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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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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Tim Keller  /  작성일 2020-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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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Dimi Katsavaris on Unsplash

결론은 이것이다. 홀란드가 쓴 책 ‘지배: 기독교 혁명은 어떻게 세상을 재구성했는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The bottom line is this—it is hard to overstate the importance of Tom Holland’s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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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홀란드(Tom Holland)는 본격적인 기독교 역사에 대한 책이라기 보다는 근대 서구 문화가 형성되는 데에 기독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조명하는 책을 한 권 썼다. 그는 기독교가 끼친 영향을 “역설”이라고 표현했는데, 그건 아주 적절하다. 왜냐하면 첫 번째로 기독교 교회는 바람직한 교회상을 보여주는 데에 처참할 정도로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놓고 서로 간에 심하게 분열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고대 역사에 관한 연구로 상을 받기도 한 역사가이자 고대 헬라어 번역가, 또 기록가이기도 한 홀란드는 이런 교회의 슬픈 역사를 낱낱이 보여준다. 비록 기독교 신앙이 가진 몇 가지 측면에 관해서는 깊은 존경을 갖고 있는 저자이지만, 그렇다고 그는 결코 교회를 옹호하는 변증가는 아니다. 


결론은 이것이다. 홀란드가 쓴 책 ‘지배: 기독교 혁명은 어떻게 세상을 재구성했는가'(Dominion: How the Christian Revolution Remade the World)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의 책은 쉽게 읽을 수 있고 또 무엇보다 정말로 탁월하게 서술된 사례들을 통해서 현대 서구 세속 문화의 중심이 되는 가치와 우선순위가 사실상 기독교로부터 유래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심지어 대부분 교육받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버리고 있고, 또 대중 속에서 종교 자체가 심각한 후퇴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도 사회 전반을 향해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지속적이고 만연한 영향력으로 인해서 교회의 실패를 비난할 때 조차 우리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믿음을 먼저 확인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이다. 


생명을 주는 유일한 길


홀란드는 프리드릭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가 처음 선포한 기본적인 사상에 대해서 길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나열한다. 니체는 유럽의 지식인이 기독교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과학적 자유 사상가로서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건 달리 말해, 하나님 없이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그런 사람들이 여전히 인권, 모든 사람이 가진 동등한 존엄성,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가치, 그리고 인간 모두를 돌보고 옹호할 필요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이 큰 가치이며 서로에 대한 용서를 중요시하고 있다고 니체는 믿었다. 달리 말해 하나님이 없다는 그들이 여전히 절대적인 도덕적 가치를 믿는다는 것이다. 즉, 어떤 것은 선하고 어떤 것은 악한데, 특히 약한 자에 대한 억압이 잘못되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니체는 이러한 모든 사상은 기독교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사상은 동양 문화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게다가 그런 사상을 처음 들은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라면서 비웃었다. 홀란드는 여러 사례를 통해서 앵글로 색슨, 프랑크 족(Franks) 그리고 게르만과 같은 고대 이교도가 지배하던 유럽의 수치-명예 문화(the shame-and-honor cultures)의 기준에서 볼 때, 기독교가 주장하는 원수를 사랑하고 또 가난하고 약한 자를 보호하라는 가르침은 결코 당시 사회에 뿌리내릴 수 없는 이질적인 사상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사상은 자신의 형상대로 모든 존재를 창조하신 단 하나의 인격적 신이 존재하고 또한 희생적인 사랑으로 인간에게 오셔서 죽으신 구세주가 지배하는 우주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는 한, 그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사랑은 오로지 기독교적 세계관에서만 자랄 수 있고, 다른 세계관에 비추어 볼 때는 의미가 없었다. 만약에 우리라는 존재가 적자 생존의 과정을 통해 우연히 생긴 것이라고 믿는다면, 절대적 도덕이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삶의 중심은 사랑이 아니라 권력과 지배일 수밖에 없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한다면 오로지 그 길만이 인간이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니체는 선언했다.


니체가 이런 논증을 펼쳤을 때, 그는 미치광이로 매도당했다. 자유주의적이고 세속적인 세계는 우리가 교회의 지배에서 멀어지고, 또 교회가 조장하는 미신과 편견을 버리는 길만이 현대 세계가 노예 제도를 종식시키고 인권을 고양하고 경험적인 과학을 발전시키며 성적인 자유를 증진시키는 길이라는 식의 서사를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그러나 지난 오십 년간 비록 느리지만 확실하게 학계를 주도하는 학자들은 니체가 맞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왔다. 


