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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수님은 표적과 이적을 행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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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Greg Morse /  작성일 202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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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edding at Cana(Paolo Veronese, 1562년경)

예수님의 주된 임무는 복음을 전하고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는 것이었다

Jesus’s primary mission was to preach good news and then bear our iniquities upon the c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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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믿지 않지만 기적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한 의대생을 알고 있다. 


예수님이 보리떡과 생선으로 수많은 사람을 먹이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고, 귀신을 쫓아내며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를 읽었을 때, 그는 “그런 종류의 일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원칙과 이성 그리고 과학의 사람이었다. 그런 그는 불과 연기를 보고 놀라던, 자연현상을 보면서 신이 인간 영역에 침범했다고 두려워하던, 그런 무식한 조상들의 발자취를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그런 기적을 위해서 기도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가능한 방도는 다 취하고 싶어했다. 설혹 그가 이해하는 범위 밖의 어떤 일이 생긴다 해도, 그는 기꺼이 그런 일이 가져다주는 유익을 누리고 싶어했다. 그는 예수님께 아픈 가족을 치료해 달라고 기도했고,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여자와 데이트하게 해 달라고도 기도했으며 또 종종 식사 기도도 하고,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벌을 받지 않게 해 달라고도 기도했다. 그는 표적과 이적을 갈구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그는 기적의 의미를 놓치고 있었다. 


비비디 바비디 부(Bibbidi Bobbidi Boo)


신데렐라의 요정 대모는 지팡이를 물결치듯 흔들어서 호박을 마차로, 쥐를 암말로, 말을 마부로, 개를 시종으로, 그리고 넝마를 가운으로 바꾸었다. 바로 비비디 바비디 부라는 주문을 통해서. 뜻도 없는 횡설수설을 늘어놓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이것은 복음서에 있는 우리 주님이 일으킨 기적과 완전히 대조된다. 말(words)이 기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기적이 말씀을 위해서 존재한다. 예수님은 독백으로 하는 그의 말에 밑줄을 긋고, 강조하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였다. 기적을 통해 침범해 들어오는 하나님 왕국은 그의 설교에 신성한 빛을 비추었다. 그 기적들은 선포하고 있다. “하늘의 왕이 여기 있다. 그의 말을 들어라.”


선한 목자가 군중을 앉히고 기적적으로 많아진 빵과 물고기로 그들을 먹이고 있다. 그들은 지금 “나는 세상의 빵이다”라는 제목의 설교를 듣고 있다. 중풍병자가 일어나서 걸어감으로, 그는 이제 어떤 사람들에게 더 큰 논란의 여지를 줄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여기 죄를 용서하는 이가 있다.” 죽은 나사로를 일으킴으로 예수님은 바로 다음 메시지에 강력한 느낌표를 찍는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


예수님의 목소리에 물이 포도주로 변하고 풍랑이 잔잔해지며, 귀신들이 살려달라고 사정하며 돼지 속으로 들어간다. 이 모든 것은 바로 다음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누구이기에”(막 4:41). 그런데 자기 스스로도 의심하는 기적을 위해서 기도하는 이 의대생은 정작 물어야 할 질문을 던지지 않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무관심하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나도 오랫동안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단지 요정 대모가 마술 지팡이를  돌리면서 그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다음과 같은 주문을 외워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살라 가둘라 메칙카 불라

비비디 바비디 부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마법사가 아니다.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는 하나님은 우리가 죄 안에서 그냥 죽도록 놔두지 않는다. 


기적을 행하는 설교자


우리 주님의 대속과 그에 따른 부활을 가장 잘 예언하는 구절 중간에 이사야는 이런 말을 넣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사 53:4). 하나님의 종이 받은 이런 고통은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지기 위해서다. 


마태는 예수님이 베드로의 집에 가서 열병을 앓는 그의 장모를 고쳤을 때 이 구절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물론 그날 저녁 예수님이 병을 고친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마 8:14-17). 요점은? 예수님은 삶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고통들을 외면하지 않는 동정심이 많은 구세주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 인류를 위해 기꺼이 가던 길을 돌려서 불편함을 감수하는 분이며, 또한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듯이 우리를 고치는 분이다. 단지 영원한 생명을 말하기 위해서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진정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을 대신 지기를 원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육체와 영혼, 그리고 우리의 지금과 영원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주된 임무는 복음을 전하고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는 것이었다. 사역을 시작하던 즈음,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기적을 찾는 와중에 돌연 기적을 행하던 동네를 떠남으로써  제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막 1:38). 그는 동네에서 멀어졌다. 그는 물론 천국도 떠나 이 땅에 왔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고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해서지 사람들을 즐겁게 하거나 갈릴리에 있는 아픈 사람들을 다 고쳐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기적, 표적 그리고 놀라운 일들은 다 청중으로 하여금 앉아서 열심히 듣고 메모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니고데모는 바로 이 점을 알고 있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3:2). 기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생이지 단지 떠돌이 기적 연출자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이 


