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Edition
한국어
UNITED STATES
AFRICA
عربي
AUSTRALIA
BRASIL
CANADA
正體中文
简体中文
ESPAÑOL
فارسی
FRANÇAIS
ITALIA
NEDERLANDS
SHQIP
SLOVENSKÝ
후원
하기
아티클
성경과 신학
그리스도인의 삶
교회
신앙과 일
예술과 문화
이슈
선교
목회
비디오
설교
강의
클리닉
Q&A
특집
바이블 가이드
읽어주는아티클
목양토크
3분 묵상
시리즈
콘택트
CTC코리아
목회데이터연구소
공동체성경읽기
한국로잔위원회
특강 플랫폼
더워드
큐티
아침 8시 매일 큐티
와플터치 & 큐티
리뷰
서평
새로 나온 책
뉴시티교리문답
뉴스
국내
국제
소개
복음과도시
이사회
스태프
TGC
CTC
문의처
검색
사이트 내 전체검색
검색어 필수
검색
추천 검색어
마음
여성
배움
성경
신앙과일
크리스찬
전체메뉴
01
ARTICLES
아티클
성경과 신학
그리스도인의 삶
교회
신앙과 일
예술과 문화
이슈
선교
목회
02
VIDEOS
비디오
설교
강의
클리닉
Q&A
특집
바이블 가이드
읽어주는아티클
목양토크
3분 묵상
03
SERIES
시리즈
04
CONTACT
콘택트
CTC코리아
목회데이터연구소
공동체성경읽기
한국로잔위원회
특강 플랫폼
더워드
05
QT
큐티
아침 8시 매일 큐티
와플터치 & 큐티
06
REVIEWS
도서
서평
새로 나온 책
07
The New City Catechism
뉴시티교리문답
08
NEWS
뉴스
국내
국제
09
ABOUT
소개
복음과도시
이사회
스태프
TGC
CTC
문의처
10
GIVE
후원
QT
아침 8시 매일 큐티
연도별
SELECT CONCAT(YEAR(wr_4)) ym FROM g5_write_qt1 where wr_4 <= '2025' GROUP BY ym order by wr_4 desc
2024
2023
2022
2021
2020
2019
2018
날짜순
조회순
이름순
QT 지혜 문학의 목적
2019-02-26
시편 1장 6절"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구약성경 속 지혜 문학은 특별한 주제들을 강조한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지혜를 얻으려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것이다(잠 1:7). 이 경외심은 하나님을 생각하며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다. 창조주의 속성과 사역을 생각하면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구약성경의 지혜 문학이 가르치는 경외심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는 마음과 행위를 통해 구체적으로 발현된다. 시편 1편은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오늘의 본문은 축복에 대한 선언과 관련이 있다. 한 주석학자는 성경이 가르치는 축복은 우리가 힘써 얻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라는 축복을 받게 된 이유는 그가 그렇게 될 만한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상들을 섬겼던 그에게 주권적으로 주어졌다(수 24:1-2). 물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면 큰 축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시편 1편이 가르치는 순종은 행위로 공로를 세움으로써 축복을 얻으려는 노력이 아닌,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써 우러나는 순종을 가리킨다.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배우고 성장하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밤낮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한다(시 1:1-2).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은 어떤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죄를 피하려고 분투하는 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해야 한다. 하루에 한 번 시간을 내서 하나님과 함께 보내는 "경건의 시간"은 그것이 아무리 유익할지라도 시편이 말하는 묵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본문 말씀에서 말하는 묵상이란 온종일 하나님의 율법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수 1:8). 하나님의 복된 종들은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자리에 눕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계명을 묵상하며 그것을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지 생각한다. 그런 식의 묵상이 이루어지면 우리의 삶 속에서 반드시 순종의 열매가 맺히기 마련이다.하나님은 의인들의 길을 유심히 지켜보신다(시 1:6). 의인들이 하나님을 섬길 때, 그분은 지극한 관심을 기울여 그들을 지켜보신다. 또한 하나님은 무심코 지켜보기만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종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신다.코람 데오존 칼빈은 오늘의 본문을 이렇게 주석했다.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할 때만 그분을 옳게 섬길 수 있다. 각자의 판단에 따라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경건의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지속적으로 받아 누리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생각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판단하지 말고 그분의 계명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의 계명은 성경에 계시된 그분의 도덕법을 통해 알 수 있다.출처: www.ligonier.org원제: The Purpose of Wisdom Literature번역: 조계광 (개혁된실천사)
