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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까?
by 박혜영2023-03-11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이미 성경에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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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가 기독교 신앙을 새롭게 보기도 합니다. 평소 ‘기독교식’으로만 생각하느라 미처 바라보지 못한 것을 ‘외부인’들의 도움으로 보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끼리, 우리만 아는 용어로 계속 말하다 보면 진부함에 갇혀 더 이상 새롭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인생과 자연을 진지하게 보는 ‘외부인’들의 시선이 도움이 됩니다.


물론 늘 ‘외부인’들의 도움을 받아야 기독교 진리를 새롭게 볼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기독교 진리를 보던 익숙한 시선 말고, 좀 더 공감의 폭이 넓은 시선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기독교 진리가 우리끼리만 만족하는 그런 게 아니라 보편적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는 겁니다. 당연합니다. 진리라면 우리끼리만 쓰는 용어에 갇힐 수 없습니다. 만약 기독교 안에만 갇혀 있는 진리라면, 그건 진리라기보다는 종교의 독단적인 주장에 가까울 겁니다. 독단적인 주장은 금방 재미없어집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그랬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한 대사가 인상에 남습니다. “아름다운 것은 관심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영화에 나오는 사진작가의 말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관심을 받기 위해 특별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자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평범해 보입니다. 그러다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아, 조용히, 기다릴 때” 비로소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이 비밀을 모르는 월터는 평범하고 소심합니다. 지출이 좀 과하다 싶으면, 가계부 같은 걸 쓰면서 감당할 만한지 살펴봅니다. 누가 회사원 아니랄까 봐 옷도 꼭 그렇게 입고 다닙니다. 인터넷 관계망의 자기소개서에 빈칸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길을 끌 만한 이력이 없는 겁니다. 이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월터는 자주 공상에 빠집니다. 영웅이 되어 극적인 활약을 하거나 자기를 무시하는 상사에게 당당하게 대거리하는 공상에 빠집니다. 이런 월터에게 사진작가는 “안쪽을 보라”는 말을 남기는데, 평범함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모습, 곧 ‘월터의 비밀스러운 삶’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월터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다가 나중에 비로소 알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특별한 주인공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영화는 온 세계 사람들에게 그런 아름다움을 보여주던 저 유명한 잡지 ‘라이프’(LIFE)가 폐간된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름다움 앞에 앉아, 조용히, 기다릴 줄 아는 수많은 작가의 사진을 이젠 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까요? ‘자리를 잡고, 조용히, 기다리면’ 됩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이미 성경에 들어 있습니다. 다만, 관심을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분주한 사람 눈에는 안 보일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리를 잡고, 조용히, 기다리며’ 성경을 읽다 보면 보이고, 그럼 음미하게 되며, 그럼 변화하게 된다고 존 파이퍼는 그의 초자연적 성경 읽기에서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조용히 숨어 있는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평범한 일상이나 자연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에 차이도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외부인’들은 이것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성경만이 알려줍니다. “내가 오랫동안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참았으나, 이제는 내가 숨이 차서 헐떡이는, 해산하는 여인과 같이 부르짖겠다”(사 42:14).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거룩한 아름다움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남용하면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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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혜영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말씀을 듣고 그 길로 행하자’ 외치는, 안양시 관양동에 있는 산오름교회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