바로 이 점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나은 구세주다. 비록 그의 기적은 수천 명이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요 6:60) 라고 한탄하게 만든 가르침과 함께 왔지만, 그중에서 소수는 그와 함께 남아있었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바로 “영생의 말씀”(요 6:68)임을 그들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요정 대모는 우리로 하여금 쇼를 구경할 준비를 시키고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천국을 준비하도록 하고 그의 영광과 탁월함에 걸맞는 수준이 되도록 우리를 변화시킨다(벧후 1:3).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 놀라운 일을 이루도록 했다. 우리가 사악한 이복 누이의 희생자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아담 안에서 저주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비비디 바비디 부가 아닌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을 통해 우리에게 순종할 수 있는 안전한 지시 사항을 주었고(마 28:20), 그로 인해 우리는 이제 그의 사랑 안에서 영원히 거할 수 있게 되었다(요 15:10). 


이스라엘도 자신들의 배를 채워주고, 병을 고쳐주며 또 이적으로 놀라움을 주는 왕에 대한 생각을 사랑했지만, 그들은 (그리고 우리도) 막상 그 왕이 세상에 와서 회개하라고 말했을 때,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지라고 말했을 때, 무엇보다 그를 가장 사랑할 뿐 아니라 그를 유일한 길, 하나뿐인 진리, 유일한 생명으로 받아들이라고 했을 때, 그에게 전혀 다른 왕관을 씌워 주었다. 우리는 하늘의 위로를 땅에 가져다 주는 선지자를 좋아했다. 우리는 우리의 벌거벗음을 드러내고 대신 당신의 의를  드러내신 하나님을 미워했다. 와인은 다 떨어졌고 식사와 함께 오락도 끝났다. 우리는 이제 이 정도면 하나님도 충분히 할 말을 다 했다고 생각하면서 바라바를 예수 대신 선택했다.   


기적이 돌아올 때


왜 이것이 중요할까? 한 가지 이유는 공개적이고 부인할 수 없는 기적의 날이 반드시 다시 올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불신을 자아내는) 자연주의라는 가짜 신은 무너질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이적을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도록 할 날이 올 것이다. 또 인터넷에서도 보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소위 말하는, “그런 것들”은 믿지 않는 계몽주의 시대의 사람들 조차 보고 놀랄 날이 올 것이다. 내가 알던 그 의대생은 그가 믿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초자연적인 일들이 일상이 될 것이다. 기적은 이제 부정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자연적인 이유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인해 우리의 배가 채워질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에게 해가 되는 이것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살후 2:9-10).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 


많은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는”(계 13:13-14) 것과 같은 “큰 표적”이 올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불법의 사람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실제 표적과 놀라운 일을 계속할 것이다. 그는 세상이 항상 원하는 그런 구세주가 될 것이다. 그는 우리를 놀라게 하고, 우리를 치료하고 예언하고 또 우리의 배를 채울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육체가 싫어하는 설교 없이 이뤄질 것이다. 이 불법의 사람은 너무나 설득력 있고, 매력있고, 경외심을 불러 일으키고, 매력적이기에 심지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조차도 속을 수 있을 정도다. 


그 위험한 날에 사탄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바로 지금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다.” 세상에 휩쓸려서 속은 사람은 “진리를 사랑함으로 구원받는 길을 거부한 자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자애롭고 능력에 넘친 기적과 표적 그리고 이적을 일으키면서 “가르친 것”을 사랑해야 한다. 그것만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 허락한 가짜 기적들, 우리가 과연 온 마음과 영혼으로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알기 위해 하나님이 페이스 북 페이지와 저녁 뉴스를 채우도록 허락한 가짜 기적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것이다(신 13:2-3).


베들레헴의 별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인도했듯이, 그분이 자신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 듣도록, 그리고 듣고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기적이 당신을 하나님의 아들에게 인도하게 하라.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Dangerous Miracles: Why Jesus Did Signs and Wonders

번역: 무제

베들레헴의 별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인도했듯이, 그분이 자신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 듣도록, 그리고 듣고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기적이 당신을 하나님의 아들에게 인도하게 하라

Let the miracles lead you, like the star of Bethlehem, to the son of God, to hear what he says about himself and, in hearing and believing, have life in his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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