QT 다윗 왕이 섬겼던 위대하신 하나님
2019-02-25
시편 89장 8절“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주와 같이 능력 있는 이가 누구리이까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주를 둘렀나이다”신약성경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약성경은 시편이다. 특히 89장을 읽어보면 그 이유를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시편은 하나님이 다윗과 맺으신 영원한 언약과 그분의 성품을 높이 찬양함으로써 메시아의 영광을 드러낼 뿐 아니라, 하나님이 다윗 왕가를 통해 자기 백성에게 행하신 사역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이 시편의 저자는 솔로몬 시대에 뛰어난 지혜로 이름을 날렸던 에스라인 에단이다(왕상 4:31). 그는 창조주의 '인자하심'을 찬양하며 서두를 여는데(시 89:1-2), 인자하심은 히브리어인 '헤세드'를 번역한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헤세드는 변함없이 충실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다윗 왕가와 그의 후손을 충실하게 보살피신 은혜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지는 그분의 선한 사랑이 모두 이 헤세드에서 비롯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인자하심을 따라 다윗과 그의 후손이 자기 백성의 지도자가 되도록 선택하셨고(시 89:3-4), 다윗 왕가를 처음 세우신 이후로 그 명맥을 계속 유지시켜 주셨다. 다윗의 보좌를 영원히 세워주겠다는 약속은 오직 이를 약속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충실히 지켜질 수 있다. 만일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많은 신들 가운데 한 분이라면 그분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었을 것이고, 또한 다른 세력들이 그분의 계획을 방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이 가르치는 대로 여호와는 유일하고, 참된,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전능하신 창조주로서 하늘과 땅의 기초를 건설하셨다(시 89:11). 이에 따라 모든 피조물은 소유자이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에 복종하고 그분의 통제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무엇도 다윗의 하나님이자 우리의 하나님인 그분의 계획을 방해할 수 없다.하나님이 선택하신 왕과 백성이 그분 안에서 높임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은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진정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시 89:16-18). 하나님은 다윗의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온전하게 보호하실 것이다. 히포의 어거스틴은 이렇게 주석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요, 우리의 빛이시다. 우리는 그분의 빛 안에서 안전하고, 그분의 빛 가운데로 걸으며, 그분의 의로우심을 통해 높임을 받는다. 그분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보호하시며, 우리에게 우리의 능력이 아닌 그분 자신의 능력을 허락하신다."코람 데오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이해하면 그분의 약속을 굳게 붙잡을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전지전능하고 지극히 선하신 창조주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 그분의 거룩한 목적이 성취되지 못할까 봐 의심하는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함으로써 그분이 주실 충족을 온전히 믿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관한 성경의 교리를 배우는 중요한 이유이다. 항상 기억하라.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에 대해 이해하면, 그분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섬김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출처: www.ligonier.org원제: King David’s Might God번역: 조계광 (개혁된실천사)
QT 성령의 열매
2019-02-22
갈라디아서 5장 16-17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인간은 범상치 않은 것, 특이한 것에 열광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방언이나 치유의 은사, 예언의 은사에 열광하는 현상도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크게 이상하지 않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더 의로워지거나 더 경건해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부분들에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적용하는 성령의 주요 역할 중 하나가 우리의 성화, 즉 거룩 안에서 우리의 영적 성장을 이루는 것이라고 거듭 이야기하기 때문이다(벧전 1:1-2). R. C. 스프로울 박사는 성경에서 삼위일체의 세 번째 위격을 ‘거룩한 영’(Holy Spirit)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물론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도 거룩하시지만, 성경에서 ‘거룩한 아버지’나 ‘거룩한 아들’이라는 호칭을 쓰지는 않는다. 이런 차이점은 우리를 실제로 거룩하게 만드시는 성령님의 특별한 역할을 부각시킨다.