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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매일 큐티

말씀 QT_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2021-01-28

마태복음 11장 20-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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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화 있을진저


회개하지 않으면 책망을 받는다.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않았다. 그러자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21절)라고 책망하신다. ‘책망하시되’라고 번역된 헬라어 ‘오네이디제인’은 ‘욕하다’라는 뜻이다. 또한 예수님은 ‘두로와 시돈’과 비교하여 말씀하신다. “내가 ‘두로와 시돈’에서 권능을 행했더라면 그들은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심판의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쉽다”(22절).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 가까이에 있는 회개하지 않는 고라신과 벳새다를 향해 이사야(23장)나 에스겔(26-28장)이 선포한 ‘두로와 시돈’보다 더 악화된 상황을 만날 것을 말하신다. 또한 ‘나훔의 마을’이란 뜻을 가진 가버나움에 대해서도 창세기 19장 24-48절에 나온 소돔과 비교하여 책망하신다. “내가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을 것이다. 심판의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쉽다.”


이러한 책망을 듣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에 대하여, 예수님은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 숨기시고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에게 계시를 드러내심에 감사한다(25절). ‘나타내심을’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아포칼립토’는 ‘감추이거나 덮인 것을 없애다’, ‘계시하다’, ‘알게 하다’, ‘드러내다’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로 부르시며, 그 아들 외에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자들에게만 스스로를 드러내신다(27절). 이것을 통해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님의 상호 관계성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행하신 권세있는 행동(이적과 기적)에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드는가? 그것에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계시가 나에게도 있다고 생각하는가?


예수님의 초대


예수님께 나아가면 쉼을 얻을 수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28절). 이러한 예수님의 초대의 대상은 누구일까? 본문의 25절에 언급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바리새인들이다. 이들은 많은 규칙과 규정들로 인해서 신앙이 수고이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운반할 짐과 같이 여긴다.


‘바리새’란 ‘분리된 자’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페루쉼’에서 나온 말로, 율법에서 깨끗하지 않다고 하는 것들로부터 분리하려는 태도에서 유래된 말이다. 마태복음에는 이들과 예수님과의 갈등이 자주 등장한다. 산상수훈(마 7:28-29), 안식일의 논쟁(마12:1-14),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삶에 대한 꾸짖음(마 23:23-24) 등이다.


예수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29-30)고 말한다. 멍에는 보통 쟁기나 수레를 끌기 위해 소나 나귀 등의 목에 가로 얹는 막대를 말한다. 대개 멍에는 두 마리의 동물이 한 짝이 되어 끌게 하였다. ‘멍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체메드’는 성경에서 멍에로 번역되기도 하고(렘51:23), ‘한 겨리’로 번역되었다(삼상 11:7; 왕상 19:19,21).


‘한 겨리’는 암수 한 쌍을 의미한다. ‘멍에’와 ‘한 겨리’의 의미는 함께 짐을 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운반할 짐과 같이 된 이들에게 그 짐을 자신과 함께 질 것을 요청한다. 이 요청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쉼을 얻을 수 있다.


나에게 있어 수고와 무거운 짐은 무엇인가? 쉼이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예수님께 맡길 수 있는가? 오늘 예수님이 당신에게 요청한다. “나와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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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 : 이학섭 목사(영광스러운교회)
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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