통찰력의 보석


코넬 대학교의 브라이언 티어니(Brian Tierney)는 보편적 인권과 모든 개인의 평등에 대한 사상을 만든 것이 계몽주의 철학이 아니라 창세기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이루어진 창조를 서술한, 기독교 정경을 만든 12세기 학자들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오클라호마 대학의 카일 하퍼(Kyle Harper)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신체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섹스는 서로 간의 완전한 합의 하에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은 기독교를 통해 세상에 등장한, 실로 놀라운 새로운 개념임을 보여주었다. 역사가들(홀란드를 포함해서)은 로마의 마지막 이교도 황제 줄리안이 급증하고 성장하는 기독교에 맞서 이교도를 되살리려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교도들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멸시했고, 그와 반대로 기독교인들은 병자, 고아, 가난한 사람들, 버려진 유아들을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했다. 그 결과 대중은 점점 더 그리스도를 향했는데, 가난한 자들을 위한 당시의 자선은 실로 기독교 신앙에서만 찾을 수 있는 고유한 것이었다. 


다른 학자(홀란드를 포함해서)들은 현대 과학의 탄생도 세상이 환상(illusion)이라는 동양적 사고와 달리 이 세상을 실재한다고 말하는 기독교적 관점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세상은 지금도 작동하는 우주의 법칙을 만드신 존재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노예 문제에 관해서는 교회의 기록이 섞여있다. 많은 유럽인들이 기독교 신앙의 우월성을 근거로 타 지역을 정복하고 식민지화 했다. 그리고 널리 알려졌듯이 교회 대부분은 아프리카 노예 거래에 연루되어 있다. 그러나 홀란드는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인정하는 몇 가지 사실을 지적한다. 그중 하나는 노예 제도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게 현실이라는 점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노예 제도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니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y of Nyssa)와 같은 기독교인들이 성경이 드러내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바로 깨닫게 됨으로 시작되었다. 두 번째는 노예 해방과 노예 제도 폐지가 비록 너무도 느리게 진행되었지만, 그런 운동을 주도한 이가 다름 아닌 퀘이커와 같은 기독교 단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홀란드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왜곡해서 학대와 착취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악용하던 그때에 조차도 기독교 속에는 오히려 억압자들에게 역효과를 안겨다 주는 놀라운 힘이 있음을 보여준다. 


“반복적으로,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 운하를 통과하든, 매사추세츠 하구에 정착하든, 트란스발(Transvaal)로 깊숙이 트레킹을 떠나든, 자신들이 쫓아내고 있는 사람들보다 자기네가 다 우월하다고 믿던 유럽인들의 확신은 기독교에서 비롯되었다. 그럼에도, 반복해서 [중략] 식민지 주민과 노예들에게 가장 확실한 목소리를 제공한 것은 [중략] 기독교였다. 그런 역설은 실로 심오했다.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제국을 건설하는 그 어떤 정복자 중에서 지금껏 그 누구도 식민지 관리자의 명령에 따라 고문을 당하다가 죽음에까지 이르는 모습으로 그런 정복을 이룬 이는 없었다. 지금까지의 정복자 중에 그 누구도 [중략] 권력의 개념 자체가 문제가 될 정도로 양면적이기 그지없는 권력의 상징을 [중략] 만들어낸 이는 없었다”(504).


홀란드의 책은 여기서 나열하기에는 너무나도 많고 훌륭한 이야기와 통찰력의 보석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더 큰 정의와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역사적 진보에 대한 믿음이 주는 희망이야말로 실로 독특한 기독교 사상이라는 점을 배우게 된다. 사실, 다른 문화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정교 분리라는 개념 자체가 세속 세계에 의해 교회에 강요된 것이 아니라, 원래 어거스틴(Augustine)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또한 기독교가 근본적으로는 문화적 유연성을 지지한다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을을 알게 된다. 기독교는 결코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러니까 어떻게 옷을 입고, 먹고, 살고, 일해야 하는지를 세세하게 지시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홀란드는 심지어 미투(#MeToo) 운동 조차도 애초에 남성에 대한 성적 이중 기준을 요구하지 않았던 최초의 기독교적 성 혁명이 이 시대에 맞게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궁극적인 질문


책의 마지막에 가서야 아주 짧지만 홀란드는 책 내용 전체를 아우르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정말로 이런 인본주의적 가치(humanistic values)가 정말로 기독교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 사실이라면, 이런 기독교의 믿음을 저버리는 사회에서는 이런 가치 조차도 점점 더 그 의미를 잃어가는 건 아닌가? 홀란드는 이렇게 썼다. 


