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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크리스천 가족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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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Tedd Tripp  /  작성일 201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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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essica Rockowitz on Unsplash

성인이 된 아들이 최근 내게 가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요약하자면,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은 이제 그다지 경쟁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계속 지켜질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다. 오늘날, 평범한 크리스천 가족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고 또한 현대 문화는 가족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있다. 동성애 가족, 부부 관계의 창조성과 다양성에 대한 합의, 일부다처제를 수용하라는 압박 등과 같은 문화적 현상들에 의해 전통적이고 평범한 크리스천 가족의 정체성은 흔들리고 있다. 부모는 사랑으로 자녀를 낳고, 남녀는 결혼 관계 안에서 함께 살아야 하며, 부부는 경건한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하여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더 이상 문화적으로 이상적이지 않게 보인다.    


보통의 크리스천들이 비범한 복음의 은혜로 말미암아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이룬 가정, 우리는 이를 평범한 기독교 가족이라고 부른다. 물론 가족이 두 명의 부모로 이루어진 가정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한 부모 가정의 크리스천들 역시 동일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많은 조부모들이 그들의 손자,손녀들을 담대하게 키우고 있다. 내 며느리의 친정 어머니는 홀로 세 자녀를 키우셨으며, 그 자녀들은 이제 크리스천 성인이 되어 자신의 자녀들을 키우고 있다. 그녀는 성경적 가족의 규범을 자녀들에게 계속 상기시켜 주었다고 한다. “네 아버지가 있었으면 이것을 했겠지만, 아버지가 없으니 내가 하는 거란다”라고 말이다. 비록 남편이 부재하지만, 그녀는 자녀들이 가족 안에서의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도록 가르쳤다.       


가족의 역동성


에베소서 5장은 평범한 기독교 가족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이 본문에 의하면, 남편은 사랑의 리더십을 행하도록 부름받았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2장에서 목회 사역을 아버지의 자격에 빗대어 설명한다. 그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자신이 겪는 고된 일과 어려움을 말하면서, 그가 밤낮으로 일하면서 복음을 가르친 이유는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바울이 사용한 그 아버지 은유는 경건한 리더십을 알게 하는 놀라운 도구였다. 바울은 자신의 목숨을 살아 있는 희생 제물로 내려놓았다. 경건한 권위는 다른 사람을 종으로 삼을 때가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으며 상대방을 섬길 때에 나타난다.  


에베소서 5장에서는 아내의 모습이 눈에 띄게 나타난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복하듯이 아내는 남편의 리더십 아래에서 살아간다. 아내는 남편이 가족의 지도자로 성공하도록 돕는 역할을 담당한다. 머리로 존재하는 다른 사람의 지위에 자신의 삶을 종속시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에베소서 5장은 이를 평범한 크리스천 아내의 부름받은 모습이라고 표현한다. 궁극적으로 아내는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고 남편의 권위 아래에서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이 자신에게 복을 가져다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하나님은 에베소서 6장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그들에게 순종하는 자녀는 잘되고 장수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현명한 부모는 자녀들에게 순종의 필요성을 잘 이해시킨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녀들로 하여금 부모에게 순종하도록 독려하면서, 이는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부모의 권위를 주셨기 때문임을 설명한다. 즉 자식은 부모의 요구 때문에 그들을 공경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순종을 실천해야 한다. 부모님께 순종할 때, 자녀들의 삶은 잘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 순종을 보시고 자녀들에게 복을 주신다.   


어린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방식을 진리로 수용하는 모습은 무척 아름답다. 나의 평범한 손자,손녀들이 그들의 부모를 기뻐하며 또한 부모가 현명하게 정해주는 경계선을 사랑의 권위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내게 큰 기쁨이다. 


나는 최근에 내 손자들이 그들의 아빠와 나눈 짧은 대화를 들었다.


첫째 아들(사춘기): 아빠, 커피 마셔도 돼요? 

아빠: 물론이지.

둘째 아들(십대 초반): 나도 마셔도 돼요?

아빠: 아니, 아직은 안 돼.

둘째 아들: 아빠, 불공평해요. 왜 형은 마셔도 되고 나는 안 돼요?

아빠: 아들아, 아빠의 역할은 가정을 공평하게 이끄는 것이 아니라 현명하게 인도하는 거란다.


이 대화는 짧고도 유쾌한 상호교환이었다. 그리고 둘째가 아빠의 판단을 불평 없이 수긍했기 때문에 나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는 이 대화를 통하여 아버지의 권위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웠다. 언젠가 그도 아버지로서 친절하고 현명한 권위를 가지게 될 것이다.  


