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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에서 발견하는 예수 그리스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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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Glen Scrivener  /  작성일 2019-01-08

본문

Photo by Gabriele Ribeiro on Unsplash

모리아 산에서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 22장)


예표된 그리스도: 이 본문은 믿음을 극단적으로 시험하는 장면을 보여 주지만, 사실 그 시험은 아브라함의 믿음 이상을 요구하는 테스트였다. 하나님이 다음과 같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는 구절은 이 본문을 읽는 독자들에게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내용으로 다가온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이 내용은 독자들이 이 본문에 암시된 예표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이해하기가 까다롭다. 그 아들이 누구였는가? 그는 아브라함의 씨이며 세상의 소망이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바로 그 사랑받는 아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따라서 만일 그가 희생제물이 된다면,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고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하기 위해 그 아들을 다시 살리셔야 했다.


우리는 여기서 훗날 예루살렘이 될 지역에 속한 어느 산에서 그가 희생제물이 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창 22:1-14; 대하 3:1). 그는 나무를 등에 지고 스스로 희생제물이 될 장소를 향해 힘겹게 올라간다(창 22:6). 그때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들을 죽여도 그를 다시 찾게 되리라고 믿었다(창 22:5; 히 11:17-20). 바로 이 (아들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예표를 이해하게 될 때, 창세기 22장은 우리의 이해를 가로막는 난관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신앙을 끌어올리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된다.


약속된 그리스도: (전통적으로 모세라고 간주되는) 창세기 22장의 저자가 이제 어떻게 그 산을 설명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창 22:14). 수백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산을 가리키며 미래에 그들을 위해 준비될 대속을 기대했다. 그들은 어디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지를 알고 있었다. 수세기 동안 구약 시대의 성도들은 이 일을 위해 약속된 메시아를 대망하며 그들의 소망을 품었던 것이다.


현존하는 그리스도: 창세기 22장 11절에서 아브라함의 행동을 가로막는 이는 ‘여호와의 사자’(the angel of the Lord)였다. 그리고 그 사자는 15절에서 다시 아브라함을 부르는데, 이때 그 사자가 가진 정체성은 매우 인상적으로 보인다. 이 사자는 스스로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 사자는 비록 여호와께로부터 보냄을 받았지만, 여호와가 직접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씀을 전달한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중략]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창 22:16-17). 우리가 성경에 등장하는 다른 천사들을 보면, 그들은 (요한계시록 22장 9절에서처럼) 자신이 하나님과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내곤 한다. 그러나 창세기 22장에 등장하는 사자는 매우 독특하다. 그의 이름은 말 그대로 ‘보냄 받은 자’(the Sent One)라고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여호와로부터 보냄 받아 그 자신이 여호와로서 말씀하는 존재이다. 교회사의 신조에서 사용된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하나님’(God from God)인 것이다.


바로 이 사자의 정체에 관해 칼빈은 그 앞선 시대의 해석사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교회의 정통적인 학자들이 정확하고도 지혜롭게 설명하기를,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은 최상의 사자(the supreme angel)였다가 마치 예정된 바와 같이 중보자의 직분(the office of Mediator)을 수행하기 시작했다”(기독교강요 1권 13장 10절).


창세기 22장에서 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하나님’은 이삭에게 떨어지는 심판의 칼을 가로막는다. 그로부터 2천 년 후, 바로 그 중보자는 동일한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향해 내리시는 심판을 다시 가로막게 된다.


떨기나무에서 타오르시는 예수 그리스도 (출애굽기 3장)


예표된 그리스도: 불타는 떨기나무는 성경 여러 군데에서 사용된 다른 이미지들과 유사성을 지닌다. 일단 나무는 흔히 하나님의 백성이나 그들을 대표하는 왕을 비유하는 데 사용된다(삿 9장; 사 5장; 요 15장). 그리고 애굽에서 당한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은 풀무불로 자주 묘사된다(신 4:20; 왕상 8:51; 렘 11:4). 이와 같이 우리는 이 불타는 떨기나무에서도 고통의 풀무불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더 나아가 예표된 그리스도가 자리하고 있다. 즉, 그들을 대표하는 왕이 ‘나다’(I Am)라고 자신을 드러내며 그 백성과 함께하고 또한 그들을 건져 내기 위해 불길 속으로 내려오신 것이다.


