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위로,욥기

욥은 회개한 것이 아니라 위로를 얻었다

저자명 김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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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서은성 아프리카 니제르 선교사(한국SIM국제선교회) /  출판사 SFC / 작성일 202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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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당할 때는 고난 자체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기보다 그 고난으로 인해 우리를 정죄하는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서 일 수가 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이 나의 모든 고난을 보고 계시고 고난 당하고 있는 나를 향해 연민하시며 고난의 배후에 있는 악의 세력이 여전히 하나님의 통치하심 속에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면 헤쳐나가지 못할 터널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까닭없이 고난 당하는 자의 대표자인 욥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신자가 겪는 고난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욥기를 읽으며 욥기 후반부에 나타난 하나님의 '엉뚱한'(?) 응답에 의아해한다. 하나님은 욥의 고난의 이유에 대하여 왜 확실한 답을 해 주시기를 꺼려하시는가? 하나님은 왜 창조 이야기만 하시는가? 하나님은 왜 큰 동물을 등장시키셔서 이 고난의 문제에 대한 위로의 대답으로 삼으시는가 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의문에 속 시원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우리 대부분의 사람은 욥이 고난 당하긴 했지만 나중에 다시 회복되고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었다는 고백에 머물며 위로받을 뿐이다. 그래서 욥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신자의 고난에 대해 답하지 못하는 책으로, 욥기에 나타난 하나님은 신자의 고난에 초월하여 떨어져 계시기만 하는 존재로 오해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욥기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라기 보다는 애매한 문학책으로 여겨지지는 않는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욥기를 통해 고난보다 어려운 고난의 잘못된 해석을 통과한 의인, 욥을 만난다. 저자는 욥기 연구자로 그동안 욥기 해석에서 간과된 부분을 드러냄으로 우리로 하여금 욥기에 대한 좀 더 명확한 해석으로 접근하게 한다. 욥기에서 자칫 신자들이 빠질 수 있는 오류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는 욥의 친구들의 확신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음을 풍부한 본문 해석을 통해 밝히고 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엘리바스가 보았던 환상에 근거하여 욥에게 숨은 죄를 회개하기를 종용하고 있다. 엘리바스의 환상에 나타난 영적 존재는 욥기 서언부에 나타난 욥의 삶을 칭찬하시고 욥을 사랑하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는 욥을 정죄하고 불신하는 사탄의 목소리이다. 엘리바스는 이 존재가 나타날 때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느니라”라고 묘사하는데 이는 우리의 거룩하고 선하신 하나님에 해당하는 표현이 아니라 고대 근동 문헌에 나타난 악귀나 귀신의 접촉에서 사용된 표현이다. 


욥기 초반부에서 욥의 의로움을 참소하였던 사탄은 그 이후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리워야단으로 이름하는 사탄이었다. 저자는 욥기 41장 8~12절을 학문적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다음과 같이 의역한다. "욥아! 네 고난의 배후에 리워야단, 즉 사탄이 있었다. 그리고 엘리바스에게 환상을 준 주체도 리워야단, 즉 사탄이었다. 누가 내 앞에 서서 (욥기 1~2장에 사탄이 하나님 앞에 섰던 사건을 지칭) 욥, 네가 범죄할 것이라 내게 감히 도전하였는냐? 사탄의 주장이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다. 나는 이 교만한 사탄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 (욥 41: 8~12,필자의 의역)


욥기의 핵심 주제는 회개도 아니고 고난도 아니고 창조도 아닌 '위로'이다. 이는 저자가 바라본 탁월한 결론이자 우리 모두의 결론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폭풍우 가운데 나타나셔서 폭풍 같은 위로를 안겨주신다. 하나님은 고난과 악의 문제의 근원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신다. 비록 우리의 시간 세계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때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여도 악의 배후는 반드시 멸망 당할 것이다. 신자의 고난은 고난이라는 보자기에 돌돌싸여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욥기를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구절을 히브리어에 대한 탁월한 해석으로 바르게 해석해서 보여준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 회개하나이다.”(욥 42:6)-개역개정

“그러므로 내가 했던 (모든 말과 생각을) 포기합니다. (비록)티끌과 재 가운데 있지만 나는 위로를 얻습니다.”(욥 42:6)-필자의 번역 


욥은 회개한 것이 아니라 위로를 얻은 것이었다. 하나님은 욥의 무고함을 인정하셨다. 욥기는 무고한 자도 고난을 받을 수 있으나 우리의 무고함을 알고 계시고 악을 심판하시는 온 세상의 참된 통치자를 만남으로 인해 주어지는 진정한 위로를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계명을 따르는 자를 복 주시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를 벌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일반적인 원리이며 특별히 잠언에서 강조하고 있는 보응원리이다. 그러나 이 보응원리가 항상 기계적으로 적용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 욥기서이다. 우리는 보응원리와 함께 묵상해야 할 사실이 있다. 가장 완전하고 가장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보응원리대로'가 아닌 '까닭없이'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서 우리를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하셨다. 우리는 영원히 이 구원을 노래해야 한다. 고난 당하신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에게는 넘치는 위로가 주어졌음을 마음에 잘 담고 가야 한다.


고난의 배후에 있는 악의 세력을 신자는 넘어설 수 있다. 세상은 사탄이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의로우시고 선하시며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그 아버지는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셔서 이 악한 세상 가운데서 의롭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 우리의 눈물은 이 타락한 세상에서 다 닦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온전한 공의가 지금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영원할 것임을 바라보며 우리의 현재의 고난과 앞으로 만날 수도 있는 고난에 위로와 회복의 힘을 소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