관계의 역동이 성경적 질서로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가족에게는 세 가지 소명이 생긴다. 즉 가족은 신학과 사회성 및 복음을 배우는 학교가 된다. 


신학을 배우는 학교


평범한 크리스천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다음의 두 계명으로 요약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막 12:30-31).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평범한 크리스천 가족의 삶에 대한 훌륭한 묘사이다. 


신학을 배우는 학교로서의 가족은 첫 번째 계명에 잘 묘사되어 있다. 가족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한 놀라움에 매료되는 공동체이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심오한 감각을 아이들에게 심어 주는 장소이다. 시편 기자는 “대대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크게 찬양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시 145:4)라고 기록했다. 당신의 가족은 “대대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는가? 이에 대해 시편 145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 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하신 행위를 입으로 말하는 것, 그분의 위대하심을 선언하는 것, 그분의 풍성한 선하심의 명성을 쏟아 놓는 것, 그분의 의로우심을 노래하는 것,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알리는 것, 그분의 친절하심을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그분의 이름을 송축하는 것(시 145:4-20)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영광과 선하심을 읊조릴 때에,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가족 안에 심어진다. 아이들은 개념적인 공백 상태에서는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면, 그들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행복해진다. 가족은 신학을 배우는 학교이다.   


사회성을 배우는 학교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은 두 번째 명령이다. 이는 가족의 책무이다. 가족 생활은 다른 사람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가정은 관계적 갈등이 가장 크게 일어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야고보서 4장은 관계적 갈등을 질문의 형식으로 언급한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4:1). 우리는 보통 갈등의 이유를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찾는다. “그가 나를 너무 화나게 한다” 혹은 “그녀가 내 실수를 보며 비웃었다”와 같이 말이다. 야고보는 갈등의 이유를 우리 자신에게서 찾으라고 권면한다. 그에 따르면, 관계적 갈등은 우리 안에 있는 정욕과의 싸움에서 온다. 

 

우리 내부의 열정과 욕망이 갈등을 야기한다. 가정은 그 내적 욕망이 전쟁을 벌이고 다른 사람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통찰할 수 있는 장소이다. 즉 가정은 자기애의 추함을 밝힐 수 있는 장소이다. 이와 동시에 가족 생활은 다른 사람에 대한 희생적인 사랑의 훌륭함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가족은 진정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을 추구하는 법을 배우는 훌륭한 공동체이다.


가족 간의 갈등은 때때로 가족의 책무를 이행하며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가족의 갈등은 이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하여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도록 돕는다. 가족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장소이다.


복음을 배우는 학교


마지막으로, 평범한 크리스천 가족은 복음을 배우는 학교이다. 즉 크리스천 가정은 복음의 은혜를 현실에서 삶으로 나타내는 장소이다. 사랑으로 함께 살아가고자 노력할 때 생기는 갈등은 우리가 복음의 은혜를 매우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점을 일깨운다.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으셨고, 또한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기 위해, 즉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충족하기 위해 죽으셨다. 지금도 그분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경험하도록, 그리고 용서받은 사람들로 살아가도록,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도록 나와 당신을 하나님께 중재하신다. 


평범한 크리스천 가족은 완벽한 장소가 아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또한 다른 사람의 죄로 인하여 상처를 입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자녀들도 죄를 지으며, 다른 사람의 죄로 인해 상처를 입는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인간의 지혜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복음에 근거하지 않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당신은 갈등을 통해 얻는 유익을 잃게 된다. 가족 생활에서 생기는 피할 수 없는 갈등은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엡 4:32)하신 것처럼 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제공한다.


자신들도 열망과 욕구로 노략당한 죄인임을 아는 부모는 자녀의 죄에 공감할 수 있다. 죄의 문제와 복음의 은혜 및 능력을 아는 부모는 죄를 지은 자녀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도울 수 있다. 죄인으로서 은혜를 경험한 부모는 자녀에게 복음의 능력과 은혜를 전할 수 있다.   


크리스천들은 가족을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은혜로 함께 성장하며 사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크리스천 가족은 이상적인 세계 속에 존재하는 추상적 개념의 대상이 아니다. 평범한 크리스천 가족은 보통의 사람들이 그들의 목숨을 살아 있는 희생 제물로 내려놓을 때에만 존재한다. 그러한 가족은 기독교 신앙의 진리와 아름다움을 강력하게 설득하는 힘이 있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The Ordinary Christian Family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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