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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를 통해 배우는 성탄절 교리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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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고상섭  /  작성일 20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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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david beale on Unsplash

팀 켈러는 성탄의 의미를 가장 짧은 한 줄로 설명하는 교리가 있다면 아마도 요한복음 1장 14절일 것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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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에게 설교가 늘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지만, 특히 절기설교는 더 어려운 것 같다. 매년 돌아오는 절기마다 어떤 본문을 어떻게 설교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설교자들이 많이 있다. 절기설교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2017년 12월 리디머 교회에서 설교한 ‘성육신의 영광’(The Glory of the Incarnation)이라는 팀 켈러의 설교를 통해 성탄절 교리설교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팀 켈러는 성탄의 의미를 가장 짧은 한 줄로 설명하는 교리가 있다면 아마도 요한복음 1장 14절일 것이라 말한다. 성탄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팀 켈러는 본문을 벗어나지 않지만, 지나치게 본문에 매이지 않으며 성탄절의 의미를 교리적 진술로 설명한다. 설교의 골격은 ‘말씀이 육신이 된’ 사건이 주는 세 가지 의미이다.


첫째, 성육신의 사건은 고통 가운데서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첫 번째 대지는 팀 켈러의 본문에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요 1:14-18). 그러나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면 그것은 죄와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의미하기 때문에 교리적 대지로 적절하다. 그러나 첫 번째 대지를 들으면 청중들은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예수님이 오신다고 고통에서 위로가 된다면 왜 나는 지금도 계속 고통 중에 있는가?” “예수님이 고통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는데 왜 세상은 여전히 어려운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지만 여전히 고통은 계속되고, 내 삶에서도 완전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팀 켈러는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않는 이유와 지금도 여전히 고통이 있는 이유에 대해 명확히 인간이 알 수 없지만, 말씀이 육신이 된 이 사건을 통해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이 아님을 증명한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사람으로 이 땅에 오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18)


또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이 시험당하는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인간이 겪는 고통의 강도가 5라면 3정도의 고통을 당한 사람들과 대화할 때 그들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한 사람을 만나면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으셨고, 십자가에서 진노를 감당하신 분이시다. 세상의 어떤 고통도 그분의 고통보다 더 크지 못할 것이다. 우리를 위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벌거벗겨진 아기의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바라보면, 고난 속에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 때문에 고난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지만, 위로를 경험하게 된다.


필립 얀시(Philip Yancey)의 책 ‘내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를 보면 조니 에릭슨 타다(Joni Eareckson Tada)의 이야기가 나온다. 조니는 어린 시절 다이빙 사고를 통해 사지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그가 고통 속에서 부르짖을 때 가장 힘든 것은 아무도 자신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예수님은 너의 고통을 이해하고 계셔!” 라는 말을 듣고 처음엔 분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몸을 움직이지 못해서 얼굴에 묻은 것을 닦을 수도 없는 자신과 십자가에서 두 팔이 못 박혀 움직일 수 없는 예수님의 상황이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예수님께로 다시 헌신하게 된 계기는 바로 자신의 아픔을 이해하시는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팀 켈러는 ‘태어남에 관하여’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고통스러웠지만 또한 기쁨이었다고 말한다. 엄마가 아이를 낳을 때 고통스럽지만 해산한 뒤에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리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기쁨에 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출산의 기쁨도 너희를 바라보는 내 기쁨에 비하면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하다. 내가 모든 고난과 고문과 죽음을 기꺼이 당한 것은 너희를 구원하고 사랑하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고난당하셨다는 사실을 통해 지금 여전히 고난은 없어지지 않지만 그분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고, 그 사랑은 오늘의 고난 속에서 우리에게 위로를 제공해 준다.


둘째, 성육신의 사건은 고통가운데 있는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도록 내적인 힘을 공급한다


출애굽기 3장에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고통가운데 있을 때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하나님이 내려오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출 3:7-8)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 가운데 오신 이유는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해 내려오신 것이다. 강도를 만난 사람들이 있을 때, 누군가 건장한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폭행을 당하고 있을 때 우리는 선뜻 그 고통에 동참할 수 있는가? 참 사랑은 자신의 안락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며, 자신의 안정을 포기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고통가운데 있는 인간들을 위해 내려오셨다. 말로만 사랑을 이야기 하신 분이 아니라 직접 자신의 몸으로 행동하신 것이다. 빌립보서 2장에서도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시지만 자기를 비워서 인간이 되셨다고 말하고 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5-8)


바울은 빌립보서 2장 3-4절에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라”고 권면한다. 어떻게 자기중심적인 인간이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길 수 있는가? 그 비결이 바로 5-8절에 있는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자기를 비워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이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힘을 공급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위로 받기를 원하지만 자신이 잘 헌신하지는 않는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기독교 기본진리’에서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영성에 대해 소파의 쿠션처럼 신앙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헌신이 없는 위로와 안락만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기중심성을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바로 성육신의 의미를 다시 기억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성육신의 마음을 품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 은혜가 내적인 동기가 되어 은혜받은 우리가 또 다른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원하신다.


셋째, 성육신 사건은 고통 속에서도 소망가운데 이 땅을 살아가게 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에서 ‘거한다’라는 헬라어 단어는 ‘장막을 치다’ (tabernacle) 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성막을 의미하며, 지성소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을 연상시킨다. 성막의 가장 거룩한 지성소에서 쉐키나 영광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함께 거하시는 것이다. 구약의 성막은 언제나 휘장으로 가려져있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절대 거룩의 영역이었다. 일 년에 한 번 대제사장에게만 허락된 곳이었다.


그 휘장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찢어졌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렸다. 이제 우리는 정죄없이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결국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서이다. 그 마지막 날의 완전한 소망이 있으므로 우리는 이 땅을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 조엘 비키(Joel Beeke) 목사는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8)을 해설하면서 마지막 날에 주님이 주시는 상이 예비되어 있는데, 그 확실하고 흔들리지 않는 상을 생각하면 이 땅의 어려움 속에서 지속적으로 견딜 수 있는 힘을 제공해 준다고 말했다. 결국 오늘의 어려움을 이기는 힘은 장래의 소망이며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우리에게 참된 소망가운데 이 땅을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팀 켈러의 설교는 단순히 은혜로운 한 편의 설교일 뿐 아니라 설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교본과도 같다. ‘그리스도 중심의 교리적 절기설교’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앞으로 절기 설교를 준비할 때, 위의 팀 켈러의 예처럼 절기에 해당하는 본문에서 중요한 교리를 선언하고 몇 가지 교리적 진술을 대지로 삼아 설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편의 좋은 설교는 내용 뿐 아니라, 설교의 방식까지 가르쳐주는 친절한 선생님과 같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성육신의 마음을 품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 은혜가 내적인 동기가 되어 은혜받은 우리가 또 다른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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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고상섭

고상섭 목사는 영남신학대학교와 합동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그 사랑교회'를 개척해 섬기고 있다. ‘팀 켈러 연구가’로 알려져 있으며 CTC코리아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최근 공저한 ‘팀 켈러를 읽는 중입니다’ 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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