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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그 결과를 분리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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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고상섭 목사(그사랑교회)  /  작성일 201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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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Henry Be on Unsplash

팀 켈러는 <센터처치>에서 오늘날 설교의 가장 큰 문제 중 한 가지는 ‘복음과 그 결과를 분리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마르틴 루터도 동일한 말을 남겼다. “우리는 믿음만으로(by faith alone) 구원받지만, 단지 믿음만 남는 믿음으로(by a faith that remains alone)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즉, 복음을 받아들이는 참된 믿음은 필연적으로 선행을 낳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많은 설교는 복음과 그 결과를 혼동하고 분리시킨다. 팀 켈러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복음이 무엇인지’와 ‘복음이 무엇을 일으키는지’를 혼동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칭의와 성화의 관계 


리차드 러브레이스가 지적하기를,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칭의(하나님의 받아주심)가 성화(실제의 도덕적 삶)의 기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의 삶에서는 자신의 성화에 근거하여 칭의를 이루려고 한다. “예수님이 나를 받아주셨어. 그러므로 나도 바른 삶을 살아야지”라는 생각의 흐름은 복음과 그 결과가 바르게 연결될 때에 일어난다. 그러나 복음과 그 결과가 분리되면 생각의 흐름은 이렇게 나타난다. “나는 바른 삶을 살고 있어. 그러므로 예수님이 나를 받아 주실 거야” 이와 관련하여, 싱클레어 퍼거슨은 <온전한 그리스도>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이 주시는 혜택을 분리하지 말라”라고 언급하며 존 오웬의 책을 인용한다.


존 오웬의 저서 중에서 미국 신학생들이 가장 많이 읽는 책은 <죄 죽임의 교리>이다. 다른 저작인 <그리스도의 영광>과 <하나님과 교제>도 있지만, 유독 <죄 죽임의 교리>를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퍼거슨은 이렇게 말했다.


“실용적인 마차를 신학의 말 앞에 두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오웬도 청중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죄 죽임에 관해서만 아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중략]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와 그분의 사역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것으로 돌아가야 한다.”


퍼거슨의 이야기는 복음과 그 혜택, 즉 그리스도와 그분이 주시는 혜택을 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이 나를 받아 주신 그 은혜의 칭의가 감사를 낳고, 그 감사로 인한 자연스러운 순종이 성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칭의(하나님이 나를 받아 주심)의 선행에 대한 이해 없이 죄를 죽이는 행위에만 몰두한다면, 이는 성화에 근거하여 칭의를 추구하려는 역방향적인 오류를 낳는다.


만약 설교자가 칭의에 대한 선포 없이 “여러분, 죄를 죽여야 합니다. 첫째, 기도하십시오. 둘째, 말씀을 읽으십시오. 셋째, 순종하십시오!”라는 식의 선포를 한다면, 그것은 복음의 혜택을 복음과 분리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또한 성도를 은혜 없는 율법주의로 인도할 것이다. 퍼거슨은 죄를 죽이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은혜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팀 켈러도 <탕부 하나님>에서 한 경영학 교수의 강의를 예로 든다. 그 교수는 윤리 경영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불법이 아닌 건강한 방법으로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고, 또한 회사의 도덕적 행보에 대한 자부심이 직원들의 업무 능률을 향상시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팀 켈러는 만약 복음을 이런 식으로 이해한다면 심각한 오해에 이른다고 조언한다. 


결국 해당 기업의 목적은 윤리 경영 그 자체가 아니라 더 높은 이윤 창출이다. 혜택을 바라보고 윤리적으로 경영하는 것, 이는 결코 복음의 삶이 아니다. 팀 켈러는 그 순서가 뒤바뀌는 것이 복음 안에서의 삶이라고 설명한다.


복음을 설교하라 


싱클레어 퍼거슨도 설교자의 최대 관심사는 복음의 혜택이 아닌 복음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설교할 때 또는 들을 때 나의 최대의 관심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 사역'인가? 아니면 다른 것, 이를테면 죄를 극복하거나 신앙생활을 잘하는 법 혹은 복음을 통해 받는 혜택인가?” 그분 안에서의 영적인 복은 그분 자체를 소유할 때 따라오는 결과물이다. 


바울이 빌립보서 2장 2-4절을 설교하는 방식을 살펴보자.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2~4).


만약 이 구절로 설교할 때 “여러분,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라고 선포한다면, 그리고 듣는 성도가 “오늘부터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겨야지”라고 결심하게 된다면, 과연 우리의 삶에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첫째, 인간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기지 못하는 실패에 좌절할 수 있다. 둘째, 만약 인간적인 노력으로 남을 낫게 여기는 일에 성공한다면, 자기 자신을 썩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는 교만이 싹틀 수 있다. 모두 복음의 혜택(다른 사람을 낫게 여기는 것)을 복음보다 앞세울 때 생기는 오류이다.


바울은 이렇게 선포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결과를 얻으려면 먼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에 초점을 맞춘다. 그분이 하나님의 권위를 포기하고 이 땅에 내려와서 사람이 되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면서 나를 구원하신 분이다. 예수님이 행하신 그 복음을 선포하고 그 복음을 기억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길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려는 인간적인 노력으로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선포될 때 그 혜택은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종교와 복음의 차이는 무엇인가? 


종교는 “나는 선한 삶을 살았어. 그러므로 하나님은 나를 받아 주실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예수님은 죄인인 나를 받아 주셨어. 그러므로 나는 그분의 말씀을 따라 선하게 살아갈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참된 삶의 변화를 원한다면, 어떤 행위를 바꾸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행하신 그 복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복음의 열매가 자연스럽게 맺히게 된다. 


우리의 설교는 어떠한가? 복음과 그 혜택을 분리시키고 있지는 않는가! 


설교자여, 복음의 혜택이 아닌 복음이 무엇인지를 먼저 선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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