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도 미션이 있다
by 필립 정2023-05-02

경쟁과 성과를 위해 잠을 쫓으며 살아야 하는 현대인에게 불면증은 쫓아내기 힘든 불청객이 되었다. 이 불청객을 극복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의미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내 눈에 들어왔다. 진한 아이스티를 마신 탓에 잠들지 못해 컴퓨터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다양한 자연의 소리가 컴퓨터 화면을 가득 채웠다. 천둥소리, 빗소리, 물 흐르는 소리, 또 여치나 귀뚜라미 같은 벌레나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려주었다. 잠이 오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심신이 안정되어 느지막이 잠들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벌레들은 왜 그리도 밤새 울어댈까! 하루 미션에 지친 한 인간 잠재우려고 그리 울지는 않을 텐데….


곤충을 인간에게 백색소음이나 제공해 주는 예능 충 정도로 대접해서는 안 된다. 그 이상의 존재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 수가 심상치 않게 많다. 지구에 있는 동물 중 80퍼센트 이상이 곤충이다. 현재 150만 종의 곤충이 있다고 보고 되지만, 과학자들은 200만 종 이상이 될 것이라고 추산할 정도다. 이렇게 종과 수가 많은 이유는 가장 일반적이고 중요한 일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미션이 분명히 있다. 첫째는 꽃가루를 매개해 확산시켜 꽃나무가 성장하고 번식하게 하는 것이다. 다음은 죽은 동식물을 먹이로 삼아 배설해 썩어가는 물질을 토양의 영양소로 재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을 벌, 나비, 딱정벌레, 개미 같은 벌레들이 수행한다. 수분 활동이나 유기물을 분해하여 영양소를 재활용하는 일 모두 살아있는 생물이 열매 맺고(Be Fruitful) 번성하도록(Increase in Number) 지원하는 일이다. 이런 지원이 없다면, 지구는 생태계가 붕괴하여 먹거리가 사라지고 썩지 않는 동식물이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죽음의 터가 되어 버릴 것이다. 페드로 카르도소(Pedro Miguel Cardoso) 같은 학자는 곤충이 사라지면 다른 동물뿐 아니라 인간들까지 사라지게 된다고 하며 곤충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시사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곤충의 미션을 광의의 개념에서 보면 생육하고 번성하라(Be Fruitful and Increase in Number)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응답으로 보인다. 단지 곤충 자신뿐 아니라 지구의 모든 생물의 생육과 번성을 지원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미션 수행으로 보인다.


그럼 곤충 자신들을 위한 생육과 번성을 위한 협의의 미션은 어떻게 수행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다시 한번 그들의 천부적인 재능, 울음소리에 귀 기울여 봐야 한다.


곤충들은 그 울음조차도 ‘생육과 번성’을 위한 미션 수행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츠르르’ 소리를 내는 여치베짱이는 생김새가 비슷하다. 이들의 수컷들은 앞날개를 위로 들어 가슴 근육을 당겼다 늘였다 하며 날개를 비벼 소리를 증폭시켜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이들은 다른 수컷들보다 더 청량한 소리로 멀리 전달하려고 날개가 닳도록 비벼가며 경쟁하며 밤을 지새운다.


귀뚜라미도 여치류와 같이 날개를 마찰시켜 소리를 낸다. 늦여름이면 풀밭에서 시끄럽게 울다가 가을이 익어가면 점차 사람이 사는 집 주변에서 울어 댄다. 가을이 다 지나 추운 겨울이 되면 집 안까지 들어와 드문드문 힘 다 빠진 소리를 낸다. 가을 내내 날개를 비벼 날개에 구멍이 나고 헐거워져 더 이상 매력적인 리릭 테너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귀 기울이는 암컷이 없어 그 노총각 귀뚜라미의 임 타령 소리가 처량하기 그지없다.


여치류나 귀뚜라미류와 다르게 메뚜기들은 낮에 활동한다. 그들의 수컷은 여치류와 다르게 까칠한 돌기가 있는 뒷다리를 신속히 날개에 비벼가며 소리를 낸다. 이런 곤충들은 현 역할을 하는 다리에 날개가 쉽게 상처를 입는다.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여름 내내 우는 이유는 ‘생육과 번성’의 수행 외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수컷 곤충들이 때로는 날카롭고 강한 소리를 낼 때가 있다. 구애 활동을 할 때 다른 수컷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신사협정을 맺는데 이 거리가 좁혀지거나 구애 활동에 방해를 받으면 다른 수컷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경고를 하는 것이다. 


