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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결혼은 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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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Greg Lanier  /  작성일 20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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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Luis Tosta on Unsplash

우리가 속한 문화는 역설적인 방식으로 결혼에 집착한다. 한편으로, “결혼 평등” 운동은 결혼을 행복, 상호 수용 그리고 법률적 혜택을 보장하는 삶에서 만날 수 있는 궁극적인 목표로 바라본다.


반면에, 이혼 또는 결혼하지 않고 사는 커플의 동거는 점점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영화와 각종 쇼는 순전히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같이 사는 미성숙한 남편과 불행한 부인의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줌으로 결혼의 실패를 계속 강조한다. 오늘의 문화는 결혼이야말로 이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난 세대로부터 이어온 엄청난 실패라고 말한다. 


비록 형태가 다를지는 몰라도 교회도 이런 긴장에서 예외일 수 없다. 미국 복음주의 내의 많은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하나님의 왕국에서 “일등” 시민권은 오로지 어린 아이들과 결혼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일종의 신유대주의적(neo-Judaizing) 주장을 하기도 했다. 반면에, 결혼의 본질적인 상실 또는 실패(brokenness)를 당연한 사실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지금의 문화에서는 결혼으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여질 정도가 되었다. 


다른 말로 하면 결혼의 궁극적인 선함은 이런 도전들 앞에서 위협을 받는 상태이다. 사두개인에게 말한 예수님의 어려운 말씀이 이 상황을 돌파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눅 20:27–40; 마 22:23–33; 막 12:18–27).  


두 세상의 삶


예수님에게 접근한 몇 명의 사두개인이 과장된 한 결혼 사례를 가지고, 자신들은 믿지 않는 부활과 관련하여 그분을 시험하려고 했다(눅 20:27;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 18.1.4; 유대전쟁사 2.8.14). 


이 사두개인들은 결혼 자체에 관심이 없지만 “모세가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라고 예수님께 따짐으로, 명백한 성경적 모순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결함을 드러내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취수혼(levirate marriage), 그러니까 자녀 없이 남자가 죽는 경우에 그의 형제가 죽은 남자의 부인과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서 죽은 이의 혈통을 유지하는 결혼에 관한 토라의 규정을 인용한다(창 38:8; 신25 :5). 그런 다음 사두개인들은 한 명의 여자와 여러 형제들 사이에서 이 취수혼이 계속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만약의 경우”를 가정한다. 그러니까 취수혼이 맞아서 이런 결혼이 일곱 번 발생한다면, 그럼 나중에 부활했을 때 이 여자는 무려 일곱 명의 남편이 있는 건데, 그것이 모세의 법이 금하는 일처다부가 아니냐는 것이다. 


사두개인들은 성경이 성경과 대치되는 이 문제가 예수님을 코너로 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취수혼과 부활 중에서 한 가지는 성경적일 수 있어도 두 가지가 다 성경적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모순이 발생하니까. 


예수님은 두 가지 방식으로 능숙하게 대답하셨다. 부활에 대한 그들의 전제를 묻고 또 성경을 한 번 더 확증하셨다. 


예수님은 먼저 사두개인들이 얼마나 부활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려 주셨다. “저 세상”(20: 35)을 단지 “이 세상”(20:34)의 연장으로 간주하는 게 얼마나 큰 오류인지를 보여줌으로 그들을 바로잡으셨다. 이 세상에서는 인간이 죽는다. 따라서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1:22) 는 성경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 인간은 결혼하여 정당한 방법으로 후손이 이어지도록 했다. 


그러나 죽음에서 살아난 사람들이 사는 저 세상에서 인간은 더 이상 죽지 않는다(20:36).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의 백성은 애초에 그들에게 의도되었던 최고의 모습에 이르게 된다(롬 11:12,25). 죽음의 저주는 사라졌고 더 이상 새로운 창조는 필요 없으며,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게 된다”(20:35). 참으로 우리는 이제 “천사와 동등이요”(20:36), 우리의 존재는 영원해지고 우리의 숫자도 고정이 되어서 더 이상 결혼해서 자녀를 낳을 필요가 없게 된다. 중요한 점은, 구원받은 자들은 더 이상 육신의 부모의 아들 또는 딸로 불리지 않을 것이고, 또 누구의 남편이나 부인으로 불리지도 않으며, 단지 “하나님의 자녀”(20:36; 계 21:7) 로만 불릴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미래는 현재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모든 질적인 면에서 현재의 세상을 능가한다.  


두 번째로 예수님은 모세가 부활을 믿었다는 사실을 말함으로 사두개인들이 유일하게 권위를 인정하는 모세 오경을 그들에게 인용한다(출 3:15).  


지금까지의 내용을 통해 진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만 유효한 결혼의 특성에 대해 중요하게 언급하시지 않는다. 그분에게 중요한 것은 성경 말씀이고 또한 부활한 자들이 사는 세상이 지금의 세상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명확한 통찰을 주는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있는 바로 이 두 가지 측면을 통하여 우리는 결혼을, 또 위에서 언급한 결혼과 관련한 긴장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있다. 