약속된 그리스도: 출애굽 자체가 약속의 성취이다. 창세기 12장 이후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씨’가 만민에게 복이 되며 그들을 다스리게 될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씨에 대한 약속에서 애매한 부분은 그 ‘씨’가 복수(이스라엘)인가, 아니면 단수(그리스도)인가 하는 문제이다. 대답은 ‘둘 다 맞다’이다. 그 ‘씨’는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으로 이루어지고, 때가 이르면 단수로서 그 민족을 대표하는 그리스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갈 3:16). 이렇게 그 씨에 대한 약속이 발전되는 것처럼, 우리는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씨가 겪을 고난(죽음)과 회복(부활)의 패턴을 미리 말씀하시는 장면을 보게 된다. 곧 그 씨는 장차 종노릇하며 고통을 겪겠지만, 심판을 통해 더 큰 영광 가운데로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창 15:13-15). 이 죽음과 부활의 패턴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이 경험하지만, 우리가 출애굽의 역사를 지켜보면, 그 사건이 바로 다가오는 복음 이야기의 예고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출애굽 사건 전체가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의 약속인 것이다.


현존하는 그리스도: 하나님의 이름인 ‘나다’(I Am)라는 선언은 우리가 가진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토대가 된다. 이 선언의 의미는 구약성경에서 약 6800번이나 사용된 ‘여호와’라는 이름 속에 잘 담겨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본래대로 말하면 “가시떨기나무 가운데에 계시던 이”(신 33:16)이다. 그가 누구인가? 그는 여호와의 사자로서 그 자신이 바로 여호와로서 소개되는 이다(출 3:2, 6, 14). 존 오웬(John Owen)은 그가 “언약의 사자이자,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큰 사자로서 하나님의 이름과 속성을 가졌다. [중략] 이와 같은 사자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에서 유다서의 저자는 출애굽 사건을 돌아보며 이와 같이 말했다. “[예수]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유 5; 참고 4절). 결국 이 모든 사실을 고려할 때, 예수 그리스도가 참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성경 전체의 주인공이 되신다.


만유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한 젊은 목회자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니까요”라며 구약성경의 해석이 그리스도로 귀결되는 과정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을 때, 도대체 어떤 문제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이런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곧 그 목회자만이 아니라 모임에 참석한 다른 목회자들도 그리스도의 중요성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들은 구약성경이 이미 그 자체의 문맥과 용어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는 크리스천 성경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구약성경은 처음부터 주 메시아를 선언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분명 구약성경에는 여러 ‘예표’들이 자리하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복음을 나타내는 이미지는 수세기에 걸쳐 층층이 쌓여 가며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성전이자 속죄양이시고, 제사장이자 왕이며 또한 선지자이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위대한 요셉이고 다윗이며 요나와 같은 분이시다. 이 모든 내용이 사실이다. 그러나 진리의 전부는 아니다.


창세기 3장 15절 이후로 성경 전체에 걸쳐 발견되는 핵심적인 ‘약속’들도 있다. 그 약속들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씨, 즉 여자의 씨, 아브라함의 씨, 그리고 다윗의 씨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분은 땅과 평화와 축복과 관련된 모든 약속들을 성취하신다. 이 모든 내용도 사실이다. 그러나 진리의 전부는 아니다.


이러한 내용들에서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또한 구약성경 속에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우리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사이에 마치 그리스도로 방향을 전환하는 장치가 있다는 식의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걸쳐져 있는 그 무엇은 단지 어떤 계획이나 약속이 아니라 존재이다.


곧 예수님이 바로 그 성경을 하나로 만드시는 분이다. 그분은 마치 운동 선수들이 한창 이기고 있는 경기를 벤치에 앉아 관람하며 4쿼터 출전이나 기다리듯이 그렇게 구약성경의 이야기를 지켜보고만 있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분은 선수이자 코치이며 매니저로서 모든 경기를 직접 주관하신다. 구약성경 전체에 걸쳐 그분은 지존하신 하나님의 유일한 중보자로서 성육신을 통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날을 향하여 계속 전진하신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늘 존재하신 주님이시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Where Is Jesus in the Old Testament?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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