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능력이 임할 때, 우리는 삶에서 성화라는 열매를 맺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열매를 추구하는 삶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혼동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추구의 대상이 '은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갈 5:16-17).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육체와 성령의 대조는,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대조가 아니라 우리의 타락한 상태와 성령께서 주시는 새로운 심령의 대조이다. 물론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권세는 깨졌고, 우리는 의롭다고 칭함을 받으며 용서받는다. 그러나 죄는 여전히 남아 있으며, 우리가 죽거나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도 계속 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고 권고하면서도 육체적 욕망과의 싸움은 계속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성령 안에서 행하라고 굳이 명령을 할 필요 조차 없을 것이다. 로마서 7장과 요한일서 1장 8-9절과 같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도 온전한 거룩을 위해 부단히 죄와 싸워야 함을 분명하게 언급한다.한 성도에게 성령의 은사를 전부 주시지는 않으므로(고전 12:1-11), 어떤 그리스도인도 모든 성령의 은사를 다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일은 우리의 임무이다. 우리는 삶에서 갈라디아서 5장 22-24절에 기록된 모든 열매를 다 이루어야 한다.코람데오성화의 과정에서 열매를 맺는 기준은 완벽함이 아니다. 성경은 우리가 영화롭게 되기 전까지는 완벽한 거룩함을 이루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부족하게나마 삶에서 사랑과 희락, 화평을 비롯한 성령의 열매가 자라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출처: www.ligonier.org원제: The Fruit of the Spirit번역: 차수정 (개혁된실천사)
QT 나의 손에 달려있지 않다
2019-02-21
전도서 9장 12절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거기에 걸리느니라” 우리는 서점에서 '자기 계발' 도서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결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열 가지 단계, 사업의 성공을 보장하는 몇 가지 원리, 최고의 리더가 되는 방법 등을 약속하는 책들이 즐비하다. 그런 책들은 한결같이 번영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처럼 말한다. 심지어 교회도 그런 견해에 동조하며, 인간의 힘으로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친다. 어떤 저자들은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 성경을 인용하면서 '축복에 이르는 성경적인 방법'이나 그와 비슷한 내용의 논리를 제시한다. 물론 성경은 하나님을 추구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축복을 약속한다고 말한다(신 28:1-14; 마 6:33). 그러나 몇 가지 간단한 단계를 거치기만 하면 세상에서의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면, 이는 하나님의 축복과 주권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곡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섬기는 자들에게 좋은 것을 베푸시지만, 오늘의 본문은 다양한 축복과 우리가 이루는 번영의 정도가 궁극적으로 인간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고 가르친다. 성경은 지혜로운 계획과 부지런한 노력을 거듭 강조한다. 세상적으로 말하자면 이 두 가지에 충실할 때, 성공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러나 우리의 계획과 노력이 모두 좋은 결과를 낳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전도서에 따르면 인간의 삶은 '시기'와 '기회'라는 두 가지 강력한 요인에 영향을 받는데(전 9:11), 이는 해 아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시기를 정하신 하나님의 강력한 섭리를 의미한다(전 3:1-8). 우리가 아무리 신중하게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더라도, 가장 빠른 자가 경주에서 질 수 있고, 가장 강한 군대도 싸움에서 패배할 수 있으며, 가장 똑똑한 사람도 굶주리거나 가장 학식이 높은 사람도 지위를 얻지 못할 수 있다. 겉으로 볼 때 아무렇게나 마구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과 사건들이 고리처럼 이어지면서, 자신이 원했던 최상의 의도가 예상치 못하게 좌절될 수 있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고난을 예견하거나 예방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성공은 자신의 손이 아닌 하나님이 작정하신 뜻에 달려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코람 데오 오늘의 본문은 계획이 필요없고, 성공을 위한 노력도 불필요하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전도자의 목적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들고, 피조 세계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위치를 옳게 인식하도록 돕는 데 있다. 우리는 부지런하고 지혜로워야 하지만, 만사를 온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 주권자는 우리가 아니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생의 계획을 세울 때, 우리는 자신의 행위보다 하나님을 신뢰해야만 한다.출처: www.ligonier.org원제: Not in Our Hands번역: 조계광 (개혁된실천사)
