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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플터치 & 큐티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

1월 7일 와플 QT_주말칼럼

2024-01-07
주말칼럼 -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 

얼마 전 한 젊은 디자이너에게 사진에 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질문을 시작하면서 주변에 사진을 전공한 친구들이 꽤 있다고 합니다. 그중 한 친구는 사진 작업으로 아무나 갈 수 없는 남극에도 가고, 에베레스트를 사진기에 담기 위해 여러 차례 다녀왔다고 합니다. 그 친구들은 세상을 사진으로 더 넓혀보려는 듯 눈에 띄게 돌아다니며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현장에 가지 않아도 사실보다 더 극적인 영상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픽 툴을 잘만 이용하면 웬만한 사진작가가 촬영한 장면보다 더 멋진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전 세계에 있는 산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남극이나 북극처럼 쉽게 접할 수 없는 지역의 영상이나 이미지들도 얼마든지 다운받아서 실제처럼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컴퓨터 프로그램에 원하는 장면을 만들라고 몇 마디 명령어만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알아듣고 즉시 주문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결과물을 교정하기만 하면 출력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1888년부터 시작된 그 유명한 잡지회사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이 수백 명의 사진가와 편집자들을 해고하고 파산했다는 소식도 덧붙여 전해 주었습니다.


질문의 요지는 이런 현실 아래 사진 촬영을 위해 오지에 갈 필요가 있는가? 더 나아가 현장 사진 작업이 과연 필요한가? 사진의 앞날을 어떻게 예측하는가? - 평생 사진을 해온 저에게 도전적인 질문을 한 것입니다. ‘사진이란 무엇이며 배울 만한 가치는 무엇인가?’란 근본적인 내용과 닿아 있는 질문입니다. 사진이 생업이고, 사진 교육을 준비하고 있는 저의 상황을 파악한 젊은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아주 예리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통하여 젊은 디자이너의 사진관과 가치관이 짚어졌기에 나는 ‘사진을 하는 사람들에게 사진이 형성시켜 주는 좋은 인성이 무엇이라

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세상의 직업과 학문에는 그 존재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이 사진의 실용적인 가치를 위해 시작하지만, 막상 사진 안으로 들어가면 놀라운 일이 연이어 벌어집니다. 피상적으로 사진의 겉모습만 접하는 사람은 알 수 없는 세상이 사진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귀한 가치를 사진으로 전하기 위해 사진을 가르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움, 평상시에는 깊이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사진을 통해 보게 된다는 것이 그중 하나입니다.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라 표현해도 될 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대표적인 몇 마디의 말이 있습니다. ‘이 땅의 주인은 이 땅의 아름다움을 본 사람입니다.’ ‘사진에도 길이 있습니다.’ 모든 학문과 직업이 이미 가지고 있는 길이 사진에도 있습니다. 그 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시작되어 저 높은 하늘까지 이어져 있는 길입니다. 그 길이 사진에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인정받고 싶어서 세상 사람들에게 하는 자존심 상하는 부끄러운 말입니다. 여기에도 중간에 끊어지거나 꺾이지 않아야 한다(중꺽마)는 전제가 상식처럼 통용되는 그런 길입니다. 사진의 가치를 피상적으로만 짐작했던 젊은 디자이너의 질문에 나름 성실하게 대답하며 한 가지 덧붙였습니다. 내가 아직까지 사진기를 들이대지 않는 사물이 무엇일까요? 그만큼 난 남이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더 본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만큼 행복합니다. 내가 인정하는 사진가는 자기 집 앞마당에서 작품을 하는 사람입니다. 







작성자 : 함철훈 (사진작가)

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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