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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복음으로 나의 목회 시야를 밝힌 팀 켈러
by 이인호2023-05-25

기리며: 팀 켈러(1950-2023)

하나님은 왜 이 시대에 꼭 있어야 할 분을 일찍 데려가시는 걸까? 팀 켈러가 주님 곁으로 갔다는 소식은 내게 깊은 슬픔과 더불어 또 한 번 이런 질문을 남겼다. 칼빈은 55세에, 루터는 63세에, 하용조 목사님은 65세에, 옥한흠 목사님 72세에 주님 품으로 가셨다. 주님은 왜 그러셨을까? 그렇게 하심으로 그들을 우리 가슴속에 남겨두시려는 것은 아닐까? 그분들이 더 오래 사는 것보다,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때에 그들을 데려가심으로써 그가 남긴 소중한 유산을 우리가 가슴에 새기고, 그렇게 우리도 그들처럼 이 시대를 살아가라는 뜻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팀 켈러 목사님에게 깊은 빚을 진 나는 그분에게 받은 은혜를 나누지 않을 수 없다.


11년 전, 교회 건축을 마친 어느 날이다. 교회는 날로 부흥하는데, 마음속에 자유와 기쁨의 크기는 줄어들었다. 늘 긴장하고 좌우를 경계하며 살얼음판 걷듯 목회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왜 그랬을까? 개척부터 제자훈련과 중보기도, 강해설교에 집중하는 목회를 통해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훈련을 통해 그리스도를 닮은 은혜롭고 성숙한 평신도 동역자들이 배출되고, 그들의 헌신을 통해 교회는 날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헌신의 이면에는 공로 의식, 판단, 외식 같은 부정적인 요소들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었다. ‘이대로 또 다른 10년이 흐르고 나면 교회가 어떻게 될까?’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율법적, 전통적, 제도적 교회를 답습하게 되는 건 자명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 채 그저 연수가 오래되면 모든 교회가 겪는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이려니 달래도 보고 근심하고 탄식하던 그때, 팀 켈러를 알게 되었다.


당시 ‘큰숲 모임’이라는 목회자 주간 모임에서 본격적으로 팀 켈러를 공부하던 중 미국 CTC의 강사들을 초청하여 매년 두세 차례 집중 세미나를 치렀고, 그때 책을 통해서만 알던 그의 목회와 철학을 그의 제자들을 통해 보다 가까이 배우는 축복을 누렸다. 이후 CTC코리아가 설립되었다. 초대 이사장이 되어 팀 켈러를 초청할 기회를 얻었고 가까이서 그를 보고 배울 축복을 누렸다. 그는 참 아름답고 향기로운 분이었다. 그 후 미국에서 팀 켈러, 존 파이퍼 등이 설립한 TGC(복음연합운동)를 한국에 설립하는 일에 참여하며 팀 켈러를 중심으로 한 복음주의 지도자들에게서 시대를 통찰하는 메시지와 복음적 교회의 연합운동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복음은 모든 것을 바꾼다는 그의 확신을 배우는 기회였다. 이후 CTC코리아와 TGC코리아가 연합하여 사단법인 복음과도시를 설립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 교회의 복음적 연합을 꿈꾸며 개척운동과 갱신운동을 통해 특별히 다음세대가 복음 안에서 준비되도록 돕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우리의 걸음들을 얼마나 축복하고 계시는지 모른다. 이렇게 팀 켈러를 만나고 그와 길을 따라가며 사역한 지 11년이 흘렀다. 


팀 켈러, 나 자신을 보게 하였다


그를 통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먼저 나 자신을 변화시켰다. 내가 그렇게 고민하던 교회의 모습은 나의 내면의 투영이고, 내 설교와 목회의 반영이었다. 복음의 깨달음과 감동으로 개척에 뛰어들고 복음의 열정으로 달려왔지만, 정작 내 삶과 행동은 복음으로 형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성도들은 내 말보다 모습을 통해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복음과 종교 사이를 널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설교 속에 복음과 율법이 뒤섞여 있었다. 율법은 우리를 거룩의 길로 인도할 수 없고 단지 죄를 깨닫게 하여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몽학선생, 초등교사라고 가르치면서도, 정작 나는 설교를 통해 그들을 그리스도보다 그들 자신의 각오와 결단의 길로 인도하고 있었다. 감동적인 간증과 예화, 때로는 과감하게 나의 실패를 나누는 솔직함으로 쉼 없이 그들을 변화시키려고 애썼다. 은혜의 힘을 믿기보다 도전과 결단의 힘을 더 믿었다. 압박을 통해 마음과 생각, 행동과 윤리의식을 바꾸려 했다. 은혜의 복음으로 완전히 연소되지 못한 나의 설교, 나의 인격, 나의 목회가 점점 교회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래도 교회를 건축하고, 대형 교회를 세우면 하나님 나라가 오는 줄 알았다. 한국 교회의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는 줄 모르고, 오직 내가 목회하는 우리 교회만 성장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팀 켈러는 이런 나의 생각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편협한 시각인지 알려주었다.


