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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칼빈주의자의 모든 것

겸손한 칼빈주의

페이지 정보

저자명 Jeff A. Medders
작성자 이재웅 집사(평내교회) / 작성일 2020-06-01

본문

그리스도의 겸손 보여주는 진정한 칼빈주의의 부활을 꿈꾸며

우리가 믿는 교리(doctrine), 즉 기독교의 교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담고 있는 중요하고 본질적인 교훈 혹은 가르침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사도들에게, 그리고 이 사도들의 가르침이 교회에 전해지며 교리는 점점 정리되고 발전되어 왔다. 특별히 교회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공의회(council)가 열렸고, 잘못된 가르침에 맞서 우리의 믿는 바가 점차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체계화되었다. 종교개혁시대(16~17c)는 이러한 교리의 진술과 정리, 그리고 이것들을 신앙교육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일이 매우 활발했던 시기다. 흔히 칼빈주의 5대교리라고 불리는, TULIP 교리가 담긴 도르트 신조도 이 시기에 작성되었다.


도르트신조는 야콥 알미니우스의 추종자들이 작성한 5개 조항을 거부하고 반박하는 내용들을 정리한 개혁교회의 대표적인 신앙고백이다. 예지에 근거한 선택과 유기, 보편적 속죄, 거부할 수 있는 은혜 등의 내용이 담긴 항론파의 주장에 맞서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무(無)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거부할 수 없는 은혜(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이라는 다섯 가지 교리가 담겨있다. 칼빈의 사상을 대표하는 예정교리를 잘 담고 있기에, 다섯 교리에 앞 글자를 취해 만든 이 두문자어(acronyms)는 지금까지 칼빈주의의 대표적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동안 ‘TGC(복음연합)’와 ‘디자이어링갓’ 등을 통해 개혁주의적 아티클들을 발표해온 제프 메더스(Jeff A. Medders)의 ‘겸손한 칼빈주의’는 이 다섯 교리에 대한 실천적 제언을 담고 있다. 예정 교리를 배운 이들이 과연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다룬다. 나 자신과 이웃에 대한, 예정 교리의 일종의 적용인 셈이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와 문제의식, 그리고 칼빈주의에 대한 신학적-역사적 개념을 간략히 다룬 1장과 2장이 서론에 해당한다. 3~7장은 이 책의 본론 부분으로, 앞서 언급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TULIP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안한다. 새로운 해석이라고 하지만 실은 이 교리가 지향하는 본질의 재발견이다. 이는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라는 본질이다. 8장에서는 은혜 받은 신자의 진짜 모습은 겸손하고 행복해야 함을 재확인한다. 이 책의 감동적인 결론이다.


저자가 제안하는 TULIP을 나름대로 정리해보았다. 전적 의존(Total Dependency), 조건 없이 사랑하라(Love Unconditionally), 제한을 멈추자(Let's stop Limiting), 거부할 수 없는 부르심(Irresistible Calling), 성도'들'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이렇게 다섯 가지다. 전적 의존과 거부할 수 없는 부르심은 3장과 6장의 제목이고 나머지는 각 장의 내용 중 강조하고픈 부분을 떼어낸 것이다. 이 다섯 제안의 공통점은 TULIP의 바른 이해를 통해 도출된 실천적 적용점이라는 것이다.


본론 부분을 좀 더 살펴보자. ‘전적 타락’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결과가 하나님에 대한 ‘전적 의존’이다. ‘전적’의 의미는 두 가지로, ‘전’ 인류 그리고 ‘전’ 인격의 타락이다. 누구도 예외 없고 내 안에 제외되는 어떤 부분도 없다. 우리는 늘 자신을 제외한 전 인류를 이 교리에 상정하지만 저자는 특별히 자신의 전인격의 부패에 겸손히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이후 저자는 죄에 대한 우리의 무능함을 철저히 인식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할 것, 타인에 대한 무분별한 지적과 차별을 멈출 것, 죄와 세상을 동일시하지 말 것, 이웃에 대한 동정심과 이해를 가질 것을 실천적으로 권면한다.