개구리들도 다르지 않다. 개구리들은 밤에 단체로 모여 노래하며 암컷을 부른다. 수컷들이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경계하며 제창을 하면 이를 듣고 사방에서 암컷들이 호응하며 같이 울어 댄다. 비가 오면 더 즐겁게 노래한다. 노래 부르기 좋게 목청에 습도를 제공해 주고 피부로도 호흡하는 개구리에게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짝을 찾은 개구리는 결혼에 대한 찬가로, 반대로 짝을 못 찾은 개구리는 애가를 부르며 밤이 무르익는다.


곤충들이 존재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지구의 생존과 번영을 벗어나서 설명하기 힘들다. 심지어 곤충들이 자기 몸에 생채기를 내가며 노래하는 이유조차도 자신들의 결혼과 후손의 번성을 위해서이다. 이것을 진화론자들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진화론자들은 곤충의 짝짓기와 산란을 본능을 통한 생존과 진화 그 이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귀뚜라미 노랫소리에서조차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결혼 명령을 듣는다. 그리고 그 작은 벌레가 이를 수행한다.


벌레들이 부르는 구혼의 노래가 평화로운 자장가로 들리는 이유가 있다. 주파수 1000에서 1,0000헤르츠 소리의 규칙적인 리듬은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어 편안한 잠자리에 들게 한다고 한다. 흐르는 물소리나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이 범주에 들어간다. 수컷 벌레들이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가 남의 것 차지하기 위해 애쓰며 하루를 살다 겨우 잠자리에 드는 우리에게 잠을 부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치열한 생업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벌레의 노래가 그리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은 우리의 이런 구차한 삶이 얼마나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자신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결혼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고 이 명령을 온 우주가 수행하도록 생태계를 관리하고 돌보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20년 지구의 날 50주년을 맞이하여 목회자를 대상으로 Christianheadline.com에서 지구의 온난화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 명령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무심함을 뚜렷이 알 수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 목회자들의 53퍼센트만이 지구의 온난화가 실제적이며 사람에 의한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일반인에 비해 지구의 온난화와 기후 변화에 관심이 적었다고 한다. 복음주의 교회 목회자(39%)일수록 그렇지 않은 목회자 (71%)에 비해 지구의 온난화와 인간의 책임에 대해 무관심함을 볼 수 있다. 보수적이고 복음적인 미국 교회의 정치적 지지를 받는 공화당의 많은 지도자가 지구의 온난화가 인간의 책임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복음주의자들이 개인의 구원에 머무르는 신앙의 한계성을 복음주의 목회자들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곤충들의 수가 지난 10년간 41퍼센트나 사라졌다. 산업화와 도시화를 위한 난개발로 대기, 수질, 토양이 오염되어 곤충들의 서식처가 사라지며 인간의 삶조차도 위협받고 있다. 개인의 구원이 실존적이지 못하면 그 존립의 근거가 편협하고 유치해 보인다. 타인의 가난과 고통, 약자의 눈물과 설움을 비켜서면 내 개인의 구원이 손가락질받기 쉽다. 인간의 잘못 때문에 자연이 고통받고 신음하고 있는데 인간 자신이 구원받아 만족하고 그친다면 내 구원은 자연에게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 되고 말까. 세상을 지으시고 보기 좋다고 하시며 계속해서 번성해 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지구를 살펴보자. 오늘도 귀뚜라미는 열심히 울어대며 하나님의 미션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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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필립 정

필립 정 목사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BA),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MDiv), 미국 Talbot School of Theology(MA, 목회 상담)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청소년 영어 담당 사역자와 이민 1세대 교회의 목회자로 섬겼다. 현재 Go Eco Pest Control 회사 대표이며,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간과 야생 동물의 관계를 연구하여 달라스 DKNET 방송국 고정 게스트와 달라스 부동산 라이프 기고자로 활동하고 있다. 인간과 벌레의 교감을 다룬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