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 위라쿤(Kamal Weerakoon)
오늘날 스리랑카의 기독교는 왕성한 동시에 연약하며, 핍박 받고 있다. 긴 내전의 사회적 결과들로 기독교인의 삶은 어려운 상태이다. 불교 민족주의는 복음전도를 식민주의, 회심을 반역이라 이름 붙이고 있다. 교파에 속하지 않은 신생 교회들은 부실 운영과 개인 숭배, 거짓 가르침 등에 연약하다. 기존 교파에 속한 교회들은 신학적 자유주의와 현실 안주의 구습으로 힘겨워하고 있다. 그러나, 위탁된 리더십과 초 교파적인 협력이 미래를 향한 길을 구축하고 있다.
유럽의 식민지화와 주류 교단들
기독교는 유럽 식민주의 시대에 스리랑카에 들어왔다:
1948년의 독립 이래로, 신할라 족과 타밀 족 간의 내전, 다시 재기된 불교 민족주의, 그리고 신생 독립 교회들이 이끄는 복음주의적 부흥이라는 세 가지 위력이 이러한 유럽 열강의 역사 뒤에 펼쳐지게 되었다.
내전의 사회적 영향
신할라 족과 타밀 족은 스리랑카의 대표적 두 종족이다. 신할라 족은 자신들이 이 나라의 토착 종족이라 여긴다. 타밀 족은 남 인도 지방 타밀나두로부터 내려온 사람들이지만, 스리랑카에서 2천 여 년을 살아왔기에, 자신들은 스리랑카인 타밀족이라고 간주한다.
영국 통치로부터의 독립으로 신할라 민족주의가 떠오르게 되었고, 이는 모든 타밀족의 공적인 ‘성공’ 혹은 ‘특권’들에 대한 분개로 이어졌다. 정부는 신할라 족이 점령하고 있었고, 꾸준하게 신할라 족에게 이익을 주고 타밀 족에게는 불이익을 주는 쪽으로 정책을 제정해갔다.
타밀 족은 이러한 인종적 정책에 불만을 품었다. The Liberation Tigers of Tamil Eelam (LTTE)은 무장 투쟁을 벌여 스리랑카의 북쪽과 동쪽 지방을 타밀 족을 위해 독립된 ‘조국’ (타밀어로 eelam)으로 요구했다. 이 내전은 1983년부터 2009년까지 지속되었으며, 8만에서 10만에 이르는 생명이 희생되었다.
전쟁 동안에, 양측 모두에서는 인권 탄압1과 언론 통제가 자행되었다:
따라서 개인적 불만/원한을 해결하기 위해 쉽게 속임수와 폭력이 사용되었다:
오늘날,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 개개인들은 진리의 모습이신 그 분의 이름으로 문화를 거슬러, 진리와 공의를 위해 맞설 임무에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서, 교회들이 그리스도를 닮은 진실됨과 겸손한 섬김보다는 연고주의, 뇌물 수수, 심지어 협박 등에 연루되는 유혹을 받게 된다.
그러나, 거룩함은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 사람으로부터 진리를 찾으시지만,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그에 미치지 못한다. 이것이 우리가 외부로부터, 불경건한 자들을 의롭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속죄하는 역사를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이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회가, 그리고 개개인의 그리스도인들이, 주변 문화에 순응하라는 압박에 대항해야 하고, 대신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공의를 구해야 한다.
진리를 위하여 이 같이 위험한, 문화에 반하는 공개적 저항이 실제로 있어 왔다:
신할라 불교 민족주의
LTTE 타도에 뒤이어, 신할라 민족주의는 스리랑카를 dharmarajya – 정의의 불교 국가 – 로 만들기 위한 급증하는 전투적 움직임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신할라 불교 신화는 부처가 친히 그 섬을 방문하여 성스럽게 만들어 부처의 상으로 만들었다고 역설한다. 모든 불교도들은 이 우상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불교 승려들은 그들의 예배와 생활 방식을 전국적 지령으로 만들고, 그 외의 종교들은 소외시키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정치에 가담해오고 있다:
2005년, JHU는 Mahinda Rajapaksa 대통령 정부의 일환이 되었다. 정치적 행동주의 안에서의 그들의 역할은 Bodu Bala Sena (BBS) (Buddhist Power Force)가 담당하게 되었으며, 이는 그리스도인들과 무슬림들 모두에 대한 폭력과 협박을 포함한다.
