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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적 목회자들이 가진 교만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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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Kyle Gregory  /  작성일 201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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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auricio Fanfa on Unsplash

겸손해 보이는 목회자 안에 도사리고 있을 수 있는 교만의 형태가 하나 있다. 겸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수동적인 목회자의 모습이다. 


겸손의 모습을 하고 있는 목회자는 보통 가장 먼저 자신이 잘못했다고 시인하고, 가장 먼저 자신의 성급함을 사과하며,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일은 가장 나중에 하는 사람일 수 있다. 그는 젊고 경험이 적은 사람에게도 기쁘게 사역의 책임을 나눌 기회를 주며, 자신이 개인적으로 죄와 씨름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양떼들에게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는 사람들이 다가가기 쉽도록 너그러운 모습을 보이고, 모든 질문을 경청하며,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지 않다고 시인하기도 한다.


하지만 겸손해 보이는 이 모든 형태들이 실제로 교만한 목회자 안에 있을 수 있다. 이들이 겸손해 보이는 이유는 거짓으로 소통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회자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이상화시켜 놓은 목회자의 모습을 스스로 구현해 내야 한다고 여기는 수동성이다.


나는 아직 젊지만 이미 내 안에서 이러한 교만의 형태를 보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목회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목회자의 수동성은 공동체 전체를 심각하게 기만하는 죄가 될 수 있다.


수동적 목회자


수동적 목회자들이 모두 교만하지는 않다. 그들은 진정으로 권위가 회중에게 있기를 원할 수도 있고, 스스로 권위적인 모습을 정말로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목회자는 아마도 너무 오랫동안 사역을 하면서 탈진 상태에 빠져 회중의 미래에는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교만에 의해서든지 태만에 의해서든지, 수동적인 목회자의 문제는 때로 양떼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며 또한 모두를 기만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지도자가 양떼를 치는 대신(벧전 5:2), 양떼들이 좋아하는 초장으로 힘없이 따라가고 있을 수 있다. 그는 잘 배울 수는 있지만, 바른 가르침을 주지 않을 수 있다(딤전 3:2). 건전한 교리를 촉구한다고 하지만(딤전 6:2), 그저 좋은 생각을 제안하는 식으로 대충 넘어갈 수 있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계속 지키도록 감독(히 13:17)하는 일과 가르치는(딤전 4:16) 일을 할 때, 양떼들이 듣기 원하는 것만을 가르치면서 그들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가 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베드로 사도를 만났다면, 그가 바로 이러한 것들로 인해 얼마나 유혹을 받았는지 보고 놀랐을 것이다. 그는 담대한 면이 있었지만 성급했고, 동료의 칭찬을 듣는 것도 좋아했다. 당신이나 나만큼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좋아했다. 의심이 든다면, 그가 빌라도의 여종 앞에서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었는지를(막 14:66-72) 살펴보라. 혹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유대인들이 방에 들어오자 그가 방에서 빠져 나감으로써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않은 사건(갈 2:11-14)을 점검해 보라. 그랬던 사람이, 성령의 감화를 받았을 때는, 장로들에게 얼마나 담대하게 권면하고 촉구했는지를 들어 보라.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 5:1-3).


이 구절에서 “양 무리의 본이 되라”라는 말을 주목해 보자. 이는 그림 언어로서, 우리가 상상력을 동원하면 이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양의 특징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보통 멀리 보지 못하고, 급하며, 분별력이 부족하다. 그들은 이리저리 헤매기를 잘하고, 변덕스러우며, 위험이 있으면 잘못된 길로 달아나기를 잘한다. 


하지만 목자들은 양에게 이러한 취약한 모습이 있다고 경멸하지 않는다. 목자들은 양떼를 능동적으로 돌본다. 그들은 주변의 위험을 고려하고, 새로운 초장으로 가는 길을 생각하며, 약한 양을 돕고, 해코지하는 양들을 따로 떼어 놓으며, 새끼 양을 돌보고, 천적이 나타나는지를 경계하며 지켜본다. 하지만 숫양이 순순히 잘 따르도록 인도할 뿐만 아니라, 암양을 위하여 하프를 연주하고, 새끼 양을 도닥거려 주며 수동적으로 양떼들이 원하는 일을 해 주었다고 하여 자신의 모든 책임을 완성했다고 자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양이 필요한 양식을 얻도록, 그리고 안전하고 건강하도록 감독한다. 혹시라도, 양을 잃고 목자장에게 돌아가야 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리고 그 앞에서 “그런데 양떼들이 절벽 근처의 초장을 정말로 좋아했습니다!”라고 변명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서 감독한다.


특별한 감독


베드로가 장로들에게 “양무리의 본이 되라”고 명한 말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자. 이는 감독자가 되려면 여느 감독처럼 하지 말고, 의지와 열심 및 특히 모범을 보이는 바른 감독자의 태도를 가지라는 말이다. 목회자가 특별한 감독자가 되어야 한다는 면에서 보면, 목회자를 목자로, 성도들을 양떼로 비유하는 그림 언어는 우리의 이해를 돕는 데 많은 유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계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양은 목자를 보면서 “나는 그의 모범을 따르기 원한다. 나도 위험이 있는지 지켜보아야겠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목자처럼 스스로 자신의 안전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목회자의 입장에서 보아도, 그는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위임받았지만 자신이 양떼나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회자는 본을 보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목회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비를 필요로 하는 죄인이며 양떼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희생적 사랑을 통해 권위를 실천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조금 다른 비유인 합창단 지휘자의 모습을 통해 지도자가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자. 그리고 특별한 감독자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지를 고민해 보자. 


어떤 지휘자는 누군가가 틀린 음정을 내고 있는데도 연습을 중단시키고 그것을 지적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지휘자는 음악을 작곡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는 단지 음악을 읽을 수 있고, 자신감과 명료함으로 지도하기만 하면 된다. 베이스의 음이 잘못되었는데도 그것을 교정하지 못하는 수줍은 지휘자는, 작곡자가 작곡을 잘못했다고 지적하며 끊임없이 거만을 떠는 지휘자와 똑같이, 지휘자로서 자신의 권위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 명은 너무 수동적이고, 다른 한 명은 너무 지배적이기 때문에, 합창단 전체가 당하는 고통은 별반 다름없다.


이와 같이 너무 수줍고 수동적이어서 감독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거나 못하는 지도자는, 경건하지 않은 지배력으로 독재하는 지도자와 마찬가지로, 공동체에 해를 끼칠 수 있다. 권위주의자는 초기에 눈에 띄게 공동체에 손상을 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조용히 따르기만 하는 꼭두각시 지도자는 공동체에 장기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다.


위로부터 오는 칭송을 구하라


요약하면, 지도자의 권위는 자신감과 겸허함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감독과 모범의 역할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깊이 필요로 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이것을 완벽하게 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목회자는 교회의 머리이신 대장 목자를 바라보아야만 한다. 그는 주님의 은혜로 마음을 채우고 그가 은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들을 말씀으로 변화되도록 돕기 위해 그가 행하는 모든 일은 같은 말씀으로 자기를 끊임없이 변화시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 


무엇보다도 수동적 목회자는 그가 갈망하는 칭찬을 사람에게서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는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따르며 칭송을 갈망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그가 원하는 칭송은 종말에 대장 목자가 주실 것이다. 그것은 확실하며 하늘에 보존되어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여, 언젠가는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신 영광의 왕에 의해 입증되고 판결받으며 보상받을 것을 고대하며 살고, 가르치며, 인도하라.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When Passivity is Prideful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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