QT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의 참 의미
2019-02-20
마태복음 5장 37절"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구약성경의 시가서는 온순한 말을 장려하고(잠 15:4), 음탕한 사람들의 달콤한 말을 경계하는 등(잠 5:3), 혀의 사용에 관해 많은 가르침을 베푼다. 또한 시가서의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에는 성급히 맹세를 내뱉고 이를 지키지 않는 행위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포함된다(전 5:1-7). 기독교 공동체는 맹세와 서원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많은 성도들은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라는 야고보서 5장 12절 말씀을 기억한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우리는 마치 야고보가 어떤 상황에서도 맹세와 서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낀다. 실제로 기독교 신학의 전통 가운데 일부는 이 구절을 그런 의미로 이해하기도 한다.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나머지 성경의 가르침을 옳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신명기 10장 20절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명령한다. 야고보는 모든 맹세를 금지하지 않았다. 만일 그랬다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 모순이 생긴다. 그렇다면 그는 무슨 의미로 이런 말을 했을까? 야고보의 가르침은 바로 오늘의 본문에 해당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예수님은 피조물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옳으면 옳다고 하고 아니면 아니라고 하라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이 그런 가르침을 베푸신 이유는 1세기의 유대인들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맹세는 절대적이지만, 그분이 창조하신 피조물의 이름으로 서원했다면 이는 절대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맹세와 서원에 관해 가르치신 요점은 진실을 말하고, 의도한 바를 끝까지 실천하라는 것이다.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기 위해 피조물로 약속하고 맹세를 지키지 않는 것은 진리이신 하나님을 존중하는 자세가 아니다(요 14:6). 예수님과 야고보의 요점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마음대로 어길 수 있는 약속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코람 데오창조주께서는 마음의 동기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신다. 하나님은 책임을 면할 수 있는 빌미를 마련해 놓고 약속을 남발하는 행위에 속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약속을 하기 전에는 먼저 신중하게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진정으로 행할 결심이 있을 때에 이를 말과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출처: www.ligonier.org원제: The Promises of the Tongue번역: 조계광 (개혁된실천사)
QT 충실한 복종
2019-02-19
시편 119장 141절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모든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며 박수갈채를 보낼 때, 아무런 반대가 없고 대중의 의견이 호의적일 때는 담대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어렵지 않게 경건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지지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어떠할까? 나의 편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리스도께 충실히 복종한다면, 그것은 곧 나의 인격이 순전하고 또 마음이 진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이다.시편 119편과 율법의 영광을 설명한 그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면, 저자가 항상 그를 지지하는 상황에만 놓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종종 창조주의 율례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마주해야 했다. 원수들은 거짓으로 그의 인격을 깎아내리고(시 119:67, 78), 또 박해를 행했다(시 119:86, 95). 그러나 그런 고통의 와중에도 저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미천했지만" 하나님의 계명을 결코 잊지 않았다(시 119:141).시련과 환난은 믿음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시금석이다. 고통을 감내하며 그리스도께 충실하면, 그분을 믿는 믿음이 진실하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그런 신앙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다. 야고보 사도가 시험을 당할 때 기뻐하라고 말한 이유도 시험이 우리를 굳세게 하고, 끝까지 인내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이다(약 1:2-4, 12). 