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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찰스 3세 대관식은 ‘성경적’이었는가?
by 이재훈2023-05-10

지난 5월 6일 영국 성공회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열린 찰스 3세 국왕 대관식을 방송으로 볼 수 있었다. 많은 나라의 지도자들이 축하 사절로 참석한 데서 그 정치적 위상을 엿볼 수 있었고, 대성당의 위엄과 행렬의 위용, 고색창연한 의복에서는 그 문화적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영국 국교회(성공회) 최고 성직자인 캔터베리 대주교가 대관식을 집례하는 모습에서는 황제의 대관식을 교회가 주관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무효가 되었던 중세 기독교 세계의 위상을 다시 보는 듯했다. 


대관식의 모든 순서는 성경 말씀들로 짜여 진행되었다. 민수기 6:24-26의 축복, 시편의 여러 찬송, 그리고 산상수훈의 주기도문이 잇달아 등장했다. 이렇게 많은 성경 구절이 인용되는 예식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국왕에게 바친 첫 선물도 성경이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총회장은 성경이 곧 국왕의 법이며 하나님의 오라클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모든 법 위에 둔다고 하였다. 대관식에서 국왕은 개인 기도를 통해 갈라디아서 5장과 잠언 3:17을 인용하였고, 자신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자가 되겠다고 하였다. 이 정도면 “성경적” 예식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과연 찰스 3세 국왕의 대관식은 성경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선뜻 그렇다고 하기엔 주저하게 되는, 생각해 봐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우리는 군주 제도에 대해서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이방 나라처럼 되고자 왕을 원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워 주시는 일련의 과정과 사울과 다윗 이후 이스라엘(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의 행적을 기록한 성경에서 우리는 인간 왕, 곧 왕정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왕이신 당신을 대신하려는 어떤 왕, 어떤 제도도 기뻐하지 않으신다. 


물론 현재의 영국 국왕은 절대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법의 제한 아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상징을 통해 발휘되는 문화적 영향력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과거 절대 군주의 정치적 권력만큼이나 현대 사회의 상징적, 문화적 영향력은 막강하다. 이번 찰스 3세 국왕의 대관식에는 과거 절대 왕정 시대의 유물들이 그대로 차용되었다. 새 지도자가 어떤 시대를 지향하는지는 그가 어떤 물건, 상징과 함께 등장하는지에서 엿볼 수 있다. 고대 왕정 시대와 대영제국 시대의 유물과 관습이 고스란히 재사용된 이번 대관식은 새로운 문화 권력자의 등장을 세계에 주입하려는 행사이기도 했다. 


둘째, 영국 교회의 오랜 전통을 그대로 가져온 이번 대관식이 강조한 것은 교회의 문화 자체였지 교회의 사명이 아니었다. 영국 성공회는 종교개혁으로 생겨난 개신교 전통의 교단이지만 오랫동안 전통문화를 지키는 것을 복음 안에서 갱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왔다. 교회가 그 전통만을 고집하게 될 때는 그 보존된 문화와 함께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게 된다. 대관식의 거의 모든 순서에 성경 말씀이 인용되었지만, 그것이 메시지, 곧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순서라기보다는 오랜 전통과 문화 예식으로서 주문처럼 낭독하는 것일 뿐이라면, 이는 성경을 이용한 문화 의식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이번 영국 국왕 대관식과 영국 사회의 반기독교 문화를 우리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국왕은 국민을 섬기는 자가 되겠다고 서약했지만, 자신이 섬겨야 하는 국민의 삶을 지배하는 반기독교적 흐름을 간과한다면 그가 약속한 섬김은 말뿐인 섬김이 될 것이다. 오늘의 영국은 어떤 사회인가? 동성혼이 법과 제도로 견고히 자리 잡은 나라이다. 신앙에 따라 동성혼을 반대한 시민이 처벌받는 나라이다. 많은 교회가 문을 닫고, 심지어 다른 종교의 사원이나 술집으로 팔려나가는 나라이다. 성경 말씀으로 가득 차 있는 국왕의 대관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들이 이 나라와 이 나라 교회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영국 국왕은, 대관식만 영국 성공회의 의식을 쫓아 치를 것이 아니라, 그 교회의 상징적 수장이라는 지위에 걸맞게 교회의 쇠퇴에 대한 책임 또한 짊어져야 마땅하다. 대관식에서 선서만 할 게 아니라, 영국이 반기독교 사회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결의와 실천을 보여야 한다. 이제 대관식을 마친 찰스 3세 국왕은 탈-기독교, 반-기독교 국가가 되어버린 영국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회복할 것인지를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의 대관식은 성경적이었다는 후대의 역사 평가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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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재훈

온누리교회 담임목사와 TGC코리아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다. 명지대학교, 합동신학대학원(M.Div.),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Th.M.),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D. Min. Candidate)에서 공부하였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 머물리라’(1, 2권) ‘선한 그리스도인을 찾습니다’ ‘영적 전쟁’ ‘나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