저 세상과 이 세상


“저 세상”에 대해서 알고자 한다면 오로지 성경 말씀만을 따라야 한다. 우리가 사는 문화와 인간의 육체는 최고의 기쁨이 오로지 지금 살아가는 이 세상에만 있다고 아우성친다. 우리가 아는 세상은 지금 여기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한 저 세상이 있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우리의 몸은 변할 것이다(고전 15: 35-56). 모든 고통과 슬픔, 그리고 죽음은 사라질 것이다(계 21:4). 우리는 더 이상 희미하게 보지 않고, 그분의 아들을 통해서 영원히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받을 최고의 상은 지금이 아니라 미래이다. 이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기쁨, 즐거움, 친밀한 관계 또는 슬픔, 상처, 관계의 혼란은 결코 궁극적이지 않다. 


소홀하게 방치되었던 아이가 처음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자비심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도 부활한 저 세상이 얼마나 더 좋을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아직 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정신적 상태가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대한 생각도 철저하게 말씀만을 따라야 한다. 이 세상에서의 결혼은 그림자, 복사품, 예수님과 그분의 교회의 결혼이라는 궁극적인 결혼의 단면 중 하나일 뿐이다(엡 5:32; 막 9:15). 참으로 저 세상이 정의하는 실재는 “신부”(구원받은 자) 와 그리스도(계19:7; 21:2, 9; 22:7) 간의 결혼이다. 이 땅에서의 결혼은 영원히 지속되도록 만들어진 게 아니다. 이 세상의 결혼은 결국 구원받은 자가 어린 양과 치르는 결혼에 그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한다. 


따라서 교회가 특히 더 신경을 써야 하는 대상인 결혼하지 않은 기독교인에게 이 점은 기운을 북돋아 주는 소식이다. 당신의 정체성은 지금 이 세상에서의 결혼 여부가 아니라 저 세상에서 결혼 여부에 달렸다. 이 세상에서 결혼하지 않았거나, 결혼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향하여 성경은 그들의 독신 상태가 결코 궁극적인 기쁨과 의미를 찾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전혀 열등한 게 아니다. 불완전한 것도 아니다(고전 7:32-35). 결혼하지 않은 그들의 인생이 나중에 저 세상에서 더 위대한 관계와 더 위대한 실재를 위한 준비라는 사실을 굳건히 믿을 때,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결혼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라는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데에 하나님의 말씀은 큰 위로가 된다.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결혼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선물이지만,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헌신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결혼에 궁극적인 가치를 두고 살 때에는 결국 좌절감, 서운함(bitterness) 그리고 해체(dissolution)를 맞게 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배우자 또는 자녀 숭배라는 우상 숭배로 이어질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잘못이다. 


이 세상에서 결혼은 결혼 그 자체에 닻을 내리고 있지 않다. 결혼은 저 세상에 있는 다른 결혼에 닻을 내리고 있다. 결혼은 새로운 세대의 예배자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이 시대의 성적인 충동을 조절하고 또 바른 방법으로 성적 만족을 추구함으로 우리가 행여 완악함에 빠져 저 영원한 왕국에 어울리지 못하는 자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 결혼이다(고전 7:9; 마 5:27-30). 그리고 결혼은 저 세상을 향한 성화를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결혼 관계에서 두 배우자의 주된 목표는 복종, 희생적인 사랑, 존중, 회개 및 저 세상을 향한 위로이다. 결혼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감으로 온전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가 되는 것이다. 바울이 기록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신부를 거룩하게 만들고 그분에게 바로 나아오게 하신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엡 5:25-28). 성령님으로 인해서 배우자들은 ‘그때’ 저 세상에서 서로를 그리스도에게 넘겨줄 준비 과정으로 ‘지금’ 이 세상에서 서로를 사랑한다. 


이 세상에서 결혼한 이들에게


교회 안에서 불행하게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도 이런 사실은 위로가 된다. 당신의 결혼 생활은 끝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재의 붕괴된 상태, 심지어 실패한 당신의 결혼도 천국을 향할 때 의미가 있다. 천국에서는 이 땅에서의 모든 상처와 갈등이 신부의 상처를 싸매 주는 어린 양으로 인해 다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당신의 결혼 생활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 슬플 수도 있다. 지금 내가 누리는 이런 결혼의 친밀함이 없는데도 어떻게 저 세상이 이 세상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걸까? 당신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저 세상은 더 낫다. 당신이 비록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저 세상은 더 낫다.


그러나 한번 이렇게 상상해 보자. 저 세상에서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랑했던 배우자를 우연히 만나게 하신다면, 그래서 우리만 아는 농담을 서로 나누고 또 어린양을 예배하는 순간에 우리만이 아는 시선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신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났기에 잃어버린 것을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저 세상에서 얻은 것 때문에 기뻐할 것이다. 만약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배우자로 만났던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고마워요, 천국에서의 삶을 잘 준비하도록 도와줘서.”


우리의 결혼은 끝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단지, 더 나은 결혼을 위해서.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Marriage Is Built to End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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