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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플터치 & 큐티

와플 QT_영화 ‘사일런스’ 그리고 배우 남정우
2020-03-08


주일칼럼_흘러간 영화를 음미하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

배우 남정우는 일본문학의 거장 엔도 슈사쿠의 대표작 ‘침묵’을 원작으로 제작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에 출연한 배우입니다. 할리우드의 거장 감독 마틴 스콜세지의 대작에 출연한 배우임에도 남정우라는 이름이 낯선 이유는 출연 분량이 매우 적기 때문입니다.


영화 침묵의 상영시간 159분 중 남정우 배우의 출연 시간은 대략 10여 초. 배역 이름도 없는 마을 주민 50여 명 중 한명이자 얼굴마저 검게 그을린 듯 분장을 한 남정우 배우를 찾아내는 것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어쩌면 ‘그저 엑스트라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남정우 배우는 이를 넘어서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2001년 대학 입학과 동시에 극단에 들어간 그는 그해 말 엔도 슈사쿠의 작품을 각색한 연극 ‘침묵’에서 ‘덕칠이(원작의 기치지로)’역을 맡으며 무대 위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배우가 될 것을 다짐 했습니다. 졸업 후 크고 작은 연극, 뮤지컬 무대에 서며 활동을 이어가던 남정우는 2012년 스콜세지 감독이 ‘침묵’을 영화화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자신의 인생을 바꾼 이 작품에 참여하고 싶었던 그는 제작사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고 ‘시체역이라도 좋으니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응답은 돌아오지 않았죠.


1년 뒤 일본 도쿄에 뮤지컬 공연차 방문했을 때 영화 <사일런스>의 제작 소식을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일본 공연의 출연료 전액을 털어 뉴욕행 항공권을 사고 어렵게 제작사 주소를 알아내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펜을 들었습니다. ‘기치지로’역을 맡았던 대학 시절 사진들과 함께 작품에 대한 열정을 담아 우편을 보냈습니다. 역시 반응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은 흘렀습니다.


그러다 그는 우연히 대만에서 곧 영화를 찍을 것이란 기사를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직접 촬영장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바로 대만으로 갑니다. 하지만 도착하고 보니 촬영지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사방으로 알아봐도 장소를 알 수 없어 답답해하고 있는데, 우연히 현지 뉴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촬영장에서 세트가 무너졌다는 사고 소식이었는데 바로 ‘침묵’이 촬영 중인 곳이었습니다. 남배우는 뉴스에 나온 지명을 찾아 바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촬영장 앞에서 ‘배우 바우(남정우의 영어이름)가 스콜세지 감독을 찾아 서울에서 뉴욕을 거쳐 대만까지 왔다’는 피켓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름이 지나도록 제작 관계자들은 관심을 주지 않았죠. 그때 한 대만 스태프가 단역 배우 모집하는 회사를 알려 줬고 한걸음에 달려간 남정우는 수년을 연습해왔던 ‘기치지로’역을 연기했습니다.

이러한 무모한 도전과 극적인 오디션 끝에 기회를 얻은 남정우 배우가 영화 침묵에 등장하는 건 단 두 장면. 하지만 그는 “‘이름 없는 마을주민’이 아닌 ‘기치지로’역에 임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열 번의 촬영 현장을 누볐다”고 말합니다.


영화 침묵은 시마바라의 난 이후 일본에서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던 그리스도인들과 선교사들이 겪어야 했던, 마치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과 같은 긴 핍박과 고통의 과정을 묘사합니다. 남정우 배우의 도전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도저히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그 길을 하나님의 ‘침묵’ 속에 꿋꿋이 걸어가는 과정이 결과적으로는 짧은 출연이었지만 아름다웠죠.


당신의 삶에도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과 같은 과정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침묵’이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오늘도 내가 가야 할 길을 한걸음 걸어가는 것. 그 길의 끝에서 하나님의 침묵이 아닌 작품이 되는 당신의 삶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작성자 : 김선의 목사(가까운교회)
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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