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하나님께서 정말로 사악하고 추한 것에서 아름다운 것을 가져오시는 걸 사람들이 보기 원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매우 주권적이시고 매우 위대하셔서 그의 자녀들이 겪는 그런 고통을 지켜보고 계시며 주의 깊게 보시며 계획을 세우시고 주권자이신 그분이 이제 그 고통을 지시고 아름다움을 가져오십니다. 자기 자신의 고통처럼 말입니다.
그분이 십자가를 지실 때 우리가 그 발 밑에 있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이 생명이 얼마나 아까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가? 메시아와 관련된 일체의 것들이 전부 거짓이 아닌가?’ 등 우리는 그분에 대해 이와 같은 말들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모든 놀랍고 끔찍한 십자가형은 인류에겐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계속 하시는 일인 듯합니다.
재에서 아름다움을, 사악한 것에서 영광스러운 것을 가져오십니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우리가 몰랐던 문을 하나님께서 여시는 걸 봅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고난에 대해 말할 때 사용한 한 어구가 있는데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고후 6:10)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둘 중 하나가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슬픔의 순간이 지나가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고 둘 다 있습니다. 이 세상은 깨져 있기 때문에 항상 슬플 겁니다. 하지만 항상 즐거워할 겁니다. 그분께서 깨짐에서 아름다움을 가져오는 것을 우리가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새 땅에 대한 약속이 있으며 거기엔 더 이상 깨진 것이 없을 것이며 모든 나쁜 것은 원상태로 돌려질 겁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슬프지만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