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gck

사이트 내 전체검색

tgck

검색버튼
사이트 내 전체검색
Articles
homeHome Articles 복음 예수 그리스도

야곱의 사다리와 바벨탑, 그 아래 예수님

페이지 정보

작성자 by Russell Moore  /  작성일 2020-12-18

본문

Photo by Luís Cardoso on Unsplash

아마도 그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지은 지구라트라고 알려진 인공 산 옆으로 올라가는 넓은 돌계단일 것이다

Probably it is a broad stone staircase running up the stepped side of one of the artificial mountains—known as ziggurats—that the people of ancient Mesopotamia built.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서평: 리처드 보컴의 새 책 ‘Who Is God?: Key Moments of Biblical Revelation’  


만일 성경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성경적 이미지를 선택하라고 하면, 여러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출애굽기 3장의 불타는 떨기나무를 생각해보고 있었다. 그 장면이 복음서에 나오는 변화산에서의 예수님의 변형을 연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몇 주 동안은 야곱의 사다리가 계속 떠올랐다. 왜 일까? 그 이유는 리처드 보컴(Richard Bauckham)이 새로 출간한 훌륭한 소책자, “Who Is God?: Key Moments of Biblical Revelation”의 한 구절이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컴은 성경의 핵심 장면들 중의 하나가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자다가 땅에서 하늘까지 닿는 사닥다리 위에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꿈을 꾸는 장면(창 28:10-17) 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야곱의 꿈에 등장한 것이 실제로 사닥다리가 아니라고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계단 아래에 계신 하나님


보컴은 문맥 상 여기서 사닥다리가 계단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한다. 그는 “아마도 그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지은 지구라트라고 알려진 인공 산 옆으로 올라가는 넓은 돌계단일 것이다”라고 본다. 야곱의 조상들의 땅 우르에 유명한 지구라트가 있었다. 그들은 하늘에 닿을 듯이 장대한 산 정상에 신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그들은 그 신들에게 경배하기 위해 진흙 벽돌로 쌓은 계단형 신전을 지었으며, 신들이 거기 유할 수 있도록 하고, 사람들이 신들을 경배하기 위해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 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을 것이다.”



 

68b17e735e0dbba082bef93c52e82978_1607482833_5694.png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학자 리처드 보컴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연구를 간략히 제공하고 있다. 그는 성경이 ‘하나님은 누구신가?’라는 핵심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설계되었다고 언급하기 위해 성경 이야기 속 유명한 순간들의 의미를 깊이 탐색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읽기 쉽고 학자들에게는 중요한 내용을 제공하는 이 책은 성경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 3개의 주요 사건을 탐구하고 있다: 벧엘에서 야곱의 꿈에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의 이름,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의 품성.


각 경우마다, 보컴은 성경 전체를 통해 이 주제를 추적해 간다. 그 다음 그는 마가복음에 나오는 삼위일체를 계시하시는 세 가지 사건(예수님의 세례, 변형, 십자가 사건)을 탐구함으로써 신약 성경이 어떻게 구약 성경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BAKER ACADEMIC. 128 PP. 


창세기에서 우리는 인류가 하나님의 능력에 도달하려 한 바벨탑 사건에서 자기 보호와 자기 영광을 표현하고자 하는 대표적인 특징을 보았다. 모든 인간의 행동에서 이러한 충동적인 경향을 계속 볼 수 있다. 자연이나 사람을 통제하기 위해 마법을 사용하려는 원초적인 시도에서부터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유토피아적 착각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가장 극단적으로는, 치유 받거나 부를 이룰 것이라고 주장하는 번영복음 교사들과 디지털 저장 공간에 자신의 의식을 다운로드하고 불멸성을 확보하고 싶어하는 기술 혁신가 둘 다 이러한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더 미묘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보컴은 야곱의 꿈 이야기가 놀라운 것은 “야곱이 하나님을 계단 꼭대기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계단 밑에서 만난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천사들이 계단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성경 전체를 통해 하늘과 땅의 소통을 중재하는 것을 나타낸다. 하지만 이 꿈에서는 하나님이 그들을 우회하여 계단 아래에서 야곱과 함께 계신다.


