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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함과 싸우다 지친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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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Scott Hubbard  /  작성일 201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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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대학교 신입생이 되고 몇 주 동안, 심각한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캠퍼스 도서관에 등을 구부리고 앉아 엄청난 속도로 페이지를 넘겨 가며 책을 훑어보곤 했다. 아마 어느 누구라도, 전공 도서를 그처럼 빨리 살펴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누구라도, 그렇게 머리에 남는 것 없는 독서를 해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마 많은 이들이 이런 노력을 해 봤으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 보통의 독서 수준을 가진 여느 학생들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속독법을 익혀 보려고 부단히 애써 본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학생들이 그렇게 되듯, 곧 빨리 뛰는 일을 포기하고 결국에는 천천히 정독하는 원래의 페이스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에게 그 몇 주동안의 분투는 사실상 더 큰 전쟁 속에서 일어난 작은 접전 중의 하나와 같았다. 여기서 말하는 더 큰 전쟁이란, 훨씬 더 오랜 시간을 두고 싸우는,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일생을 바쳐 싸울 수밖에 없는 전쟁을 의미한다. 다름 아닌, 자신의 ‘약함’과 매일 싸우는 전쟁을 의미한다.


약함과 붙어 싸우는 전쟁에서


나는 ‘약함’이란,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또는 우리가 이르고 싶은 상태에 이르지 못하게 만드는 연약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죄’와 달리, 약함은 도덕적으로 중립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변화시킬 때 함께 변화되지 않는, 아니 그럴 필요가 없는 기질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우리는 스스로 바라는 만큼 똑똑하지 않고, 운동에 뛰어나지 않으며, 외모가 빼어나지도 않고, 음악에 소질이 있지도 않다. 또한 대중 앞에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재주도 없고, 재치도 부족하며, 일에 있어서 탁월하려면 아직 멀었고, 리더십도 약하다. 간혹 부단한 노력 끝에 이런 약함을 극복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체로는 그 약함이 단단한 바위의 표면처럼 변함 없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이를 떨쳐 내려고 온갖 시도를 다 해 보지만, 많은 경우 거의 변화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약함은 우리 각자에게 부여된 정해진 만큼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매일 약함과 투쟁하는 일도 이상할 게 없다. 학창 시절에는 그로 인해 놀림을 당하는 일이 다반사고, 최악의 경우엔 내 인생에 꼭 한번 이르고 싶은 길을 가려다 끊어진 다리를 만난 듯한 낭패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내 몸의 가시를 자랑하기보다(고후 12:9-10), 대부분 많은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투자하여 그 가시를 뽑아내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해, 우리는 승산이 없는 그 싸움을 멈추어야 한다. 특히 크리스천이라면 말이다. 세상의 많은 이들은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약함과 싸우려고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약함에 대해 기쁘게 환대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해야 한다.


두렵고 기이할 정도로 약한 나를 지으시다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약함으로 둘러싸인 세상 한복판에 보내셨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그분이 모세에게 물으셨다. 모세는 스스로의 언변이 매우 약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으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출 4:11). 이는 우리의 입이나 귀나 눈에만 해당하는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그 어떤 약함이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모태에 지으실 때부터 이미 그분이 다 보고 계셨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원래 두렵고 기이할 정도로 약하게 지어진 자들이다.


우리가 출생할 때 가지고 나온 약함은 다른 모습들이 놀랍게 변화되는 중에도 거의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구속하신 교회는 어떻게 보면, 서로의 불평등한 차이에서 그 영광이 나타나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즉 한 사람의 약함이 다른 사람의 강함으로 보완되는 장소이다(롬 12:3-5). 하나님은 우리 중 누군가는 발로, 누군가는 손으로, 또 누군가는 눈이나 입으로 지으셨다. 따라서 입으로 지어진 자가 걷기 힘들어하고, 눈으로 지어진 자는 말할 때 괴로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아신다(고전 12:14).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도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이크 앞에서 떠는 사람이 있다. 또 행정에 탁월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본인 가족의 이름도 까먹는 사람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약함과 싸워 이겨 보려는 노력이 별 성과가 없는 것이다. 그 결과에 우리는 믿음보다 불평을 표출할 때가 많다. 불평은 전혀 유익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고집을 부리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내 삶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을 이루고자 수년을 낭비하기도 한다.


