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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기쁨이 없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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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Scott Hubbard  /  작성일 2021-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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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Noah Silliman on Unsplash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어두운 시절은 정상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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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봤지만 여전히 기쁨이 멀게만 느껴질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성경도 이미 읽었다. 묵독과 음독으로. 한 번에 다섯 절씩. 심지어 한 자리에서 성경의 책 한 ‘권’ 전체를 읽은 적도 있다. 약속의 말씀들을 메모지, 화이트보드, 그리고 손등에까지 적어두기도 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이들과 함께 모이기를 힘썼고, 마음의 짐을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회개하지 않은 죄는 없는지도 찾아보았다. 물론 기도도 했다. 홀로, 그리고 여럿이 함께. 골방에서, 그리고 길을 걸으면서도 말이다. 절박함 가운데 수련회에도 참석해봤다. 긴 시간 금식도 했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 같은 생각들에 귀를 기울여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두움, 적막, 그리고 의심은 여전히 당신 곁을 배회한다.


‘내 기도를 들으시는건가? 나를 아시기는 하는 걸까?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가? 나는 정말 그의 백성일까?’


우선 기억해야 할 것들


기쁨이 멀게 느껴질 때면 꼭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기억해야 할 것들’이라 함은 그저 ‘단순한 해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껏 많이 경험했겠지만, 도와주려는 선한 의도는 있으나 문제의 심각성을 축소시키고 단순한 해결책만 제시하는 사람들이 주는 조언 말이다. 이 사람들은 보통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겠네요”라고 말하곤 한다.  


성경은 결코 우리에게 단순화된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은 계속하여 우리가 늘 잊곤 하는 단순한 진리를 말한다. 그 진리가 어두움을 없애주지는 않지만, 구름 사이로 보이는 별들처럼 그 어두움 위에 빛을 비추고, 우리에게 보이지는 않지만 빛으로 가득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우리가 걸음을 멈추지 않도록 우리에게 힘을 준다.  


다윗 왕은 시편 40편에서 삶 속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게 다음을 꼭 기억하라고 말한다. 어두움은 정상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가까이 계시다. 기쁨의 날이 올 것이다. 주 안에서 소망을 잃지 말라.  


어두움은 정상적인 것이다


다윗은 먼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어두운 시절은 정상적인 것임을 상기시킨다. ‘시절’(seasons)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시편 40편이 묘사하는 어두움은 어느 오후 동안 잠시 느끼는 슬픔이 아니라 길고도 끈질기게 이어지는 어두움이다.  


다윗이 통과해야 했던 그 어두움의 시기가 얼마나 길었는지를 보라. 다윗은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라는 말로 시를 시작한다(40:1). 다윗이 얼마나 오래 그 어두움을 견뎌야 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지만,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주께 울부짖었다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여호와의 응답은 ‘기다리라’는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어두움의 시기의 ‘지속성’에도 주목하라. 이 시편의 중간 부분을 보면 다윗이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짐을 받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40:2), 그는 다시금 갑자기 어두움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40:11–13). 이로 인해 심각한 몰락의 위기에 직면한 다윗은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40:12)라고 부르짖는다.


마지막으로, 다윗의 어두움의 ‘상존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라. 이 시의 끝에 이르렀을 때에도 다윗은 여전히 어두움의 포로가 되어 있다. 기쁨의 노래는 간 곳 없고, 다윗은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라고 애통해 한다. 찬양하는 대신, 그는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라고 간구한다(시 40:17).


잃은 후 다시 찾은 행복, 하지만 다시금 상실한 행복에 대한 다윗의 시를 읽으며 우리는 기쁨에 대한 우리의 기대감을 다스릴 수 있다. 많은 이들을 비롯해 다윗이 경험한 것이 주는 교훈은 우리가 천국을 너무 급히 붙잡으려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직 모든 것이 다 새롭게 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감정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기쁨을 다 가진 것이 아니다. 이렇게 약한 육체를 입고 살며, 죽음이라는 우리의 대적이 우리 안에 존재하는 한, 우리가 누리는 기쁨은 실제기는 하나 어두움과 공존한다.


이 어두움은 우리를 괴롭히지만 나 혼자만 이런 어두움을 겪는 것은 아니다. 시편 기자들, 선지자들, 그리고 사도들 역시 같은 어두움을 통과해야 했다. 우리 앞서 살았던 성도들, 그리고 현재 우리 곁에 있는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우리 구주 역시 이를 겪으셨다. C. S. 루이스는 “우린 아무도 지나가 보지 않은 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네. 오히려 아주 넓은 도로 위에 서 있는 것이지”라고 말하며 우리에게 이 사실을 상기시킨다(‘말콤에게 보내는 편지’(Letters to Malcolm)).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다


하지만, 다윗은 어두운 색 물감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슬픔으로 가득한 이 시편은, 놀랍게도 소망으로도 가득하다. 어두움은 정상적인 것이 맞다. 하지만,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다.


