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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매일 큐티

말씀 QT_누구의 판단과 방식대로 살아야 하는가?
2020-08-23

사무엘상 14장 36-5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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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사울이 이르되 우리가 밤에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동틀 때까지 그들 중에서 탈취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 무리가 이르되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할 때에 제사장이 이르되 이리로 와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사이다 하매
37. 사울이 하나님께 묻자오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되 그 날에 대답하지 아니하시는지라
38. 사울이 이르되 너희 군대의 지휘관들아 다 이리로 오라 오늘 이 죄가 누구에게 있나 알아보자
39.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아들 요나단에게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죽으리라 하되 모든 백성 중 한 사람도 대답하지 아니하매
40. 이에 그가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너희는 저쪽에 있으라 나와 내 아들 요나단은 이쪽에 있으리라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하니라
41. 이에 사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되 원하건대 실상을 보이소서 하였더니 요나단과 사울이 뽑히고 백성은 면한지라
42. 사울이 이르되 나와 내 아들 요나단 사이에 뽑으라 하였더니 요나단이 뽑히니라
43. 사울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가 행한 것을 내게 말하라 요나단이 말하여 이르되 내가 다만 내 손에 가진 지팡이 끝으로 꿀을 조금 맛보았을 뿐이오나 내가 죽을 수밖에 없나이다
44. 사울이 이르되 요나단아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45.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였음이니이다 하여 백성이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
46.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 추격하기를 그치고 올라가매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47. 사울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후에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곧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쳤는데 향하는 곳마다 이겼고
48. 용감하게 아말렉 사람들을 치고 이스라엘을 그 약탈하는 자들의 손에서 건졌더라
49. 사울의 아들은 요나단과 이스위와 말기수아요 그의 두 딸의 이름은 이러하니 맏딸의 이름은 메랍이요 작은 딸의 이름은 미갈이며
50. 사울의 아내의 이름은 아히노암이니 아히마아스의 딸이요 그의 군사령관의 이름은 아브넬이니 사울의 숙부 넬의 아들이며
51. 사울의 아버지는 기스요 아브넬의 아버지는 넬이니 아비엘의 아들이었더라
52. 사울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사울이 힘 센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을 보면 그들을 불러모았더라

나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판단을 우선순위에 놓아야


대부분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구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며 살아간다.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블레셋 사람들을 끝까지 추격하여 동틀 때까지 그들의 소유를 탈취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고 제안한다(36절).


사울은 전쟁을 앞두고 여전히 하나님께 묻지 않는다. 계속해서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려고 시도한다. 이런 그에게는 두 부류의 사람이 함께하고 있었다. 첫째 부류는 무조건 사울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36절). 이들은 사울이 어떤 제안을 하더라도 항상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라’고 말한다. 이 말을 직역하면 ”당신의 눈에 좋은 모든 것을 행하소서“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눈’은 히브리어로 ‘아인‘인데 그 의미는 ’판단력‘이다. 얼마나 위험한 부류의 사람들인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최우선의 의무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판단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판단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자신의 판단력을 믿는다는 것은 스스로 왕이 되어 사는 죄를 범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울 곁에 있는 두 번째 부류는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기도의 자리로 나가라’고 요구하는 제사장이다(36절).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로힘‘이다. ‘엘로힘’은 ‘권세 있고 힘 있는 뛰어난 분’이라는 뜻을 가진 ‘엘로아흐’의 복수형이다. 여기서 복수형을 사용하게 된 것은 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했다는 의미가 된다.


제사장은 모든 전쟁을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주도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것을 사울에게 전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하나님께 먼저 물어야 한다.


나의 열정보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문제를 처리해야


다행히도 사울은 제사장의 말을 받아들여 하나님께 묻는다. 그런데 하나님은 대답하지 않으심으로 응답하신다(37절). 그 순간 사울은 하나님께서 전쟁을 허락하지 않은 이유가 백성들이 저지른 죄와 연관되었음을 직감한다. 이때 사울이 먼저 취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죄를 지은 사람을 찾아내는 것과 어떻게 벌을 내려야 할지 하나님께 또 물었어야 했다. 그런데 사울은 언제나 그랬듯이 성급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고, 그다음에 죄를 지은 사람을 뽑는다. 그렇게 뽑힌 사람은 그의 아들 “요나단”이었다.


사울은 성급한 맹세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아들을 죽음을 몰아넣은 어리석음을 드러낸다(39절). 또한, 자신이 맹세한 대로 실천하지도 못한다. 더 나아가 왕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한다(45절). 나의 열정보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직면한 문제를 처리하지 않은 결과다.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될 때 하나님의 뜻을 더 구해야


그런데 오늘 본문 47절-48절을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나온다. “사울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후에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곧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쳤는데 향하는 곳마다 이겼고(47절) 용감하게 아말렉 사람들을 치고 이스라엘을 그 약탈하는 자들의 손에서 건졌더라(48절).”


이 두 구절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울이 가는 곳마다 이겼고 이스라엘을 건졌다”라는 것이다. 여기에 질문 하나가 발생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내 생각대로 살아도 잘 살 수 있는가?”이다. 사울의 이야기는 “그렇다”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자기 생각과 눈의 보이는 대로 살아도 잘 살 수 있다는 그릇된 경험치 때문이다. 불의한 경험들이 쌓이면 의지가 끝까지 자기 소견의 옳음대로 살도록 이끈다. “사울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사울이 힘센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을 보면 그들을 불러모았더라(52절).”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뜻 알기를 구하고, 발견하고, 순종하는 삶을 요구한다. 당신은 누구의 판단과 방식을 따라 살아가는가? 자신인가? 아니면 하나님인가? 또한, 당신은 모든 것이 잘 될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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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하상훈 목사(하나교회)
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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