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영성의 세계
by 이춘성2023-09-26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주일이다. 난 오전 9시에 시작하는 2부 예배를 드리고 아이들의 교회학교가 끝나는 시간까지 기다리기 위해 근처 한 카페에 와 있다. 카페 2층에는 몇몇 무리가 모여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엄마, 잠시 커피 마시고 있는 아저씨, 컴퓨터로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는 중고생들, 그리고 직장인들로 보이는 젊은 남녀 여럿이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귀를 기울이고 이들의 대화에 집중해 보았다. 이들은 어떤 외국인 저자의 소설책을 가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로의 생각을 묻고, 자기 경험을 나누면서, 위로의 말과 격려의 감정을 주고받고 있었다. 때로는 누군가를 같이 욕해주면서 웃고 울면서 지친 일상을 달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이들의 입에서 익숙한 단어가 나왔다. ‘설교.’ 어떤 사람이 직장 상사나 주변의 꼰대 같은 사람의 잔소리가 꼭 설교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그렇다고 공감하였다. 공교롭게도 지금 옆 건물에는 내가 다니는 교회 3부(오전 11시) 예배에서 목사님이 설교하고 계셨다. 옆 건물에서는 설교가 행해지고, 여기에서는 설교를 자기 삶에는 아주 쓸데없는 잔소리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고 서로 공감해 주면서 힘을 얻고 있었다. 이들의 모임은 마치 예배 같았다. 이들이 읽고 나누고 있는 소설책은 성경이나 신앙 서적 같았고, 이들이 이 책을 해석해서 자기 경험을 말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은 또 다른 형태의 설교 같았다. 그렇다면 이들이 모인 카페는 이들의 예배당이며, 먹고 마시는 음료와 빵은 성찬일까?


작년 초 불교계에서는 한국의 4대 종교(개신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의 연구자들을 모아 포럼을 열었다. 이 연구는 각각의 종교학자들이 약 2년 이상 모여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 모인 종교학자들은 한목소리로 코로나19 이후의 가장 주목 받을 종교는 불교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올해 1월에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에서 실시한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신앙의식 조사’에서 사실로 밝혀졌다. 직전 2017년 조사에 의하면 종교 인구 비율이 개신교가 1위(20.3%)였는데, 5년이 지난 이번 조사에서는 5퍼센트 가까이 떨어져 15.0퍼센트가 되어 불교가 1위(16.3%)가 된 것이다. 또한 무종교인의 호감도는 불교가 29.5퍼센트, 개신교는 4.7퍼센트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를 보였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무종교인의 급격한 증가세다. 종교인의 비율이 2017년 조사보다 10퍼센트나 줄어 역대 최저치인 36.6퍼센트로 주저앉았다. 무종교인이 60퍼센트가 넘은 것이다. 그리고 무종교인의 약 3분의 1이 과거에 종교인이었으며, 그중의 3분의 2가 개신교인이었다. 이 조사의 결과는 여러 시사점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기성 종교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위 마음 수행 종교의 특성을 가진 불교는 이를 이들의 새로운 기회로 포착하고 템플스테이나 개인화된 영성을 추구할 수 있는 명상 등의 프로그램을 더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러한 탈 기성 종교 현상에 대해서 그 원인을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종교 모임 때문이라고 평가하면서, 대면 모임이 활성화되면 곧 회복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코로나의 영향이 있었던 것이 분명한 사실이지만, 지금 일어나는 탈 기성 종교 현상은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있는 한국 사회의 세속화 현상이었다는 것이 대부분 종교학자의 분석이다. 한국 사회의 세속화로 인하여 기성 종교의 공적 영향력이 감소하고, 종교가 더욱 개인화되면서, 모임의 형태에서도 종교가 기관이나 제도화된 집단이 아닌 개인화된 영성의 형태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와 그 기간은 이를 더욱 가속하는 계기였을 뿐이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성해영 교수는 2016년 어느 모임에서 “종교를 넘어선 종교와 새로운 영성”이란 제목의 주제 발표를 하였다. 이듬해 그는 이 발표문을 “무종교의 종교 개념과 새로운 종교성”이란 논문으로 발전시켰다. 성해영 교수는 이 발표문과 논문에서 한국 사회에서 출현한 ‘세속적 신비주의’에 대해서 주목하였다. 이는 ‘종교적 신비주의’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기성 종교에서 경험하는 종교적 체험을 종교 활동이 아닌 여러 다른 방식과 활동을 통해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약물이나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는 것을 통해서도 예배 시간에 경험한 감동과 신비적 체험을 동일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약물이나 뇌 자극과 같은 방법은 실험실에서나 있을 법한, 위험한 일이기에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은 다른 사회적 움직임과 결합하여 뜻밖의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그것이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Spiritual But Not Religious/SBNR)이라는 형태의 새로운 영성의 출현이었다. 


이 표현은 2000년에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얼랜스(Sven Erlandson)가 그의 책 제목으로 처음 사용하였고, 다음 해인 2001년에 로버트 풀러(Robert C. Fuller)가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교회 밖으로 나간 미국 이해하기”(Spiritual, but not Religious: Understanding unchurched America)라는 책을 통해 학문적으로 더 자세히 다루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 두 저자의 주장은 미국의 종교인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제도적 교회 밖에서 영적인 갈망을 채우려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였고, 이 현상은 종교적(Religious)이란 단어보다는 영적(Spiritual)이란 단어로 포착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인은 영성(Spirituality)이란 단어를 교회라는 공동체적인 의미보다는 제도나 공동체 밖의 개인 영역을 더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달리 말해 공동체와 제도를 떠올리는 종교와 연관된 것이 교리, 전통이라면, 개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성과 연관된 것은 개인의 체험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단월드’ ‘마음 수련’ ‘선 수행’ ‘요가’ ‘템플스테이’ ‘타로 카페’ 등의 다양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교회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고 있는 ‘가나안 성도’ 현상도 SBNR 영성의 흐름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교회에 대한 윤리적 실망 때문에 신자들이 교회를 이탈하는 탈 교회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종교의 공적인 역할과 영역을 사적인 역할과 개인의 영역으로 축소한 세속화 영향으로 인하여, 현대인의 종교에 대한 역할과 인식에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이유는 이전의 종교가 제공했던 신비적 체험에 대한 개인적 필요가 여전히 존재하며,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등장한 SBNR식의 영성이 종교를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교회가 SBNR 영성에 대해서 시급하게 성찰해야 할 점을 하나 언급하고 이 글을 마치려 한다. 그것은 우리가 설교 시간이나 신앙 상담 중에 하물며 신학교의 강의실에서 목사와 신학자들이 쓰는 ‘영성’이란 말을 성도들과 신학생들은 전혀 다른 맥락과 의미로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 교회가 처한 여러 위기 중 하나는 기독교 신앙과 믿음의 내용, 교리와 신앙 지식, 예배와 삶의 전통을 신자 개인의 신비적 체험과 깊숙하게 잇지 못하고 이것들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세속의 흐름 속에서 개인화된 영성, 세속적인 영성이 아닌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통합되고 신비와 합리성이 결합한 진정한 기독교 영성을 회복하는 길을 찾는 것, 이것이 현대 교회의 또 다른 과제이다. 


다음에는 ‘세속적 신비주의’에 대해서 더 깊숙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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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춘성

이춘성 목사는 20-30대 대부분을 한국 라브리(L'Abri) 간사와 국제 라브리 회원으로 공동체를 찾은 손님들을 대접하는 환대 사역과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쳤다. 현재 분당우리교회 협동목사, 한국기독교윤리연구원(KICE) 사무국장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