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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삶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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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Chad Bird  /  작성일 2019-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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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Natalya Zaritskaya on Unsplash

아직 유치원에서 색칠 놀이를 할 즈음, 혹은 세발자전거를 겨우 탈 즈음의 어린 시절부터 그 영혼의 밭에 뿌려지는 씨앗이 있다. 그 씨앗은 TV와 각종 미디어를 통해 물과 거름을 공급받으며 무럭무럭 자란다. 그 후 때가 차면 곧 꽃을 피우고, 벌과 바람의 도움을 받아 다시 무수한 씨앗을 사방으로 퍼뜨린다. 우리는 이 씨앗을 경쟁심, 성취욕, 또는 우월감이라고 부른다.


“일등이 되어야 해.” “특별해야만 해.” “남들보다 돋보여야 해.” “친구를 밟고 일어서.” “너의 이름을 높여.” “평범은 안돼.”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현대 사회를 장악한 성취주의에 세뇌된다. 


완벽에 대한 열망은 서구는 물론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상징과도 같다. 하지만 과도한 성취주의는 감당하기 힘든 사회적 악몽이 되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곤 한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성공 만능주의는 타인에 대한 믿음을 사그라뜨리고, 관계의 희망을 부수며, 사람을 향한 사랑을 말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비인격적인 개념이자 사회적 문젯거리가 된다.


성공주의의 폐단


이제야 막 빛을 보기 시작한 내 상실의 여행은 사실 20년 전인 18살 즈음부터 시작되었다. 이 기나긴 여행의 열매부터 말하자면, 나는 야망을 향해 허우적거린 끝에 길을 잃었고, 졸업장이 보장하는 행복을 내려놓았으며, 성취에 대한 과한 집착과도 이별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지난 20여 년의 시간 동안 줄곧 성취주의에 사로잡힌 채 살아왔다. 학창 시절에는 우수한 성적을 위해서, 목회자가 된 이후에는 탁월한 찬양과 월등한 헌금액을 향하여 고군분투하였다. 나는 인생이라는 사다리의 맨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고자 매번 그렇게 기를 쓰고는 했다. 원하던 학위를 손에 쥔 후에도, 그 다음의 학위, 또 그보다 높은 학위를 계속해서 움켜쥐며 나아갔다.


결국 나는 라틴어와 히브리어, 독일어를 넘나들며 여러 신학 고전들을 막힘없이 읽고 쓰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그러나 이토록 화려한 성취와는 달리 내 삶은 실패를 경험하고 있었다. 많은 학위와 지식을 얻었지만, 나는 정작 어린 내 딸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동물을 무서워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타인들의 박수에도 불구하고, 나는 삶의 가장 소중한 영역에서 실패했다는 사실에 직면해야 했다. 


이 실패의 뒷이야기가 궁금한가? 역설적이게도 나는 실패하는 것에 성공함으로써, 성취 만능주의에서 벗어난 삶의 행복을 뒤늦게나마 알아가고 있다. 다시 말해, 나는 평범한 삶의 추구를 통하여 안정을 배우고 있다. 원대한 꿈을 따르기 위해 목표 이외의 것은 보지 못하는 생활, 그 인생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만족을 주는지 서서히 알아가는 중이다.


조용한 삶이 주는 아름다움


바울은 조용한 삶을 추구하라고 조언하였다(살전 4:11). 그가 만약 이 내용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아닌 오늘의 우리에게 쓰고자 했다면, 아마도 그가 가진 두루마리 종이로는 지면이 모자랐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마치 우스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바울은 분명하게 말한다. 야망을 잠재우는 연습을 하라고, 겸손의 옷으로 자신을 드러내라고, 그리고 소소한 삶을 추구하라고 말이다. 즉, 바울은 우리에게 개인적 성취에 도취하지 말고, 그 성취를 앞세워 관계의 주도권을 확보하지 말며, 그 성공을 통해 나의 무게감을 입증하려 하지 말라고 지적한다. 또한 본인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이 드러나야 하는 자리를 은근슬쩍 탐내지 말라고 조언한다. 다시 말해, 그는 우리에게 성공주의라는 그릇된 문화를 경계하라고 요구한다.


