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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하나님, 가정, 그리고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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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노승수 /  작성일 20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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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ndrik Langfield on Unsplash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가정의 질서를 논하면서 아내에게 순종하라고 권면하는 것은 아내의 지위가 남편보다 낮기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재적 질서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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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남녀의 질서는 가부장제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문화가 가부장제 문화여서 성경이 말하는 질서가 가부장제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eisegesis라고 하는데 성경 본문에 자기가 속한 문화적 경험과 세계관을 개입시켜서 하는 해석을 말한다. 성경의 진리는 당연히 석의(exegesis), 곧 본문에서 참된 의미를 이끌어내어야 한다.


우리가 가부장제의 사회에 살기 때문에 성경의 질서가 가부장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질과 맞지 않다. 라쿠나(Catherine Mowry LaCugna)는 삼위일체와 가정을 유비적으로 빗대었다. 성부에 대한 성자의 순종이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종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부부관계는 성부와 성자의 관계와 같다. 존엄성은 동등하지만, 성부는 창시자이고 성자는 응답자이다. 그러므로 성삼위일체 제2위격에 유비되는 아내는 감응, 복종, 순종으로 특징지어 진다”(Catherine Mowry LaCugna, 우리를 위한 하나님: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인의 삶, 대한기독교서회, 385쪽)


잘 아는 대로 성부 성자 성령은 동일본질(home ousios)로서 위격에서 구분되시나 동등하시다. 그 동등하신 성자께서 질서를 따라 성부께 순종하신다. 같은 원리가 남녀의 질서 안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가정의 질서를 논하면서 아내에게 순종하라고 권면하는 것은 아내의 지위가 남편보다 낮기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재적 질서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타락으로 인해 더러워진 우리 눈이 이 질서를 사시를 뜨고 볼 뿐이다. 여자는 남자보다 아래에 있지 않다. 남자는 여자보다 위에 있지 않다. 성부와 성자가 동등하시듯이 하나님은 아담의 발이나 머리에서 하와를 취하지 않고 그의 갈비뼈에서 취하셨다고 창세기 본문을 메튜 헨리는 주석했다. 이런 비유적 해석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섬기는 삼위 하나님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에 따른 예배가 우리의 일상의 삶이라면 자연스럽게 이런 이해를 가질 수밖에 없다. 예수님 당시 여자들은 사람의 숫자로 헤아려 지지조차 못했다. 복음서는 그런 시대에도 여인들을 인격체로 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장 먼저 증언한 이도 여인들로 기술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당시 문화로 볼 때, 정당성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이런 기록 방식을 취했다는 것은 남녀의 질서를 평등하고 보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우리 전통 문화에서도 가부장제가 원래 유교적 문화도 아니었다. 하버드 대학의 한국학 학자인 마크 피터슨(Mark Peterson)은 조선시대에 관한 방대한 연구를 통해 17세기 후반 이전까지도 재산 상속, 족보의 기재, 제사 문제 등에서 남녀가 평등했다는 것을 박사논문으로 밝혔다(Mark Peterson, ‘유교사회의 창출-조선 중기 입양제와 상속제의 변화’, 일조각). 현재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질서는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일반 은총의 관점에서 보면, 조선의 정치 철학이었던 유교의 경전들은 남녀의 질서로부터 사회 질서를 창출했다. 오경 중 하나인 예기(禮記)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남녀 구별이 있은 연후에 아비와 자식이 친하게 되고, 아비와 자식인 친한 연후에 의(義)가 생기고 난 연후에 예가 일어난다. 예가 일어난 연후에 만물이 안정된다. 구별이 없고 의가 없으면 금수의 길이다(男女有別, 然後父子親. 父子親, 然後義生. 義生, 然後禮作. 禮作, 然後萬物安. 無別無義, 禽獸之道也) “예기_교특생(郊特牲) 중에서”


남녀의 구별이 있다는 것은 차별이 존재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 역할에서 차이가 난다는 의미다. 역할 상의 차이에 대해 성경은 여성을 돕는 자로 만드셨다고 기록한다. 돕는 자라는 표현에 열등함을 떠올리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자시라”고 할 때, 그 단어가 그대로 쓰였다. 부부는 동등하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으로 대해야 하며 아내는 남편을 인정하고 순종으로 대해야 한다. 가정에서의 이 질서는 교회에서도 적용된다. 원래 리더십이란 지배가 아니라 섬김이다. 주님의 정복은 전쟁이 아니라 십자가였다.


미 해병은 지휘관이 맨 마지막에 식사를 한다. 수고한 해병들에게 열매가 가장 먼저 돌려지는 것이다. 인도받는 자보다 인도하는 자의 책임이 더 크다. 교회에서 여성의 순종이 합당하게 요구되려면 먼저 남성이 바르고 참되게 인도하는 자로서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해병들처럼 교회에서도 수고한 여성들에게 가장 먼저 돌려져야 한다. 이런 삼위일체적인 사랑의 관계가 없다면 단지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디모데전서 2장 11-14절에서 타락의 문제로 인해서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라고 말씀하는데 이 역시 삼위하나님의 내적인 질서를 따른 것으로 이해해야 하며 타락에 따른 질서를 말하는 것이지 남녀의 본질적인 지위의 차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담은 선악수 열매에 대한 금령을 직접 들었고 하와는 그것을 아담에게 전해 들었다. 직접 들은 금령을 잘 설명하지 못한 죄가 아담에게 있다. 그래서 성경은 죄의 유전을 설명할 때, 하와를 대표자로 하지 않고 아담을 대표자라고 하며 대표 원리를 따라 새로운 우리의 대표이신 그리스도를 “마지막 아담”이라고 말씀하신다(고전 14:45). 디모데전서는 이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이 질서는 현대 교회 안에서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까? 위계의 구조가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상호 이해와 돌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가 믿는바 하나님께서 상호 동등의 원리 안에서 사랑과 순종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면 당연히 그 영광을 반영하는 사람 역시 그것을 드러내는 존재여야 한다. 말라기 선지자는 아담 하나만을 지어 그의 갈비뼈로 하와를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이렇게 주석했다.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말 2:15). 경건한 자손을 얻는다는 말씀은 부부간에 삼위하나님의 관계 안에 반영된 사랑과 순종의 원리가 반영된 자손을 얻는다는 의미다.


삼위하나님의 “내재적 자기-관계됨”(internal self-relatedness)은 신자의 신앙의 양식(mode)이며 생활의 방식이다.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타인으로서 아내와 남편에 대한 질서의식이 교회 안에 있어야 참된 교회다.

남녀의 구별이 있다는 것은 차별이 존재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 역할에서 차이가 난다는 의미다. 역할 상의 차이에 대해 성경은 여성을 돕는 자로 만드셨다고 기록한다. 돕는 자라는 표현에 열등함을 떠올리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자시라”고 할 때, 그 단어가 그대로 쓰였다. 부부는 동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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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승수

노승수 목사는 경상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석사학위(MDiv),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핵심감정 시리즈(탐구, 치유, 성화, 공동체)’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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