만약 예수님을 고백하는 믿음 때문에 고난 받는 상황에서 편안한 삶을 얻고자 하나님의 율법을 잊는다면, 믿음의 진실성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시편의 저자처럼 "미천해도"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고 따른다면, 자신이 진정으로 주님의 소유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존 칼빈은 "하나님을 진지하게 섬기는 사람은 [중략] 세상에서 처한 상황이 아무리 힘들고 고달프고 두렵더라도 굳세게 버틴다"라고 주석했다.삶이 형통할 때는 누구나 충실할 수 있다. 인내하는 참 믿음은 시련 속에서 굳게 버틸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낸다. 물론 우리 자신에게는 충실하게 버틸 수 있는 힘이 없다. 환난 속에서 인내하려면 하나님의 성령을 온전히 의지해야만 한다.코람 데오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많은 곳에서 오랫동안 "미천한" 소수로 취급 받아야 했다. 서구 사회에서는 아직 형식적으로나마 기독교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 위에서 조롱이나 멸시를 피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주님께 충실하고자 노력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확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향한 섬김의 힘을 위로부터 받게 될 것이다.출처: www.ligonier.org원제: Faithful Obedience번역: 조계광 (개혁된실천사)
QT 인내의 덕목
2019-02-18
전도서 7장 8-9절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원하는 것을 당장에 얻고 싶어 한다. 결과나 만족을 위해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다는 생각은 우리에게서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인내는 성경이 가르치는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이다. 그 덕목은 성령의 열매에 속한다(갈 5:22-24). 성경을 조금만 읽어보아도 인내를 권고하는 내용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오늘의 본문은 교만한 마음보다는 참는 마음이 더 낫다는 말을 하며 인내를 권유한다. 또한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다는 말과 함께 고난의 와중에서도 인내하기를 권고한다. 고난의 끝(즉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목적)이 더 낫다는 사실을 알면, 시련과 환난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낼 수 있다. 히브리서 12장 11절은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라고 말씀한다.매튜 헨리는 오늘의 본문을 주석하면서 “인내하는 마음과 교만한 마음이 대조되고 있다. 왜냐하면 겸손이 있는 곳에 인내가 있기 때문이다. 인내하는 자들은 하나님에게서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다고 고백하며 어떤 일에 대해서든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겸손히 낮추고, 좋은 것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그분이 우리를 사랑으로 징계하실 때도 기꺼이 감사할 수 있다. 고통이 우리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기를 원하지 않으면 마음속에서 분노가 치솟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겸손히 인내하면, 그런 분노를 물리칠 수 있다. 그런 분노는 어리석은 자의 증거이다(전 7:9).코람 데오인내가 없으면 절망하기 쉽고, 절망은 분노로 이어질 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과 성령의 사역에 주의를 집중해서 인내하는 마음을 기르면 좌절하지 않고 어리석은 마음의 증거인 분노를 다스릴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불의한 분노는 온갖 죄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고난의 와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그분의 약속을 굳게 붙잡음으로써 사랑과 인내로 잘 견뎌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출처: www.ligonier.org원제: The Virtue of Patience번역: 조계광 (개혁된실천사)
QT 형제보다 더 가까운 이웃
2019-02-15
잠언 27장 10절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우리는 친구들을 선택할 수 있다. 또 어느 정도는 이웃이나 직장 동료들까지 선택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거주지나 일터는 대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인간 관계에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없는 관계는 가족뿐이다. 우리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상태로 한 가정에 태어난다. 또한 부모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선택할 수도 없는 형제자매를 우리에게 안겨 준다. 더욱이 우리에게는 일가친척이 있다. 사촌, 숙모, 숙부, 조부모, 조카 등이다. 우리는 그들을 선택할 수 없다. 우리가 태어난 가정을 우리가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불편한 상황이 초래되기도 한다. 가족들 가운데는 우리가 거론하기조차 원하지 않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관계가 깊든 피상적이든 간에, 우리는 가족을 지켜주고 가족은 우리를 지켜준다. 따라서 우리가 교회 안에서 맺는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성경에서 가족의 비유를 사용하는 예를 자주 볼 수 있다. 