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는 아주 특이합니다. 마치 구약 성경 버전 탕자 비유 같습니다. 탕자 비유는 아버지를 떠난 작은 아들에 관한 비유죠.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거부하고 떠나서 창녀와 살며 아버지께 불순종합니다. 그런데 큰 아들이 있는데 그는 집에 머물러 있으며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 또한 아버지의 사랑을 거부합니다. 이 비유엔 아버지의 사랑을 거부하는 두 가지 방식이 나옵니다. 하나는 불순종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순종하지만 ‘이제 아버지는 내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는 방식이죠. 탕자의 방식과 바리새인의 방식이죠. …
아마 동생은 어릴 때부터 원하는 건 하고야 마는 그런 친구였을 거예요. 근데 반대로 형은 사람 눈치 보느라고 하고 싶은 대로 제대로 못했을 거예요. 동생은 자기 욕심에 충실했던 거고. 형은 자기 체면에 충실했던 거예요. 동생의 욕심이 열정으로 바뀌어야 한다면, 형의 눈치는 배려로 바뀌어야 됩니다. 그래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너의 눈을 살피는 게 눈치라면 배려는 뭐예요? 너를 위해서 너의 형편을 살피는 거죠. 형의 입장에서 볼 때 동생이 아버지에게 유산을 달라고 떼를 쓰는 모습은 너무나 무례한 행동이었을텐데 형이 말렸다는 내용이 전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