감사하게도 팀 켈러는 나의 고민을 마치 그가 먼저 고민한 것처럼, 건강한 신학적 깊이와 체계적인 가르침으로 자상하게 깨달음을 주었다. 무엇보다 ‘어떻게 복음으로 삶과 교회를 형성할 것인가’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나의 뿌옇던 목회 시야를 환하게 열어 주었다.


팀 켈러, 나와 교회를 행복하게 바꾸었다 


그는 나 자신을 바꾸고 내 설교를 바꾸고, 그래서 우리 교회를 더 행복하게 바꾸어주었다. 먼저, 내 설교가 바뀌었다. 결단에 초점을 두었던 설교가 이제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설교가 되었다. 어느 날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전에는 당신 설교를 들으면 각성과 결단을 하게 되었는데, 요즘은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고 은혜를 사모하게 돼요.” 내 설교가 정말 변하고 있었다.


어느 성도의 간증은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매주 설교를 통해 내가 말씀대로 살아야겠다는 무거움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라면 말씀대로 살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 왔습니다. 그리고 나를 변화시킨 복음을 한 영혼, 한 영혼에게 전해야겠다는 이전에 없던 강한 열망이 마음 가운데 생겼습니다.”


매주 설교를 통해서 구원받음과 삶의 변화를 경험한 생생한 간증들이 풍성해졌다. 교회에 첫발을 들이고 예수님을 만난 감격의 간증들,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복음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심령에 변화를 경험한 간증들이 많아졌다.


목회자의 가정에서 자란 어느 집사님은 자신이 지금까지 알던 예수님과 복음 안에서 만난 예수님이 너무 다르다고 눈물로 고백했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메시지가 선포되고 성령님이 살아 일하시는 교회를 통해 복음의 은혜가 제 삶에 흐르니 예수님을 너무 사랑하게 되고, 이로 인해 자녀와의 관계, 시부모님과의 관계, 남편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몇 년이 제 인생 중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다른 훈련생들도 최근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입을 모아 같은 고백을 하는 모습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성도들을 변화시키려고 소리치며 온갖 감동적인 예화로 울리고 웃길 때는 나타나지 않던 변화가, 복음을 설교하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자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설교가 변하면서 교회가 복음 안에서 세워져 가기 시작했다. 복음이, 한번 공부하고 이수하면 끝인 무엇이 아니라, 매일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기초요 삶의 원리로 교회 안에서 자리 잡았다.


둘째, 교회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마디로, 자유와 사랑이다. 교회 안에 이전보다 더 부드럽고 은혜로우며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무엇보다 성도들은 목사인 나에게 부드러워졌다고 말한다. 그들을 변화시키려 했던 이전과는 달리, 그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포용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먼저 변하려고 애쓰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를 용납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니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다. 평신도 지도자들, 특별히 장로들과의 관계가 더 친밀해졌다. 당회도, 교역자 모임도 복음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이러한 은혜는 우리 안에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섬김을 가져왔다. 봉사의 동기가 바뀐 것이다.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사랑으로 섬기니 기쁨이 넘쳤다. 또한 복음은 우리가 점점 죄에서 떠나 거룩한 삶을 사모할 수 있게 하였다. 팀 켈러는 ‘칭의’의 은혜를 끊임없이 인식할 때 거룩한 삶(성화)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께 다가갈수록 자신의 죄를 보게 되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을 주인 삼은 우리 자신의 우상을 보게 된다. 성도들이 죄 이면의 죄인 우상을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죄의 문제를 더 근본적으로 인식하고 극복할 힘과 능력을 얻기 위해 복음을 더 의지하는 모습들이 나타났다. 복음의 은혜와 능력을 알게 되니, 공동체 안에 서로의 죄, 우상을 고백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가 되었다.