야곱이 잠에서 깬 후에 그 곳을 ‘벧엘’이라 명한 이유는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창 28:17)이기 때문이다. 보컴은 그 꿈은 더 원시적이라고 지적한다. “야곱이 발견한 것은 하나님이 야곱 자신이 있는 곳보다 더 특별한 곳에 계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계시며 그가 가는 어느 곳이나 그와 함께 계실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고 네가 가는 곳마다 너를 지켜 주리라’(창 28:15).” 핵심은 “이제부터는 야곱이 잠드는 모든 곳이 벧엘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어디서든 항상 야곱과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벧엘에서의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는 특수성과 보편성 두 차원 모두에서 신자의 일상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어떤 순간이 있다. 많은 이들에게 이러한 경험은 단지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잠깐 비추는 불빛과 같다. 그리고 야곱과 모세와 엘리야와 거의 모든 성경 인물들과 같이 이러한 경험은 보통 승리했을 때나 강한 순간이 아니라 오히려 의존적이고 취약한 순간에 일어난다. 이러한 순간들은 희귀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특히 하나님이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말이다.


또한 이것은 전부 예수님의 성육신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나아간다. 그분의 함께 하심은 특히 베들레헴에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셔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 받으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분의 함께 하심은 이제 하늘과 땅을 이어 통일하심으로 나타난다(엡 1:10).


야곱 이야기의 울림


야곱 이야기는 성경 전체에서 울린다. 특히 요한복음에서 가장 흥미롭다. 예수님이 나다나엘을 보고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 1:47)라고 말했다. 나다나엘의 반응은 TV 화면에서 “너는 재능이 있고 특별해!”라고 하는 말을 개인적으로 들었을 때 ‘네가 어떻게 알아? 날 모르잖아’라고 말하는 나의 반응과 똑같았다. 예수님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요 1:48)라고 말씀하심으로 나다나엘을 당황하게 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그분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에 놀라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요 1:50-51). 이 말씀은 야곱의 사닥다리 이야기를 바로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중에 그분 자신이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계단이지만 그 계단을 오를 수 없으며, 밑에서 우리를 만나실 것이라고 명확히 말씀하셨다. 요약하자면, 예수님은 승천 후에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할지를 걱정하는 도마에게 하실 “내가 곧 길이다”(요 14:6)라는 말씀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같은 일이 조금 뒤에 요한복음에서 일어났다. 예수님이 야곱의 우물에서 한 여인을 만났을 때 말이다. 그녀는 어디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지 - 예루살렘에서인지 아니면 산 위에서 인지 - 에 대해 묻고 싶어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자신에 대해 숨기고 있는 사실까지도 알고 있음을 드러내신다(요 4:16-17; 29, 39). 예수님에 대해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요 4:12)라고 묻는 그녀의 질문은 옳은 것이었다. 그렇다 그분은 야곱보다 크셨고 또한 크시다. 그분은 그저 우물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시다. 그분은 단지 계단의 꿈에 나오는 이일뿐만 아니라 계단 그 자체이신 분이다.


그리고 물론 모든 우주의 역사는 한 순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그때 천지가 하나가 되며,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신다]”(계 21:3).


하나님이 함께 하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개념은 우리에게 지금 꼭 필요하다.


기술은 도움이 되는 도구이지만 신으로서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경제 발전은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는 좋지만 우리의 깊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지만 또한 나뉘어져 있으며 물질적으로는 번성하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가난하다. 우리의 계단은 어디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답은 위로 향한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닥다리 아래에 있는 분 - 자신의 임재로 우리의 잠을 방해하시며, 거기에서부터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는 하나님 - 을 찾는 것이다.




원제: Jacob’s-Ladder Christianity vs. Babel-Tower Christianity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정은심

보컴은 야곱의 꿈 이야기가 놀라운 것은 “야곱이 하나님을 계단 꼭대기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계단 밑에서 만난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What’s remarkable about Jacob’s dream, Bauckham argues, is that “he sees God not, as one would expect, at the top of the stairway but at the bottom.”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작가 Russell Moore

러셀 무어는 New Orleans Baptist Theological Seminary(MDiv)와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PhD)에서 수학했다. Southern Baptist Convention의 회장이며 미국 TGC의 이사이다. 저서로는 '폭풍 속의 가정', '입양의 마음', 'Onward: Engaging the Culture without Losing the Gospel' 등이 있다. 

최근 예수 그리스도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