers)는 규모가 가장 작다. 왜냐하면 교회 출석이 그들의 영적 여정에서 첫 번째 단계가 아니라 나중 단계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확신자


마지막 부류지만 의미가 있는, 굳건함과 결단력으로 특징지어지는 믿음의 소유자가 있다. 이들은 가장 명백하게 중생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교회 출석자이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서 일하시는 성령의 증거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살아서 역사한다. 


확신자(the resolute)의 열정과 헌신을 강조한다고 해서 내가 처음 세 부류의 사람들이 모두 불신자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은 복잡하다. 따라서 오로지 성경적인 이유만으로 교회에 참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확신자는 교회를 성경적 렌즈로 본다는 측면에서 가장 독실한 신자이다. 


확신자는 신자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예수님과 그의 백성을 사랑한다. 신약성경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전파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갈망한다. 그들은 또한 성찬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나고자 갈구한다. 그들은 또한 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 중심의 방향 전환이 필요함을 알고 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란 불가능하다. 올바른 영성 형성을 위해서 하나님의 가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교회 참석자의 대다수가 이 독실한 그룹에 속한다고 착각하는 목사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교인을 구상하는 건 다양한 수준의 영적 성숙도를 지닌 다섯 가지 범주의 사람들 모두이다. 또한 습관적 참석자인 동시에 책임자일 수도 있다. 


교회 출석의 미래


지금까지 살펴본 사실이 교회 출석의 미래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습관적 참석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그건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으며 동시에 매주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계속해서 줄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자 그룹에서도 지속적인 쇠퇴를 예상할 수 있다. 교회 이탈이 계속되고 우리 사회가 더욱 고립됨에 따라 해결해야 할 요구 사항과 더불어 각종 서비스와 활동까지 줄어들기에 서로를 연결하고 의무를 이행할 장소까지 사라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존경자 사이에서도, 기독교의 도덕적 비전을 고수하다 보면 주류 사회와 보조를 맞출 수 없게 될 것이고, 그 결과 교회 출석이 초래하는 사회적 대가가 너무 높으면 상당수가 교회를 떠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현대 문화의 광기에 대응하여 신앙에 더 깊은 뿌리를 내리고 교회를 도덕적 건전성의 원천으로 보며 더 가까이 가려는 사람들의 숫자도 무시할 수 없다. 성 혁명은 필연적으로 치유가 필요한 사상자를 낳을 것이다.


추구자 중에서는 영적 호기심을 가지고 교회에 참석하는 사람의 증가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기존 신자들이 그들을 어떻게 따뜻하게 환영하는가에,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이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또 그들에게 어떤 지혜와 가이드를 제공하는가에 달려있다. 


확신자는 여전히 남을 것이다. 그리고 문화적 변화가 계속된다면, 이 그룹은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 대다수를 차지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들이 다음 세대에까지 자신들과 같은 확신자를 재생산할 수 있는가이다. 확신자가 과연 기독교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추구자를 더 많이 찾고 초대하려고 할까? 


교회 리더들에게 좋은 소식


이 모든 건 교회 출석과 관련한 하나의 시험적인 생각이다. 나는 지금까지 소개한 분류를 비판하거나 보강하려는 모든 의견을 환영한다. 


목회자와 교회 리더에게 한마디 해야겠다. 당신 교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일부가 처음 세 가지 범주와 더 밀접하게 일치한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거기에도 긍정적인 면이 숨어있다. 그들은 여전히 당신의 교회를 다니고 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들을 있는 그 자리에서 만나고 그들이 확신자가 되도록 인도하라. 


이를 위해서는 복음의 능력을 통한 성령의 역사를 믿어야 한다. 복음을 통해서 역사하는 성령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을 책망하고 강권하며 참된 회심을 가져온다. 복음을 통해서 성령은 순종을 단순한 의무에서 기쁨으로 바꾼다. 복음을 통해서 성령은 자유함으로, 그리고 자존심이 아니라 진정한 이웃 사랑으로 봉사하게 한다. 세상이 우리의 믿음을 비웃을 때, 복음을 통해서 성령은 우리가 두려움 없이 일어서게 한다. 복음을 통해서 성령은 우리를 성숙시키고 성화시킨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모이는 이유에 관해서 점점 더 그분의 뜻과 일치하게 된다. 


우리 공동체가 예수님의 향기를 더 많이 발산할수록, “교회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사회가 될 것이다. 



원제: Why Does Anyone Go to Church?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

작가 Trevin Wax

트레빈 왁스는 LifeWay Christian Resources의 신학과 커뮤니케이션학과의 부학장이며 Wheaton College의 외래 교수이고, The Gospel Project의 편집자이다. '디스 이즈 아워 타임', '일그러진 복음', '우리시대의 6가지 우상', 'Gospel Centered Teaching'을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