화려함 대신에 고요한 삶을 추구하라는 조언은 인생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 조언의 정확한 뜻은 첫째, 위로만 향했던 눈을 아래로 돌림으로써 당신 주변의 사람들을 살피라는 의미이다. 인생의 사다리를 어떻게 뛰어오를지, 어떤 트로피를 거머쥘지 골몰하느라 오직 나밖에 보지 못하는 삶을 경계하라는 의미이다. 바울이 말하기를, 우리는 눈을 돌려 하나님이 내 곁에 머물도록 하신 가족과 이웃을 둘러보고, 이들을 깊이 섬겨야 한다. 그는 나 자신보다는 이웃들이 어떠한 문제로 고민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서 조용히 생각하라고 조언한다(빌 2:3). 더 크고, 화려하고, 강력한 성취를 끝없이 갈망하는 행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크리스천으로서 이러한 우상을 바라보는 대신 가족 및 이웃과의 작고 소소한 행복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고요한 삶을 추구하라는 의미는 둘째, 하나님이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한 일상에 임재하신다는 사실을 경험하라는 것이다. 대단히 짜릿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굉장한 성취를 통하여 주님의 역사를 보려고 하지 말라. 하나님은 부서진 심정으로 죽음의 골짜기를 다니는 자들과 함께하신다. 주님은 이리저리 헤매느라 상하고 새카매진 자녀의 발을 만지시는 분이다. 그분은 우리의 상한 심령을 소생시키려 마지막 피와 땀까지 모두 쏟아 내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다. 한없이 높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곳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약속한 때가 되어 주님의 나라가 열리는 그날, 우리는 하나님께 칭찬받을 자가 누구일지 기억해야 한다. 분명 하나님은 작고, 연약하고,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아이와 같은 자에게 그 왕관을 씌워 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최고라고 말씀하실 자는 일등의 자리에 선 자가 아니요, 낮은 곳에서 겸손히 거하는 자일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 위대함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분은 한계가 없는 장엄함을 지녔지만, 좁고 낮은 당신의 공간에 거하신다. 또한 세상을 창조하신 그 영광의 목소리를 약한 목회자의 입을 통하여 나타내신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대단한 업적으로 우리를 복종하게 만드시는 분이 아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기 원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란, 단번에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선물이 아니라, 우리 삶의 가장 평범하면서도 없어서는 안 될 생명과 같은 것이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겸손한 신앙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wtape Letters)라는 고전에는 고참 사탄이 등장한다. 그는 웜우드(Wormwood)라는 이름의 신참내기 사탄에게 “변함 없는 것에 질색하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라”라고 지시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자면, 불변에 대한 거부감은 사탄이 “인간의 마음에 심어 놓은 가장 효과적인 약점”이다. 하지만 불변이란 질색해야 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도리어 크리스천에게 기쁨이 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왜냐하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어제와 오늘은 물론, 지금 이후로도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실 분이다. 인간은 이전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고 죄를 지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부터 지금까지 성령을 통하여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성취를 위해 끊임없이 방황할 것이 아니라, 그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연약함과 평범함 속에 있는 이웃들이 알아가도록 도와야 한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하나님의 영광과 그 영광 안에서 크리스천이 누리는 기쁨은 전혀 빛나거나 화려하지 않다. 이는 아기 예수의 탄생이 말구유에서 시작되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 예수님의 부활을 빈 무덤으로 증명하셨던 것과 역시 같은 이치이다. 주님과 그 백성들의 영광은 우리의 대단한 성취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라. 오히려 그 영광은 겉보기에는 마치 소박한 선물처럼 보이는 삶의 작은 면면에서 발견된다. 그것도 화려한 포장지가 아닌, 재생지로 감싼 듯 평범하고 겸손한 삶 속에서 말이다. 구유에서 태어나신 연약한 아기 예수와 죽임 당하신 메시아. 우리는 낮고 곤궁한 자리를 자처하셨던 예수님을 상기하면서, 지금 그와 같은 자리에서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웃을 바라보아야 한다. 바로 우리 주위의 배고파 하는 이웃들과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 말이다. 크리스천으로서 온전한 삶을 이루는 길은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약함 속에 처한 형제와 자매들을 위해 우리의 사랑을 모두 비워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비워진 자리가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다시 가득 채워지는 경험을 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고요한 삶이 주는 하나님의 큰 영광을 맛보게 될 것이다.



원제: The Joy of an Unaccomplished Life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정새롬

작가 Chad Bird

채드 버드는 Christ Hold Fast의 정기 기고자이다. 대표 저서로 'Your God Is Too Glorious'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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