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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벨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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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Jon Bloom  /  작성일 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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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Zac Durant on Unsplash

창세기 4장에 등장하는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는 사실 아벨보다 가인이 더 많이 등장한다. 심지어 살아 있는 아벨의 말은 한마디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히브리서 저자는 “그가 죽었으나 그[아벨의]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라고 기록한다(히 11:4). 그렇다면 대체 죽은 아벨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다는 것일까?


해질 무렵이었다. 가인은 늦게까지 일하고 있었다. 그는 밀려드는 죄책감과 두려움 때문에 부모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에 농사일에 몰두하며 숨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호와의 음성이 가인의 마음을 찔렀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날의 사건이 있기까지, 가인은 아벨에 대한 혐오를 점점 키워 갔고 악한 마음은 여러 해 동안 더욱 커졌다. 가인에게는 아벨이 항상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실은 이랬다. 갈등이 생기면 겸손한 아벨이 먼저 화해하기를 원했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도 아벨이 나서서 기꺼운 마음으로 섬겼다. 이웃이 다쳤을 때 역시 아벨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가장 먼저 위로를 건넸다. 가인이 자기보다 뛰어난 성과를 보일 때도, 아벨은 겸손의 미덕을 가진 자로서 질투가 아닌 평온한 만족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가인이 가장 싫어했던 것이 바로 아벨의 이 경건함이었다. 모든 사람을 존중하며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하는 아벨이 그의 눈에는 과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부모가 동생 아벨의 장점을 칭찬할 때마다 가인은 이를 견딜 수 없었다. 

 

이런 시기심이 점점 반복되자, 가인은 아벨이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고자 선한 척을 한다고 의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가인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강력한 타격을 입었다. 여호와께서 그날 가인과 아벨에게 각각 자신이 수고한 첫 번째 결실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셨다. 가인은 이것을 기회로 여겼다. 이번에는 자신이 받아야 할 관심과 주목을 아벨이 가로채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그는 최상의 농산물을 단 위에 가득 올려둔 채 자신의 탁월한 헌신을 자신만만하게 증명하려 했다.  


그러나 여호와는 가인의 사치스러운 제물을 거절하셨고, 비교적 간단하게 차려진 아벨의 어린양 제물은 받으셨다. 가인은 아벨에게 또다시 굴욕을 당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하나님 앞에서였다! 


이제 가인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증오심이 공포로 변질되었다. 그는 더 이상 아벨이 자기보다 빛나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시간이 흐른 늦은 오후, 아벨의 주검이 들판 위에 뉘어 있었다. 가인은 굶주린 짐승이 동생의 시신을 처리해 주리라는 희망으로 아벨을 먼 들판에 내다 버렸다.   


그러나 여호와의 질문에 가인의 죄는 발가벗은 듯이 노출되고 말았다(히4:13). 궁지에 몰린 가인은 죄책감에 화가 나 거짓말을 했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사실 그가 몰랐던 것은 침묵한 동생이 조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4:9-10).


그렇다. 죽은 아벨의 피가 하나님을 향해 정의를 호소하고 있었다(창 4:10; 히 12:24). 그리고 죽은 아벨의 믿음은 “지금도 말하고 있다”(히 11:4). 그렇다면 아벨의 믿음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


“믿음이 아니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아벨의 믿음은 하나님이 믿음의 제물만 받으신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중요한 포인트는, 성경의 어느 장에서도 가인과 아벨의 제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글을 작성하며 가인이 멋지게 쌓아 올린 제물로 하나님의 인정을 얻으려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사실 가인의 제물은 아주 인색한 모양새이거나 작은 단위까지 정확히 계량된 제한적인 제물이었을 수도 있다. 여기서의 핵심은 이것이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인간의 관점을 자기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옮기고자 하셨다. 하나님은 멋지게 보이고자 하는 열심이 아니라 그분을 얼마나 신뢰하는가가 중요하단 사실을 가르치고자 하셨다. 


모든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히 11:6),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가르친다(합 2:4). 아벨은 믿음으로 제물을 드렸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다]”(히 11:4). 그러나 가인은 겸손한 섬김보다는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심을 앞세웠기 때문에, 그의 제물 역시 마음 만큼이나 “악”(요일 3:12)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겸손히 신뢰하지 않을 때, 그분을 위해 무슨 일을 행하든 우리의 제물은 악하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 눈에 멋있게 보이는 순종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악하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아벨의 믿음으로부터 듣게 되는 두 번째 소리는 세상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미워할 것이라는 내용이다(신약성경은 야훼가 곧 예수이며, 빌립보서 2장 11절에서 보듯이 주님임을 가리킨다). 요한 사도는 분명히 말했다.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요일 3:12-13). 아벨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게 된 사람이었다. 


“[우리의]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게]” 할 때, 다른 이들의 악행이 역시 드러나고 그들은 분노할 것이다(요 3:20). 예수님도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몇 명은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줄 것이다]”(눅 21:16-17)라고 말씀하셨다. 진실로 의로운 믿음을 볼 때, 세상과 악은 분노한다.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말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아벨의 편에 속한 사람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 모두는 가인과 같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였고 그분을 멀리했다(롬 8:8; 엡 4:18). 믿음의 첫 순교자 아벨은 우리 주 예수님을 예표한다. 물론 예수님의 피는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 피”(히 12:24)이다. 또한 아벨의 무고한 피는 죄에 대한 정의만을 호소하지만, 예수님의 무고한 피는 죄인에 대한 긍휼을 호소한다. 마찬가지로 아벨의 피는 가인의 연약함을 드러내지만,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연약함을 덮고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롬 7:24; 요일 1:9).


그러므로 이제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리며 그분이 받으시는 영적 예배가 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그저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신뢰해야 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이 증오밖에 없단 사실 역시 냉철히 기억해야 한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What Dead Abel Speaks to Us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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