“세속적 인본주의가 이성이나 과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기독교 진화의 독특한 과정에서 나온 게 사실이라면- 유럽과 미국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신이 죽었다면서, 신을 떠나는 현실 또한 그런 진화 과정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그런 인본적인 가치가 단지 죽은 신의 시체가 드리우는 그림자에 불과하지 않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단지 신화에 불과한 게 아니라면, 도대체 인간이 갖고 있는 이 도덕성의 기초는 무엇이란 말인가”(540)? 


홀란드는 이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개개인의 세속인이 매우 도덕적이고 다른 사람에게 전적으로 헌신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묻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크게 볼 때, 그가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한 사회의 전반을 떠받치는 가치 체계가 사실상 기반으로 삼고 있는 믿음 자체를 내던지는 사회가 어떻게 그 가치가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냐는 것이다. 


‘무신론자에게 다가가기’(Atheist Overreach)를 쓴 크리스천 스미스(Christian Smith)와 ‘자아의 근원’(Sources of the Self) 그리고 ‘세속적 시대’(A Secular Age)를 쓴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와 같은 사람들은 기독교가 약화됨에 따라 이러한 가치가 지속될 수 있을지 여부에 관해서 대단히 회의적이다. ‘마음의 습관’(Habits of the Heart)을 쓴 로버트 벨라(Robert Bellah)도 동일한 주장을 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점점 더 버리면서도 인본주의적 가치를 지킬 수 있을까? 무신론자 조지 씨알라바(George Sciallabba)는 테일러의 책을 리뷰하면서 이 질문이 최소한 우리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미덕을 굳게 붙잡는 데에는 때때로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기 희생은 초월적인 정당화 또는 어떤 동기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 바탕이 되는 가장 일반적이고 또 가장 논리적인 동기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다. 그게 아니면, 테일러는 이렇게 신중하게 논증을 펼친다. 현대의 자유는 초월성에 대한 거부를 수반하기 때문에 현대인이 가진 미덕은 전적으로 우발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없이도 인간이 오랫동안 선할 수 있을까? 그 점에 대한 테일러의 의심은 엄청나다. 그리고 또한 거기에는 빠르게 생겨나는 나의 불편함도 있다. 그 불편함의 근원은 비록 재치있고 잠정적으로 표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고 개연성 있게 표현된 테일러의 의심이 사실이라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상이 애초의 토대에서부터 잘못되었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고백한다. 아마도 이런 의심을 가지고 평생 살아가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새로운 이해(Chastened Understanding)


톰 홀란드는 모든 장에서 기독교와 세속주의에 대해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오해를 깨어부수고 있다. 그는 수 없이 많은 실패를 반복하는 교회를 위한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는 또한 세속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가 이성과 과학적 조사의 결과이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것(self-evident)인 양 착각하도록 놔두지도 않는다. 


이런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양측이 다 홀란드로부터 배울 수만 있다면, 이들 간의 대화는 앞으로 훨씬 더 유익해질 것이고 무엇보다 우리가 사는 현실을 좀 더 정확하게 반영할 것이다. 




원제: Nietzsche Was Right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톰 홀란드는 모든 장에서 기독교와 세속주의에 대해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오해를 깨어부수고 있다

Tom Holland punctures common myths about Christianity and secularism in every chap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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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im Keller

팀 켈러는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MDiv)와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수학했으며, 뉴욕 맨하탄 Redeemer Presbyterian Church의 초대 목사이이다. City to City의 회장과 The Gospel Coalition의 설립자이기도 한 그는,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와 ‘팀 켈러의 센터처치’ 등 다수의 책을 저술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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