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당신은 그리스도인인가?

복음의 렌즈로 SNS를 바라보자

저자명 Paul Tri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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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고상섭 목사(그 사랑교회) /  출판사 토기장이 / 작성일 20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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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저자인 쉐리 터클은 SNS에서의 소통은 누군가를 마녀사냥식으로 공격할 때는 하나가 되는 것 같지만 갈등을 해결하지는 못하는 도구라고 언급하면서 결국 대화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린다. 또 대화가 상실되는 SNS식의 소통은 더욱 더 심각한 불통의 시대를 양산할 것임을 경고한다. 미국의 상담가 폴 트립은 <SNS에서 당신은 그리스도인인가?>를 통해서 SNS상에 퍼지는 다양한 갈등들을 인간 내면 깊숙한 심리들로 묘사하고 복음만이 그 해결책임을 제시한다. 저자는 제목처럼 단도직입적으로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SNS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신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말할 때 단순히 내 삶의 어느 특정한 영역에서만 주님이 아니라 삶의 전역에서 주님이셔야 한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으로서 SNS 사용은 세상과 다른 가치를 가져야 할 것이다. 어떻게 SNS 세계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세우며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까?


1. SNS의 문제점 


저자는 SNS의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를 ‘반응성’ (Reactivity) 이라고 꼬집는다. 묵상과 숙고가 없이 자신의 감정을 여과없이 그대로 쏟아내는 것이 SNS의 가장 큰 폐해일 것이다. 성급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서로 간의 소통은 비난일색이며 비신앙적이고 무례할 때가 많다. 


“무분별한 반응, 정직한 자기 점검으로 조율되지 않은 반응, 권면이 아닌 비난을 위한 반응, 겸손이 아니라 교만으로 점철된 반응, 사려깊은 성찰이 아닌 적흥적 감정에 치우친 반응은 절대 경건하고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없다.” (P24) 


왜 사람들은 SNS에서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것일까? 저자는 인간 안에 있는 뿌리깊은 본성적 죄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먼저,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에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것이며, 사람의 죄는 외부적 악에 의해 영향을 받기보다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악 때문이라 설명한다. 왜 인간은 남을 험담하고 해치는 말에 더 끌리는 것일까? 왜 혐오스러워야 할 조롱이나 험담에 재미있다고 웃는 것일까? 우리 안에는 이런 것들을 갈망하는, 어둠을 사랑하는 어떤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야고보서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약 3:2) 라고 말하면서 인간 안에는 연약한 본성이 있다고 말하고, 그 작은 혀가 결국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를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약 3:6)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은 자기중심성이라는 죄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또 받게 된다. 특히 SNS는 보이지 않는 특성상 더 심한 말들을 쏟아낼 수도 있다. 


저자는 이런 죄악의 뿌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곳이 SNS 인데 먼저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영광’을 향한 갈망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정복하고 다스리는 일에 동참하는 은혜를 받았다. 그러나 타락한 이후 인간은 왜곡된 형태로 다스리고 정복하고 싶어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거나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고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이유도 인간 안에 있는 ‘영광’을 향한 왜곡된 갈망 때문이며 이것은 ‘인정’이라는 욕구를 만나서 더욱 활개를 친다. SNS 상에서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할 때 권력이 주는 쾌락을 누릴 수 있고, 자신이 도덕적으로 지적으로 타인보다 더 우월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것은 거짓된 정체성을 만들어 주고, 스스로 힘을 가지고 대화를 주도하고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일종의 종교처럼 중독된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겸손을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 (빌 2:3) 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교만은 나를 다른 사람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다. 폴 트립은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우리가 SNS를 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 시키고, SNS의 세계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의 땅임을 인식시켜주고, 그 땅을 복음으로 정복해야 함을 알려준다. SNS는 이런 부정적인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 모든 크리스챤들이 SNS를 하지 않는다면 SNS는 사탄의 소굴이 될 것이다. 모세처럼,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자들임을 기억하며 SNS 라는 약속의 땅을 정복해야 할 것이다. 


2. SNS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살라 


저자는 SNS라는 문명의 이기를 통해 복음과 은혜가 전달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복음의 정체성이다. 복음은 우리가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알기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도 나보다 더 도덕적으로 탁월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은혜의 구원은 늘 다른 사람들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는 삶을 살게 된다. SNS상의 여러 가지 문제는 겸손을 배우지 못한 교만의 문제이다. 


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이 존귀한 이유는 사람의 행위와 능력 때문이 아니라, 모든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해결해야 할 문제나 성공의 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더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으로 계급을 나누고, 서로의 차이점을 부각시키고 싶어한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한 자녀임을 알게 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명령을 실천하게 한다. 


복음의 겸손을 가질 때 우리는 함께 있는 사람들을 존중할 수 있고,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도 인격적으로 대할 수 있다. 복음의 겸손은 또한 우리의 한계를 알게 해준다. 나의 지식이 얼마나 작은지, 나의 의가 얼마나 더러운지, 나의 경험이 얼마되지 않는 것에 대한 한계를 통해 자신의 연약함을 배우게 된다. 


3. 실제적인 방법들 


SNS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한 실제적인 방법으로 저자는 예배를 말한다. 예배란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동참하는 것으로 사람은 예배를 통해 자신 안에 있는 사랑의 순서를 재조정하게 되고, 반응성의 문화에 쉽게 스며들지 않게 된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게 될 때 우리는 그분의 명령을 지키고 순종하는 일을 자신이 원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또 부정적이 되기 쉬운 SNS 세계 속에서 적극적인 은혜를 실천하라고 권유한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 4:28-29)


성경은 도둑질 하던 사람은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권고로 끝나지 않는다. 단순히 하지 말라는 명령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의로운 것으로 대체하라고 말한다. 도둑질하던 사람은 그것을 그치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 하는 것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즉 부정적인 습관을 변화시킬 긍정적인 습관이 필요하다. 그래서 말 또한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라는 권고를 넘어 덕을 세우는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권유한다. 이제 SNS에서 글을 쓸 때는 에베소서 4:28절 29절에 근거해서 검열해볼 필요가 있다. “나의 SNS는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고 은혜를 끼치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저자는 주님과 동행하는 ‘침묵’을 권장한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머무르는 삶을 통해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에서 조금씩 자유하게 된다. 하나님 앞에 잠잠히 머무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삶은 분주하고, 반응성의 문화내러티브에 쫓겨 살아가고 있다. 숙고와 묵상이 사라지는 반응성의 시대에 우리는 좀 더 기도하고 기다라며 하나님의 뜻을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중세시대의 질병은 무지였지만 오늘날의 질병은 속단이라는 말이 있다. 생각하지 않고, 묵상하지 않는 반응성의 시대에 좀 더 하나님 앞에 머무르는 고독을 통해, 더 깊이 소통하고 대화하는 그리스도인이 많이 배출되었으면 좋겠다. SNS도 하나님께 속한 약속의 땅이며, 우리가 세상의 빛으로 정복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니 더 이상 디지털이라는 감옥에서 노예로 살지 말고, 그리스도께 자리를 내어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