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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익'에 대한 총 31개의 게시물이 검색되었습니다.
다시 나그네로
[그리스도인의 삶] 작성자 by 김형익 작성일 2022-01-15

오랜 세월 기독교가 주류가 된 시대, 소위 크리스텐덤이라고 불리는 세상을 살아온 기독교가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라는 말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벧전 2:11-12). 1970년대 이후 급성장하기 시작한 한국 교회가 적어도 1980년대 말까지 보여 준 모습을 돌아보자. 어느 새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는가 싶더니 성시화운동의 기치를 내거는 정치권과 교계 인사들이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나타나기도 했다. 적어도 내 기억 속 1970년대 이전의 한국 교회는 불신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를 많이 말했던 시대였다. 하지만 197…

약함의 힘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김형익 작성일 2021-12-16

타락한 인간이 힘과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약함보다는 강함을 추구한다. 실패보다는 성공을 추구한다. 온갖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세상의 정치와 경제는 결국 힘과 권력을 추구하는 본성을 벗어나지는 못한다.복음은 이런 자연인의 성향을 구속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받은 신자는 자연인의 성향을 거슬러 살기 시작한다. 그래서 복음은 역설이다. 거스르는 삶, 역생(逆生)이다. 힘과 권력을 추구하는 자연인의 성향에서 구속받은 신자는 이제 약함과 실패에 기뻐한다. 약함과 실패를 오히려 자랑하는 기이…

참음, 그리스도인의 아비투스
[그리스도인의 삶] 작성자 by 김형익 작성일 2021-11-12

우리는 승리주의적 사고 체계로 기독교와 복음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규정하고 재단하기가 너무 쉽다. 승리주의적 사고에서 그리스도인의 표는 성공하는 것이고 1등이 되는 것이다.하지만 이런 사고 체계는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에 부합하지 않으며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표는 무엇일까?초기 교회의 아비투스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허용한 313년의 밀라노 칙령 이전까지의 초기 교회는 무엇을 그리스도인의 표로 여겼을까? 앨런 크라이더(Alan Kreider)는 그의 책 『초기교회와 인내의 발효』에…

사역의 성공과 실패, “실패해도 괜찮아!”
[교회] 작성자 by 김형익 작성일 2021-10-12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뵌 이사야 선지자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전 그 자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사야 6:9–10).” 하나님께서는 자원하여 헌신하는 이사야를 칭찬하시며 그의 사역의 성공을 보장해주시는 대신, 도리어 그가 실패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사야는 보장된 실패로 부름을 …

탕부 하나님처럼 선교사 가정 환대하기
[선교] 작성자 by 김형익 작성일 2021-09-10

이번 여름, 선교사 가정의 방문이 유독 많았다. 예정된 방문 일정을 앞두고 선교사 가정들에게 ‘아낌없는 환대’를 베풀자는 나의 제안에 교우들은 풍성한 연보로 호응하여 주었다. 그리고 방문하는 선교사 가정들에게 2박 3일의 짧지만 즐거운 가족 휴가를 제공하며 아낌없이 환대한 일은 선교사 가정들 뿐 아니라 교회에게도 큰 기쁨이 되었다.팀 켈러는 그의 책 『탕부 하나님』(The Prodigal God)을 통하여, 탕자를 가리키는 영어 ‘prodigal son’의 ‘prodigal’(방탕하다는 뜻)이 하나님을 수식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

한 달 전, ‘게임 체인저(the Game Changer)’라는 제목의 글을 쓰고나서,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글은 그 다음 이야기다. 그리스도인은 ‘사랑하라’는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다. 한 서기관이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라고 물었을 때, 주님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계명 보다 더 큰 계명이 없다고 대답하셨다(막 12:28-31). 이것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대계명(the Great Commandm…

게임 체인저
[그리스도인의 삶] 작성자 by 김형익 작성일 2021-07-12

언젠가 대학생 집회를 마친 후, 집회에 참석했던 형제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었다. 그는 3포를 아는지를 물었고 5포, 7포를 이야기했다. 당시 10년 넘게 미국에 거주하던 나에게 그 말들은 생소하기만 했지만, 나는 그 형제 덕분에 우리나라의 청년 세대가 겪는 고충을 조금 알게 되었다. 질문의 핵심은 “이런 암울한 현실을 사는 청년들에게 복음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이었다. 이르면 초등학교 시절부터 경쟁을 시작해서, 좋은 대학, 좋은 성적, 높은 연봉, 멋진 결혼식, 괜찮은 평수에서 신혼 시작하기, 멋진 차 그리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은퇴 …

은혜를 설교해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
[목회] 작성자 by 김형익 작성일 2021-06-08

“젊은이, 자네가 성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면,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유케 하는 은혜를 꼭 설교해야 하네.” 리처드 십스(Richard Sibbes)가 홀리트리니티교회의 젊은 후임 설교자 토마스 굿윈(Thomas Goodwin)에게 한 말이다.목사로 수련을 받는 신학생들은 설교학을 배울 때, 모든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말하라든가, 구속사적으로 설교를 해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듣는다. 그런데 정작 강단 사역을 시작하게 되면, 모든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말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경험하기 시작하고, 또…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는 복음은 관계 속에서 경험될 필요가 있다. 복음의 역동성은 우리 머릿속에, 혹은 신자 개개인의 내면의 변화로 제한될 수 없다. 복음이 신자 안에서 만들어내는 변화는 관계를 통해 역동적으로 드러난다. 복음은,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죄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관계의 변화를 만든다. 그리고 복음은 음녀 같은 존재를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가 되게 한다. 이뿐인가? 십자가의 복음은 원수 되었던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에 가로막힌 담을 헐어버리고 하나가 된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한다(엡 2:13-…

세상은 놀라도 우리는 놀라지 않는 이유
[이슈] 작성자 by 김형익 작성일 2021-04-08

세상에는 놀랄 일이 가득하다. 매일 전해지는 크고 작은 뉴스들은 정말 우리를 많이 놀라게 한다. 어쩌면 너무 많이 놀라서 놀람둔감증이라는 자기보호적 방어기제가 작동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30세 이상이 된 사람들 대부분은 20년 전인 2001년 9월 11일의 911 테러 뉴스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벌써 두 달 동안 미얀마의 쿠데타 세력에 의해 벌어지는 민간인 학살 뉴스가 우리를 놀라게 하고 슬프게 한다. 이 중에는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비슷한 사건의 뉴스들도 있다. 유아 학대 사건이 그중 하나인데, 그 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