전쟁을 그치고 화해하라


그러므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전쟁을 포기하고, 백기를 들고, 협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즉 약함과 평화 조약을 맺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까지 수개월을, 아니 수년을 이 약함과 싸우며 극복하려고 애써 왔는데, 이제 와서 포기하고 그냥 받아들이라고? 게다가 기뻐하면서 받아들이라고(고후 12:10)?’ 그렇다.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오직 그렇게 할 때에만, 하나님이 우리의 성장을 방해하고자 그 약함을 주신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아니면 하나님을 위한다고 착각하며 세운 잘못된 기준을 내려 놓을 때에만, 비로소 우리에게 자유와 평강이 찾아온다. 바위처럼 무거운 기준을 지고 수년을 버텨온 자가 그 돌덩이를 던져버릴 때 느끼는 홀가분함이란 어떠하겠는가! 신참내기 엄마가 아이 다섯을 키우는 엄마처럼 양육을 척척 해내야 할까? 


마찬가지다. 베드로가 요한처럼 되기를 관두고, 요한이 베드로와 같이 되기를 그만둘 때, 얼마나 큰 평안이 찾아왔겠는가!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요 21:22). 우리의 영광은 계속해서 강해지는 데에 있지 않다. 오히려 강함과 약함을 막론하고 우리가 이를 수 있는 한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전심으로 그분의 의를 구하는 데에 있다.


그분의 선한 목적을 위해 살라


이처럼 다른 이들에게 주어진 은사를 나도 가져 보겠다는 집착을 내려 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이 내에게 주신 은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전 12:4-7). 발은 손처럼 되려는 노력을 그칠 때 똑바로 걸을 수 있게 된다. 눈은 입처럼 말해 보려는 망상에서 벗어날 때에야 앞을 훤히 보게 된다.


우리가 가진 문제의 핵심이 여기서 드러난다. 우리가 치르는 약함과의 전쟁은 바로 우리가 잘하고 있는 일을 얕볼 때 시작된다. 우리는 잘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 일이 별 볼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어쩌면 내가 하는 일이 정말로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무대 위가 아니라 청중도 모르는 음향실 안에서 일할 수 있고, 누군가는 강의실에서 가르치기보다 교내의 복도를 청소할 수도 있다. 아니면, 중요한 회의를 주관하기보다 뒤에서 서류 정리를 하고 담당할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을 잘 해내는 은사는 보통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마련이다.


그러나 진정한 만족이란, 다른 이들이 갖지 못한 은사나 기술을 가졌다고 찾아오는 게 아니다. 참된 만족은 내게 주어진 은사를 감사함으로 받고,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며, 하나님이 그 미약한 섬김을 통해서나마 그분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시기를 기도할 때 찾아온다(벧전 4:10-11). 그러므로 우리가 잘하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개의치 말고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약함 중에서도 그분을 높일 때, 비로소 참된 만족이 우리에게 찾아온다(고후 12:9-10).


나를 가르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가 겸손한 마음으로 지은 시, ‘엘릭시르’(The Elixir)의 한 연을 마지막으로 음미해 보고자 한다.


“나를 가르치소서,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여

모든 일 가운데 당신을 볼 수 있도록

무슨 일을 하든

당신을 위한 일처럼 할 수 있도록”


바로 이런 고백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람, 그래서 그분의 도우심을 따라 맡겨진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이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마음이 한없이 낮아지는 그 날, 세상의 어떤 칭찬과 박수갈채라도 그분의 음성에는 비할 바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End Your War Against Weakness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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