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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담대함과 명확함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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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Rosaria Champagne Butterfield  /  작성일 201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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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Priscilla Du Preez on Unsplash

지금과 같은 탈기독교 시대에 우리가 지향하는 신학은 우리가 행동하고 말하는 일상 모든 곳에서 드러난다. 2016년 11월 9일 수요일, 이웃 집 수선공 필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우리 집 다락방 문의 경첩이 부러져서 흔들거리는 것을 알게 된 그가 그것을 고치러 온 것이다. 그가 우리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에게 다락방 문을 보여 주고 나서 부엌에 커피를 준비해 놓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 홈스쿨링을 계속하러 갔다.


잠시 후 나는 누군가의 울음 소리를 들었다.


필이 울고 있었다. 일을 마친 그가 부엌에 앉아서, 굳은살이 박인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는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왜냐고 물었고 모든 것이 거기서 무너졌다. “기독교인은 위험한 사람이야. 그리고 지난번 선거가 그것을 증명했어.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관이 서로 다른데 우리가 어떻게 친구로서 잘 지낼 수 있겠어? 당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내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


필과 나는 오랜 이웃이었다. 우리는 함께 파티를 하고 바베큐를 해 먹고, 가족의 장례식에도 참석하는 사이였다. 개집도 서로 빌려쓰고, 아이들의 자전거도 같이 나누어 쓰며, 아이리스 꽃도 서로 나눠 주는 사이였다. 그러나 선거를 한 다음 날, 우리 사이에는 선이 그어졌다. 필이 던진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을 내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결정적이었다. 내게도 깊은 고민이 생겼다. 우리의 관계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서로 더 이상 대화도 나누지 않는 관계에서 복음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나는 그에게 부엌 의자에 앉으라고 권하고 우리는 한참동안 함께 울었다. 때때로 이와 같이 서로 다름으로 나눠진 세상은 우리에게 깊은 신음과 슬픔이 된다.


이렇게 가치관과 의견이 극단적으로 나눠지는 시기일수록, 부정적인 의견과 나쁜 평판을 받을까 두려워서 나의 신앙을 협상하고 싶은 유혹을 받기 쉽다. 하나님이 주신 복음에 대해서 스스로 새롭게 정의를 내리고는, 상대에게 복음을 담대하게 외치지도 않을 뿐더러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도 않는다. 소위 말하는 ‘균형’이라는 이름으로, 은혜와 진리를 타협하고 싶은 유혹은 결코 적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담대하게 고백하는 교회와 목사 그리고 장로를 비판할 뿐 아니라, 오늘날 세상 문화를 움직이는 두 가지 우상에 무릎 꿇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그 두 가지는 성적 지향과 상호관계성에 근거한 우상이다. 성적 지향이 우상이 되면, 우리가 가진 성적 욕구가 우리가 누구인지를 존재론적으로 가장 잘 보여 준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상호관계성이 우상이 되면, 우리가 누구인가는 얼마나 많은 종류의 차별(victim-statuses)을 받는지에 의해 측정되고, 또 인간의 존엄성은 어떤 종류의 불일치도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만 발생한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밖으로부터 온 박해와 내부에서 비롯된 잘못된 가르침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고통을 받았던 2세기의 초대 교회로부터 배울 수 있다.


시저를 주로 고백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2세기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받았다. 지금 우리 시대와 관련해서 살펴볼 한 가지 사실은, 2세기에 로마는 크리스천들에게 예수님을 부인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수님은 여러 신 중 하나로 얼마든지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로마는 그리스도를 향한 크리스천의 배타적인 믿음을 반역죄로 보았고, 그 죄의 결과는 사형이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주권이 가진 배타성을 고백함으로 죽음에 처해졌다. 그러나 박해의 시기를 지나는 중에 교회는 더 커졌고 복음은 땅 끝까지 퍼졌다.


거짓 가르침은 언제나 두 가지 형태로 온다. 첫 번째는 복음의 진리를 확실하게 반대하는 적대적인 형태로 온다. 또 다른 하나는 복음을 문화와 타협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2세기와 마찬가지로 지금 시대의 문화는 부활의 능력과 십자가의 피가 필요 없는 복음의 은혜를 제안함으로 복음의 생동력을 감소시키고 있다. 오늘날 그런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잘못된 가르침의 사례가 바로 LGBTQ(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er의 약자로서 성의 해방을 상징한다-역주)가 내세우는 슬로건, “사랑이 이긴다”(Love Wins)이다. 사랑이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기독교 복음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다.


그럼 2세기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첫째로, 그들은 매일매일 희생적이고 친절하게 행했다. 그들은 복음의 은혜가 없다면, 복음의 진리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믿는 성경적 진리는 함께 나누는 것뿐만 아니라, 그 진리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도 포함한다. 둘째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거짓 가르침이 박해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21세기의 서구 기독교인들은 종종 그 반대로 생각한다. 거짓 가르침보다 박해를 더 두려워하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의 진리와 복음의 은혜를 제대로 전달하는 일에 종종 실패를 경험한다.


세상을 향한 빛이 되어 담대하고 확고하게 살기 위해서는 이웃을 희생적으로 사랑할 뿐 아니라 복음을 투명하게 드러내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와 고통 가운데 계셨다는 것을 이웃이 다 알기에,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 이웃들은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누구를 위해 사는지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서로 생각이 달라도 우리는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해야 하고, 식사가 끝나고는 말씀을 열어서 그 안에서 우리가 발견한 진리를 나눠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전하도록 위임하신 말씀을 나누는 데 있어서 우리는 무엇보다 투명해야 한다. 바로 그 장소에서, 불편하지만 정직하게,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이웃을 대하는 조금은 어색한 바로 그 장소에서, 복음을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전하는 위험을 감수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정직할 수 있다. 지식과 의와 거룩함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 우리는 단지 미소 짓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 이상을 해야 한다. 지금의 탈기독교 시대에는, 이웃과 맺은 관계의 친밀도가 우리가 전하는 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이 말은 우리가 이웃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하는 것과 함께 복음을 가감 없이 전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하는 말에도, 또 우리에 관해 다른 곳에서 하는 말에도, 그다지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가능한 모든 기회마다 선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탈기독교 시대에 우리가 이 세상을 향해 진실하고 대담하게 기독교의 진리를 전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은혜와 진리가 각각 50%씩이라는 식의 형편없는 방정식을 풀라고 부름받지 않았다. 우리는 100%의 은혜와 100%의 진리를 실천하도록 부름 받았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데에는 모두 다 100%를 추구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 지금의 탈기독교 시대에 우리는 단지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 이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적 전쟁에서 회복되기 전에 먼저 우리의 관계가 불편하거나 단절될 수 있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때때로 함께 울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Boldness and Clarity as a Light to the World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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