이 같은 불교 민족주의적 공격은 정부 각료들과 불교 성직자들에 의해 비난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BS는 종교적 경각심 가운데 세워진 민중의 민족주의를 대표하고 있다.
종교와 양심의 자유는 스리랑카 문화권에서는 당연시 여겨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반 기독교적 종교, 문화적 지배에 대한 최선의 반응은 신약 성경에 나오는 경건한 시민의 본보기를 따르는 것이다: 우리 스리랑카인의 국가 정체성 위에 온전히 살되,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타협하지 않는 것:
서구 제국주의 규탄에 맞서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전통적인 스리랑카 불교에서도 타락이라고 간주하는 성적 난잡함, 성행하는 낙태, 사치성 부와 낭비하는 소비 행태 등과 같은 현대 서구 문화 안의 반 기독교적 측면들을 드러내고 비판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사도 바울이 그러하였듯, 우리 또한 채식주의와 같은 문화적 관습을 받아들임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대하여 모든 것이 될 수 있겠다.
복음주의적 부흥
20세기 초기에서 중기 사이에, 신학적 자유주의가 주류 교단 교회들로부터 그들의 복음주의적 활기를 빼앗아 버렸다. 저해된 그 복음은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어떤 의미도 거절하였고 따라서 기독교는 단순히, 사람들이 불교, 힌두교, 또는 이슬람교 가정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종교를 가지게 된 것처럼 기독교 가정에 태어나 가지는 전통적 종교가 되어 버렸다. 기독교는 따라서 스리랑카 문화에 아무 해가 되지 않게 되었고,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자이며 주라고 선포하지 않던 한 교회는 태평할 수 있었다.
20세기 후반 국제 복음 부흥 운동이 스리랑카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데 이는 주로 Assemblies of God2, Island Gospel League – India Gospel League3의 교파 – 그리고 Gospel For Asia.4
같이 교단에 속하지 않거나 신생인 교단의 독립적 복음전도의 증가로 인해 일어났다.
이러한 새로운 교회들과 움직임들은 많은 지역적 반대에 직면하는데, 주로 그들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 사람들이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가는 것이다:
이런 교회들은 분명히 복음적 활기를 띠고 있고, 그들은 신학적 정통성 안에서 참고 견딜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도전은 새로운 것이 아닌 것이, 대부분의 신약 성경의 서신서들이 쓰여지게끔 한 똑 같은 문제인 것이다.
최근 들어, 기존 교회들이 복음주의적인 교회 개척 시도들을 시작하면서 이러한 새로운 움직임들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신학과 교회 문화의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스리랑카의 교회 지도자들은 이러한 도전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따르는 영향
스리랑카 교회들을 마주하는 많은 쟁점들은 다른 나라들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므로 스리랑카의 상황으로부터 배울 점들이 있다:
제안되는반응들
스리랑카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에 더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전 세계적으로:
Endnotes
1. http://www.nytimes.com/2014/02/05/world/asia/new-inquiry-on-sri-lanka-points-to-possible-war-crimes.html and http://www.piac.asn.au/news/2014/02/new-evidence-war-crimes-sri-lankan-civil-war.
2. http://worldagfellowship.org/fellowship/countries/wagf-participating-member-s-z/sri-lanka/
4. http://www.gfa.org/regions/country/sri-lanka/
10. http://www.cityofgodblog.com/2013/04/just-who-is-ajith-fernando/
11. http://vinothramachandra.wordpress.com/
Kamal Weerakoon was born in Sri Lanka, grew up in Australia, and is pursuing a PhD in intercultural ministry. He serves as resident chaplain to a household of overseas students from China, and as a part-time minister with the Australian Fellowship of Evangelical Stud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