다윗의 기도가 하늘에까지 상달되지 않는 듯 보일 때조차도, 결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듣고 계셨다(시 40:1). 다윗이 다시금 구덩이에 빠졌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의 변치 않는 사랑과 신실함으로 가까이 다가오셨다(시 40:11). 스스로 가난하고 궁핍한 것처럼 느끼고 그 마음이 심히 낙심되었을 때에도(시 40:12), 다윗은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시 40:17)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정말 그리 가까이 계시다면, 어떻게 어두움이 정상적인 것이 될 수 있는가” 라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때로는 우리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우리에게 어두움이 임한다. 다윗의 어두움 역시 부분적으로는 그 자신의 잘못 때문이었다(시 40:12). 하나님은 언제나 가까이 계시나 우리 스스로 구덩이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이 잘못을 범하지 않더라도 어두움을 통과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러한 때에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주님께는 오직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만 빚어낼 수 있는 계획이 있으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가 이 시편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시 40:6–8; 히 10:5–7). 예수께서 감당해야 했던 어두움에 비하면 다윗의 어두움은 그저 지나가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아들보다 하나님과 가까운 이는 없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아들의 길은 우리 중 누구의 길보다도 어두웠다. 

 

당신이 보는 하늘이 얼마나 밝은가로 하나님이 얼마나 가까우신지를 판단하지 말라. 당신이 예수께 속한 자라면 하나님은 결코 당신을 버리거나 잊지 않으신다. 무한하신 당신의 주께서 당신을 생각하신다(시 40:17).


기쁨의 날이 올 것이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다고 해서 우리가 어두움을 면제받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것은 그 어두움이 결코 ‘끝’이 아니며 ‘수단’일 뿐이라는 것을 뜻한다. 달리 말해, 우리가 겪는 어두움은 기찻길이지 역이 아니라는 의미다. 집으로 가는 길일 뿐이지 아늑한 집 자체는 아니다. 우리가 어두움의 길을 지날 때 하나님은 우리 영혼을 조율하셔서 다가올 찬송을 준비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시간에, 멀게만 보이던 기쁨이 다윗에게 돌아왔다. “나를 [중략]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시 40:2–3). 기쁨이 다시 멀어졌을 때, 다윗은 기쁨을 잃었다가 다시 회복했던 것을 기억해냈고, 이로 인해 이 시편의 말미에서 다윗은 담대히 기도한다. “주를 찾는 자는 다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시 40:16).   


다가올 기쁨에 대해 다윗이 확신하고 있다고 해서 그가 겪었던 어두움이 사실은 그다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없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어두움보다 기쁨이 언제나 더 깊고 더 확실하다는 뜻이다. 이 기쁨은 끝없이 더욱 깊어지고, 영원히 더욱 확실해진다. 당신은 아마도 현재로서는 이 진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망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다시금 찬양하고 웃으며, 듣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여호와는 위대하시다”라고 선포하는 당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상실된 기쁨이라고 해서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기쁨이 회복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당신의 기쁨이 지금은 그저 깜박거리는 수준이라고 해도, 언젠가는 활활 타오르게 될 것이다. 이 땅 순례 여정의 남은 모든 기간 동안 어두움이 늘 당신 삶에 그림자를 드리운다고 해도, 반석 위에 우뚝 서 걸음이 견고해지고 입에서 탄식이 멈추며 새 노래를 부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회복하기 위한 이 싸움에서 당신이 아무리 혹독한 어두움을 마주한다 해도, 사무엘 러더포드(Samuel Rutherford)가 말했듯, “천국에서의 첫째 날에 누리게 될 환영식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그리스도의 사랑스러움’(The Loveliness of Christ)). 그리스도인이여, 기쁨 가득한 날이 오고 있다.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 끝없이 영원한 기쁨이 오고 있다. 


주 안에서 소망을 잃지 말라


하지만 기쁨의 날이 온다는 약속을 어두움 속을 걷는 모든 이들이 누리는 것은 아니다. 이 약속은 어두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는 자들의 것이다. 다윗의 기도에서 이를 묘사하는 문구에 주목하라: “’주를 찾는 자는 다’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시 40:16). 다윗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주 안에서 소망을 잃지 말라고 권면한다. 


하나님이 지체하시는 것 같을 때조차도 계속하여 하나님을 기다리라. 하나님이 그의 약속들을 버리신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그것들을 붙들라. 하나님이 들으시는지 확신할 수 없을 때에도 계속하여 부르짖으라. 정말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때에도 계속하여 그의 얼굴을 구하라.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에 지쳤을 때 거짓에 치우치고자(시편 40:40) 하는 유혹, 다시 말해 즉각적인 도움을 약속하는,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로 달려가고픈 유혹에 저항하라. 기다리고, 매달리고, 기도하고, 찾으며, 하나님이 오실 것임을 신뢰하라.     


얼마 있지 않아 어두움은 비정상적인 것이 되고 결국에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가까워질 뿐 아니라 그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기쁨이 진정한 실제가 될 뿐 아니라 그것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이다. 토마스 켈리(Thomas Kelly)가 '구세주를 아는 이들' 5절에서 썼듯이 말이다. 


그날에 천국문 들어가 

한량 없는 기쁨 누리리

이 땅에선 부족하나

온전해지리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When Joy Feels Far Away

번역: 이정훈

아직 모든 것이 다 새롭게 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감정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기쁨을 다 가진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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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Scott Hubbard

스캇 허바드는 Bethlehem College & Seminary 를 졸업하였으며, 현재 desiringGod 의 에디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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