우리는 혈통적인 가족과 관계를 맺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형제자매와 관계를 맺는다(요일 3:16).교인들 가운데는 우리와 혈연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우리는 대개 그리스도를 믿는 공통된 믿음에 근거해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성경은 혈연으로 맺은 형제자매와의 관계보다 성령으로 맺은 믿음의 형제자매와의 관계가 더 친밀하다고 가르친다(눅 14:26). 그런 진리는 신약성경에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만, 오늘의 본문과 같은 구약성경의 본문에도 암시되어 나타난다. 이 본문은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더 낫다는 말로 누가 진정한 가족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다시 말해, 혈통적 관점에서 먼 친척보다는 (문맥상 가까운 친구를 가리키는) 이웃이 더 낫다고 말함으로써 ‘물리적이거나 유전적인 차원에서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라 관계의 차원에서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가르친다. 우리는 그리스도는 물론, 그분과 연합한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혈연 관계를 맺고 있든 아니든 상관없이 하나님 및 그 백성과의 관계에 가장 먼저 충실해야 한다. 우리는 믿음의 형제자매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우리의 진정한 가족이다.코람 데오오늘의 본문이 자리한 문맥이 가르치는 대로, 친구의 권고는 아름다워야 한다. 즉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내용과 우리를 진정으로 염려하는 마음이 담긴 권고이어야 한다. 환난 날에 우리는 친구의 집으로 피해야 한다. 이 말을 신약성경의 계시에 비춰 생각하면, 교회가 다른 사람들은 베풀려고 하지도 않고 베풀 수도 없는 것, 곧 사랑에서 우러나온 조언과 도움을 교인들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교회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당신은 어떻게 돕고 있는가?출처: www.ligonier.org원제: Closer Than a Brother번역: 조계광 (개혁된실천사)
QT 하나님의 징계
2019-02-14
잠언 3장 11-12절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우리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성경은 우리의 믿음이 참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증거를 제시한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다는 고백도 그런 증거 가운데 하나이다(롬 10:9). 그러나 믿음의 고백이 거짓인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다른 증거들이 더 필요하다. 요한일서 5장 1-4절은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육신을 입으셨다는 사실을 믿을 뿐 아니라,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과 이웃 성도들을 사랑한다고 가르친다. 또한 갈라디아서 3장 1-14절은 그리스도인은 의롭다 하심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며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가르친다. 성령의 임하심과 구원하는 믿음은 삶 속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를 통해 사실로 입증된다(갈 5:22-23). 성령의 내적 증거, 곧 성령께서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증언하시는 일도 그런 증거 가운데 하나이다(롬 8:12-17). 오늘의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자녀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를 제시한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징계이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징계, 곧 그분의 회초리를 맞을 일을 예상해야 한다. 좋은 부모는 자녀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그들에게 규칙을 가르쳐 사회와 세상에 잘 적응하도록 훈련시킨다. 좋은 부모는 자녀들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에 적절한 벌을 내린다. 잠시 특권을 박탈하거나 방 귀퉁이에 서 있게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벌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그러나 목적은 항상 동일하다. 이는 바로 자녀들의 행동을 올바르게 교정해서 책임 있는 성인으로 성장하게 하는 데 있다. 그와 비슷하게 성부 하나님도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징계를 가하신다. 죄와 죄책을 깨닫게 하는 일에서부터 그로 인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데 이르기까지 징계의 방법은 다양하다. 어떤 징계가 내려지든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는 데 있다. 그분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적용하신다(골 1:28).하나님의 징계는 모든 성도에게 적용된다. 심지어 위대한 다윗 왕도 죄를 지으면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의식해야 했다(삼하 7:14). 우리도 죄를 지으면 그분이 내리시는 징계의 손길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좋은 부모의 징계처럼 하나님의 징계도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유익하게 한다. 