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감
자연과학과 공학을 공부하고 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어 나갈 때, 어느 정도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용어와 사람들의 이름,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철학적 언어에 대해 다소 어색하고 견디기 힘들었다. 아마도 학점에 매몰된 공부와 얕은 배경지식의 탓이라고 본다. 이것은 다른 독자들의 용기를 빼앗으려고 하는 말은 아니다. 결코 가벼운 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조금 견디면서 개념을 정리하며 읽다 보면, 적절한 예화들이 나와서 설명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1-3장은 잘 인내하면서 읽기를 바란다. 우리가 다루어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 핵심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는 순서대로 읽으면 좋겠지만, 4-12장은 관심 분야별로 골라서 읽을 수 있어도 좋겠다. 그런 면에서 목차가 좋은 역할을 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지식이 풍성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아이들 말로 하면, 왠지 게임에서 꼭 필요한 아이템을 얻은, 즉 득템한 기분이 든다.
2. 번역
홍종락 선생의 번역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읽고 싶어진다. 아마도 C. S. 루이스를 역자를 통해 자주 만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역자는 편집자를 칭찬한다. 왜냐하면, 이 책의 원서 목차가 각 장의 제목으로만 구성되어 있는데, 한글로 출간된 역서에는 부제를 잘 붙여놓았기 때문이다. 역자는 목차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목차를 얻으면 전부를 얻는 것이요 목차를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라고 언급한다. 처음의 목차 부분에 생략된 소제목들이 각 장의 문단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역자는 존 레녹스의 전공인 수학을 강조하며 9장의 내용을 자세히 보기를 추천한다. 이렇듯 책의 정보에 대한 이해를 우리에게 준다.
3. 저자와 주장
책 표지 날개에서 존 레녹스에 대한 소개를 읽으면서, 하나님은 자신의 사람들을 적시적소에 두셔서 그 나라를 이루신다는 섭리를 깨닫게 되었다.
저자가 책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몇 가지 요점들은 다음과 같다(독자들은 이에 유의하여 책을 읽으면 좋겠다). 첫째, 성경과 현대 과학 간에 합일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둘째,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재평가를 주장한다. 셋째, 유신론과 무신론, 과학과 철학, 우주의 기원과 진화, 그리고 생명 등의 핫이슈를 다룬다. 넷째, 과학은 하나님을 외면하거나 매장하기보다 그분의 존재를 가리키며, 더 나아가 과학 활동의 정당성은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는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재평가를 주장할 때 과학의 역사 이야기를 들려준다. 역사는 사실에 기반을 둔다. 맹목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과학이 결코 종교를 배척하거나 대립되는 관계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과학 연구의 주된 동기가 종교라는 사실에 대해 과학자들과 그들의 업적을 통하여 증거를 제시한다. 그리고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과학이 아니라 자연주의 세계관임을 분명히 드러내 준다. 과학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하게 하고 그분을 드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내용이 1장의 요지이다.
저자는 과학의 역할과 한계를 설명하면서 종교의 역할을 잘 말해준다. 이 문제를 2장에서 마틸다 이모의 케이크라는 예화를 통해 재미있게 정리한다. 과학은 ‘어떻게’라는 질문을 하고 답을 얻고자 한다. 반면 종교는 ‘왜’라는 질문에 답을 준다. 다시 말해, 과학은 마틸다 이모의 케이크가 어떤 성분을 가지고 있고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에게 어떻게 유익한지를 알려 줄 수 있다. 그러나 그 케이크가 왜 만들어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 이유는 오직 마틸다 이모만이 알려 줄 수 있다.
또한 저자는 방법론적인 환원주의가 수학을 통해 아름답게 표현된 것을 칭찬하면서도 다른 환원주의에 대한 한계를 3장에서 지적한다. 그는 자연주의 세계관을 가진 입장과 유신론적 세계관을 가진 입장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그러면서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를 단순히 믿음과 신의 영역으로 넘긴다는 ‘빈 틈의 신’에 대한 비난을 그대로 두지 않고 그들의 한계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이런 논증은 매 장마다 중요한 이슈를 다루면서 반복되는 노력으로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우리 안에 있는 마음은 우리 자신과 우주, 그리고 그 너머에서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을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매우 논리적인 활동을 하는데, 바로 그런 활동이 과학이라고 정리한다.
4. 제안
책에 굉장히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게다가 전문 용어를 통해 표현되고 있다. 자칫 귀찮게 여기고 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내용들을 우리 다음 세대가 배우고 있다. 자연주의 세계관의 영향력이 강해서 분별력이 없는 경우 과학과 신앙과의 관계를 오해하고 교회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이 말하고 주장하는 바를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고, 또 그들과의 대화를 위해서는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적어도 지도자라면 말이다. 우리가 다 말해 줄 수 없더라도 신앙이 맹신이 아니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소통의 길을 열어 두는 자세가 중요하다. 질문하는 회의론자들을 위해 접촉점을 마련해 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과학주의에 대한 오만을 가지고 신앙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선물하고 함께 나눠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