세 번째, 지역 사회와 소통하려고 애쓰는 교회가 되어 가고 있다. 10년 정도 지나면서 우리는 어느덧 악한 세상과 담을 쌓고 우리끼리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수도원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이런 우리에게 팀 켈러는 도시는 우리가 멀리해야 할 죄악의 도성이 아니라 구속받아야 할 곳임을 알게 하였다. 하나님은 도시로 사람들을 모으고 계시며, 이 도시가 영향력의 중심부이고 문화의 중심부임을 알게 되었다. 바울이 도시를 중심으로 선교한 것처럼, 교회가 도시와 문화적으로 소통하며 그들을 사랑하고, 도시 안에 복음적 생태계를 이루어 도시를 구속하여야 함을 깨달았다. 그는 도시 안에서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팀 켈러는 가장 세속적이고 세계에서 변화 속도가 가장 빠르다는 ‘뉴욕’에서 목회를 해왔다. 그들과 교감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그는 매주 뉴요커들을 만나고, 그들을 이해하며, 설교에도 생각의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단어와 문장이 아니라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익숙한 단어를 사용했다. 그의 모습은 나의 설교와 우리 교회의 관심사를 변화시켰다. 아직 부족하지만, 비신자들이 늘 거기에 있는 것처럼 설교하려고 노력한다. 우리 교회가 위치한 도시와 소통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교회의 문턱이 낮아지며 지역사회와 하나가 되는 모습이 많아진다. 보수적이던 성도들이 이 시대의 문화를 이해하고 포용하며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는 자연스러운 문화가 형성되었다.


팀 켈러, 내 시야를 넓혀 주었다 


우리 교회만 잘 성장하면 지상명령은 이루어지는 줄 알고 달려왔다. 그런 내게 팀 켈러는 교회 개척이 지상명령 성취의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며, 목회자 양성은 신학교가 아닌 지역교회의 몫임을 알려주었다. 성도들과 함께 분립개척의 비전을 품게 되었다. 장로들과 함께 우리 교회가 홀로 거목이 되기보다 앞으로 수십, 수백 교회를 분립개척하는 교회가 되기로 했다. 이러한 방향을 정하고 지난 10년 동안 네 교회를 분립개척하였고, 내년에는 다섯 번째 분립을 진행할 예정이다. 내가 은퇴할 때까지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교회를 분립개척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교회의 DNA가 되어 계속되길 소망한다.


팀 켈러는 우리로 도시 안에 복음적 생태계의 수립을 꿈꾸게 해주었다. 크고 작은 교회들이 복음 안에서 연합하여 함께 성장하고 함께 사역하며, 도시가 우리를 통해서 유익을 얻길 소망한다. 이와 같은 생각을 품은 많은 목사님을 만나게 하시고 함께 복음을 위해서 연합하게 된 것 또한 팀 켈러가 우리에게 전해준 축복이다. 초대형교회의 목회자들과 중소형교회의 목회자들이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어 교제하며 꿈꾸고 있다. 이런 연합이 어디에 또 있을까! 이것이 복음이 이루어내는 기적이다. 그분들과 연합하여 분립개척의 기회가 없는 목사님들이 개척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재정을 후원하는 사역을 펼쳐가고 있다. 한국 교회의 갱신과 연합을 위해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다. 주님께서 친히 일하고 계심을 날마다 경험한다. 


글을 맺으며


나의 삶에 두 가지 큰 만남이 있다면, 첫째는 고 옥한흠 목사님이다. 그분을 통해 건강한 제자훈련 목회를 배웠다. 그 가르침대로 했더니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했다. 그래서 늘 고맙고 감사한 분이다. 둘째는 팀 켈러 목사님이다. 그분은 고 옥한흠 목사님처럼 그 죽음이 내게 깊은 슬픔과 눈물을 남긴 또 한 분이다. 그분은 복음과 종교 사이를 널뛰던 내게 복음적 목회의 확신을 전해주었다. 내 교회만 생각하던 내게 분립개척을 생각하고 하였고, 한국 교회 생태계회복을 꿈꾸게 하였다. 내가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목회하게 해주었고, 우리 교회가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었다. 


팀 켈러, 예수님을 닮으신 귀한 분, 한국에 다시 한번 꼭 오고 싶다고 하셨던 그분은 이렇게 그를 사랑하는 우리의 가슴속으로 찾아오셨다. 우리 시대에 이러한 영적 거인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그분을 만나 귀한 축복을 받을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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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인호

이인호 목사는 더사랑의교회 담임목사로 건국대 영문학과를 거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과 풀러신학교(D.Min.)를 졸업하고, 현재 (사)복음과도시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기도하면 살아난다’, ‘버려진 게 아니라 뿌려진 것이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기도의 전성기를 경험하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