‘무조건적 선택’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결과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이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영역이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그 어떤 조건도 없다. 그러니 우리가 자랑할 것 역시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저자의 실천적 권면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방식이 곧 다른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사랑의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에 나오는 베드로를 향한 바울의 권면을 통해,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특정한 조건에 의해 사랑하려는 우리의 잘못된 모습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제한 속죄’를 다루는 5장의 제목은 ‘아름다운 속죄’다. 제한이란 표현이 가지고 있는 다소 부정적인 요소들로 인해 이 교리의 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여긴 저자는 특정적 혹은 한정(확실한, definite)이란 표현도 제안한다. 제한이 가리키는 바는 범위에 관한 것으로, 이는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적 영역이다. 이러한 제안은 제한이란 표현으로 인해 분명하고도 영원한 속죄의 효력이 그렇지 않게 인식되는 오해 탓이다. 속죄의 효력은 영원불변하며 확실하다. 범위와 효력 모두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이 교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결과 역시 겸손이다. 우리는 구원의 효력을 제한하는 의심을 제한해야 하고, 함부로 타인에 대해 구원의 범위 여부를 판단하는 불손한 태도를 제한해야 한다. 저자는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바르게 믿을 것, 그리고 늘 그 은혜를 겸손히 생각하며 연합을 위해 확실히(definite) 헌신할 것을 구체적으로 권면한다.


‘거부할 수 없는 은혜’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결과는 부르심에 대한 재확인, 즉 ‘거부할 수 없는 부르심’이다. 이는 은혜의 감격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다. 저자는 진정한 칼빈주의는 겸손한 칼빈주의고, 이는 곧 선교적 칼빈주의라고 말한다. 그리고 전도와 선교, 특별히 교회개척을 위한 헌신을 권면하며 이 장을 마무리한다. 저자는 자신을 돕고자 하는 아들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예로 들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신다는 바울의 말(고전 3:9)을 인용한다. 또한 칼빈의 사역의 선교적 측면을 강조하고 자신이 속한 교회 개척 네트워크를 소개한다. 신자는 가정과 직장을 포함한 모든 삶의 영역에서 선교적이어야 한다. 겸손한 태도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과연 튤립의 어느 부분이 복음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은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성도의 견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결과는 ‘확신과 감사’다. 이는 겸손의 또 다른 표현이다. 저자는 확신하되 자기기만에 빠지지 말 것을 강하게 권면한다. 이유는 이 교리가 머리로만 이해될 때 자기 자신과 지체들을 향한 사랑의 열정이 식어지기 때문이다. 지적이지만 실천적이지 못하다는 칼빈주의자들에 대한 오해(혹은 진실)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지적 활동으로만 끝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핑계거리를 위해 만들어진 교리가 아니다. 견인은 하나님께서 끌고 가신다는 의미가 아닌 성도의 굳은 인내를 뜻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며 함께 인내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교리의 실천적 제언은 이 교리의 맨 끝에 있는 철자를 다시 강조한 성도‘들’(saint‘s’)의 견인이다. 교회는 견인 공동체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거부할 수 없는 부르심’이 우리들에게 주는 미션은 이 견인 공동체의 우주적 확장이다.


역사의 중요한 순간 마다 공의회가 열려 잘못된 가르침에 맞서 진리를 수호하고 재천명했다. 이로 인해 우리의 믿는 바가 점점 체계화되고 발전됐다. 지금이 그 또 한 번의 중요한 순간이다. 교만이라는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이단을 맞아 새로운 공의회가 열리려 한다. 모든 관계와 정보가 물리적 제한을 뛰어넘는 시대에 걸 맞는 전 지구적 공의회다. 모든 인류가 지켜보는 공의회인 것이다(이는 선교의 새로운 장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주권 뒤에 숨어 구별과 배제로 은혜의 신분사회를 조성하는 데 일조했던 가짜 칼빈주의를 꾸짖고 진짜 칼빈주의를 회복하는 자리다. 정복하고 주입하려는 태도는 자연스레 강압과 폭력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수많은 역사의 증거들이 이를 보여준다.


기독교의 힘은 겸손이다. 끝없는 섬김과 헌신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리 하셨다. 겸손의 절정은 죽음이셨다. 예정 교리를 통한 구원의 확신은 신자의 겸손에 무한한 에너지원이다. 속죄의 효력은 영원불변하기에 우리의 겸손 역시 그만큼 강력해야 한다. 온 우주 만물을 새롭게 하신 그리스도의 압도적 겸손, 이 압도적 겸손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멋진 칼빈주의자들의 부활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