따라서 하나님께 벌을 받을 때는 그 과정을 통해 더욱 성장하려고 노력해야 한다.코람 데오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이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지 않으신다. 그분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온전하게 만드시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죄로 인해 징계를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거나 해롭게 하기를 원하신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징계는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더욱 강해지기를 원하신다는 긍정적인 증거이다. 지금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는가? 그렇다면 고통을 통해 깨달아야 할 교훈이 무엇인지 알게 해달라고 겸손히 기도하라.출처: www.ligonier.org원제: The Discipline of the Lord번역: 조계광 (개혁된실천사)
QT 우상숭배와 회복
2019-02-13
시편 78편 65-66절 “그 때에 주께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포도주를 마시고 고함치는 용사처럼 일어나사 그의 대적들을 쳐 물리쳐서 영원히 그들에게 욕되게 하셨도다”신자들이 죄를 짓고 교회가 종종 영적으로 쇠퇴해진 모습을 보면, 오늘날의 언약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특별히 불충실한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오늘날의 교회가 직면하는 문제들을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그것을 과대평가할 필요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역사를 돌아보면 하나님의 백성이 지금보다 더 불충실하던 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사실을 기억하면, 좀 더 현실적인 눈으로 우리의 시대를 바라보며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사역에 감사할 수 있다. 시편 78편을 통해 과거의 신자들이 하나님께 불충실했던 사실을 알면, 우리 세대를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 시편의 저자인 아삽은 광야 세대의 불충실함을 길게 언급했다. 그는 하나님이 그들을 노예 생활로부터 해방하는 과정에서 애굽에 내렸던 갖가지 재앙을 열거하면서 그들의 어처구니없는 실패를 강조했다(시 78:40-51; 출 7:1-12:32).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모든 표징을 목격하고서도 하나님의 지혜로운 통치와 주권적인 사랑을 거부했다. 결국 광야 세대 가운데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민 14:35-38; 신 1:34-38). 우리는 그런 사실을 통해 최소한 두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직접 눈으로 봐야만 그분께 충실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믿음을 굳게 유지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신 일을 통해 아무런 유익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의 영적 경험이 창조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증거는 아니다. 구원의 증표는 현재의 믿음이다.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실 때만 놀라운 권능을 베푸신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 당시에도 큰 기적을 베풀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시 78:51-55). 그러나 가나안 세대도 감사할 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애굽에서 나온 첫 번째 세대가 실패한 것처럼, 약속의 땅에 거주한 가나안 세대도 하나님과의 언약을 충실하게 지키지 못했다. 아삽은 사사기와 사무엘상에 기록된 일들을 언급하면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에도 우상 숭배를 저지르고, 온갖 고초를 겪었던 일을 상기시켰다(시 78:56-64). 그러나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마지막 몇 구절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님은 강한 용사처럼 일어나 사사들을 통해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다. 그것은 장차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왕을 통해 베푸실 놀라운 구원을 예고하는 의미를 지녔다(시 78:65-66; 삿 2:16-18; 삼상 7:3-17; 삼하 7:1).코람 데오오늘의 본문은 우상 숭배로 인해 실패한 이스라엘의 역사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결론 부분에서 하나님이 일어나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희망을 제시함으로써 많은 용기를 준다. 언약의 공동체가 깊은 타락의 수렁에 빠졌을 때조차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충실히 지키신다. 우리는 이를 구실로 죄를 짓기보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자기 백성이 직면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다.출처: www.ligonier.org원제: Idolatry and Restoration번역: 조계광 (개혁된실천사)
처음
이전
열린
186
페이지
187
페이지
188
페이지
189
페이지
190
페이지
다음
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