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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성례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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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Tiago Oliveira /  작성일 202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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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ames Coleman on Unsplash

프로테스탄트가 구원의 도구로서 성례를 거부했다고 해서 성례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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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자는 프로테스탄트 개혁의 후예다. 우리는 구원이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믿는다. 다른 무엇보다도, 저 개혁자들은 세례와 성찬을 구원의 도구로 잘못 해석한 가톨릭교회의 성례전을 거부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가 구원의 도구로서 성례를 거부했다고 해서 성례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주 예수께서 하나님의 백성이 예배를 위해 모일 때 지키도록 성례를 제정하셨다고 믿는다. 성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표시요 또한 성도들 사이 연합의 표시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례가 사람들을 정말로 변화시킨다고 믿는다. 이러한 확신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1. 성례는 눈에 보이는 말씀이다.


성례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다. 더 나아가, 불신자들이 믿음에 이르고(롬 10:13-17), 그리스도인이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요 17:17)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교회가 예배를 위해 모일 때 말씀은 기도와 설교, 성경 낭독과 찬송, 그리고 세례와 주의 만찬을 통해 우리 모임의 한가운데 자리한다. 따라서 성례는 눈에 보이는 말씀이다.


우리 주 예수께서 세례(마 28:18-20)와 주의 만찬(눅 22:14-20; 고전 11:23-30) 둘 다 제정하셨다. 이 둘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바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이다. 주님은 당신의 교회에 세례와 주의 만찬을 행하라고 명하셨다. 이 둘은 우리의 성화를 위한 수단으로 매우 유익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성례는 그 자체에 신비한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성례는 정말로 사람을 변화시킨다. 


2. 성례는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 그리고 우리 사이의 연합을 가리킨다.


성례는 복음의 가시적 표지다. 이게 무슨 뜻인가? 설명하겠다.


세례에서, 우리는 복음이 회개한 죄인의 물에 잠길 때 표현되는 것을 본다. 세례를 통해 그들의 죄는 “씻겨 나간다”(행 22:16). 세례는 이제 세례 받은 이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음을 선포한다(골 2:11-12; 참조. 롬 6:3-4).


성찬에서, 우리는 지역 교회가 한 몸으로서 떡과 잔을 함께 나눌 때 복음이 묘사되는 것을 본다(고전 10:16-17).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당신의 백성을 대신하여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몸을 기억하고, 또 새 언약을 세우기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를 기억하는 식사다. 


이러한 상징들은 추상적이지 않다. 이것들은 보이지 않는 진리, 곧 구원과 중생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가시적으로 보여 준다. 이런 까닭에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이런 상징을 주신 것이다. 성례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표상이 보이지 않는 실재와 일치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한다. 그렇다. 성례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성례는 또한 이미 변화된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다. 


세례를 받았을 때, 우리는 회개(행 2:38; 참조. 롬 6:3-4)와 중생 모두와 일체감을 느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게 되었음을 느낀 것이다(요 3:5-7, 롬 6:4).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께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헌신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후자의 헌신은 주의 만찬을 통해 구체화된다. 지역 교회는 이러한 주의 만찬의 자리에 함께 모여 주 예수의 죽음을 기억하고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고대한다(고전 11:23-26).


고린도전서 11장은 주의 만찬에 합당하게 참여하기 위해서는 자기점검이 필요하다고 분명하게 말한다(고전 11:28). 자기점검을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어떠한가? 그리고 동료 신자들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하신 일을 기억하고, 우리 삶을 하나님께 다시 헌신하라고 촉구한다. 이러한 자기점검은 우리를 회개로 이끈다. 변화는 성례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다시 말한다. 그렇다. 성례는 정말로 사람을 변화시킨다.


3. 성례에는 정말로 의미하는 바가 있다.


마지막으로, 성경이 성례에 대해 말하는 방식을 보면 성례가 정말로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하게 된다. 그의 첫 번째 편지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물은…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벧전 3:21; 참조. 롬 6:3-4, 골 2:11-12). 구원하는 것은 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하나님께 올리는 호소라는 점에 유의하라. 하지만 세례가 “구원”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조금 전 말한, 세례가 구원에 필요하지 않다는 점과 연관해서 그럼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결혼하는 부부에 비유할 수 있다. 남자와 여자가 그냥 모여서 사적인 상호 합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증인 앞에서 선서하는 공개 의식은 눈에 보이는 계약이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결혼식에서 남자와 여자는 공개 서약에 따라 남편과 아내로 선언된다. 마찬가지로 세례를 받을 때, 그 사람은 공개적으로 신앙고백을 하고, 교회는 그를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한다. 세례 받은 사람은 이제 새로운 삶,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충성을 시작한다. 이제 그는 새로운 사람들에 속한다.  


주의 만찬에 관해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 10:16-17, 참조. 요 6:53-58).


잔과 떡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 상징이다. 그러나 지역 교회의 성도들이 이 둘을 취할 때, 이 둘은 더 많은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 둘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친교를 나누고, 또 다른 성도와 친교를 나누는 수단이 된다. 그래서 바울은 나중에 “너희가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고전 10:21)라고 말한 것이다. 우리가 주의 만찬에 올바르게 참여할 때, 하나님과, 그리고 다른 이들과 진정한 교통(communion)이 이루어진다. 우리가 올바르게 참여하지 않을 때, 우리는 사실 다른 어떤 것과 교통하는 것이다. 


물론 세례를 위한 물, 성찬을 위한 떡 한 덩이, 포도주 한 잔에 신비한 같은 속성은 없다. 성경 말씀이 유익하다고 믿어야 하는 것처럼, 성례도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믿고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한다. 그렇다. 성례는 정말로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믿음이 먼저다. 



원제: Yes, The Ordinances Really Do Change People

출처: www.9marks.org

번역: 무제

우리가 주의 만찬에 올바르게 참여할 때, 하나님과, 그리고 다른 이들과 진정한 교통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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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iago Oliveira

티아고 올리베이라는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학생이며 Capitol Hill Baptist Church에 출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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