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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도 우상이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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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고상섭  /  작성일 2020-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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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Frank Nürnberger from Pixabay

정치가 하나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으면 하나님이 아니라 정치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그러면 어느 한쪽 정당을 절대 선으로 어느 한쪽 정당을 절대 악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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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는, 고대의 우상숭배란 머리에 뿔 달린 악마에게 경배하는 것 또는 신상에게 절하는 것이었지만 오늘날의 우상숭배는 다른 형태로 찾아온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우상이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대개의 경우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좋은 것이 한층 더 좋아질수록 우리 내면 깊숙한 곳의 욕구와 희망이 충족되리라는 기대감을 더욱 부풀리게 된다. 무엇이든지 특히 삶에서 가장 좋은 것이야말로 짝퉁 하나님, 혹은 거짓 신이 될 수 있다. 결국 우상이란 무엇인가?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 당신의 마음과 공상의 세계를 하나님보다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 하나님만이 줄 수 있는 것을 주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상이다.” (거짓 신들의 세상, 25쪽)


정치가 우상이 될 수 있다


그런 우상의 종류 중에 현대에 자주 대두되는 것이 바로 이념과 정치다. 특히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유념해야 될 부분이 바로 정치적 발언과 정치에 대한 관심이 우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방탕한 선지자’에서 요나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보다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이 더 많은 사람이었다. 뱃사람들이 요나에게 “네가 어디서 왔으며, 네 나라가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라는 질문에 요나는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라고 대답한다. 질문에는 민족에 대한 질문이 세 번째 질문이지만, 요나는 ‘히브리 민족’임을 첫 번째로 대답한다. 


“요나는 자신의 민족을 가장 먼저 밝히고 그 다음에 종교를 밝혔으니, 그가 속한 민족이 그의 자기 정체성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추론할 수 있다.”(방탕한 선지자, 71쪽)


C. 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모성애와 애국심 같은 충동은 선한 것이고 반대로 성욕이나 투쟁 본능 같은 것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수다. … 결혼한 남자나 군인처럼 의무적으로 성적충동을 북돋우거나 싸우려는 충동을 북돋워야 하는 상황도 있다. 또 자녀를 향한 모성애나 조국을 향한 사랑을 억누르지 않으면 다른 이들의 자녀나 나라에 대해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모성애, 애국심은 좋고 선한 것이지만 이것이 하나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을 때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치가 우상이 된 증거


정치가 하나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으면 하나님이 아니라 정치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그러면 어느 한쪽 정당을 절대 선으로 어느 한쪽 정당을 절대 악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생긴다.


정치가 우상이 되면 나와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단순히 생각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사악한 사람으로 간주해버린다. 또한 자신들의 학파나 당파가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완벽한 해답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이런 사고는 기독교 교리를 전면 거부하는 사상으로 결국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한때 공산주의를 신봉했던 사람들은, 악이란 환경의 부산물이므로 환경을 개선하거나 제거하여 악을 없앨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비참했다. 기독교가 말하는 원죄의 교리와 반대되는 이론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과 정치의 바른 관계


팀 켈러는 ‘방탕한 선지자’에서 그리스도인들과 정치의 바른 관계에 대해 이야기 했다.


첫째, 교회와 정치를 분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공동선 또는 공공선을 위해 일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정치를 초월해서 복음만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 정치적으로 되지 않으려는 선택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정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이미 피력한 것이기 때문이다. 19세기 미국교회는 정치적으로 되지 않기 위해 노예제도에 침묵하기도 했다.


둘째, 개별 그리스도인은 정치에 참여해야 마땅하지만, 교회 자체가 하나의 정당을 유일한 기독교 정당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만약 목회자가 강대상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게 되면, 사람들은 회심을 하려면 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특정 정당의 지지자가 되어야 할 것 같은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또한 정치의 문제는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 지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교회가 정치적 현실에 대해 발언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명확한 것에 대해서는 교회의 이름으로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


예를 들어 인종차별, 가난한자를 학대하는 것 등의 분명한 도덕적 명령을 위반하는 행태에 대해서는 분명한 반대의사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특정한 그리스도인 집단이 도덕적 이상을 구체적인 사회 안에서 정확히 어떻게 추구하는 것이 최선일지에 대한 생각은 성경의 원리를 넘어 지혜와 분별의 영역일 때가 많다. 정부를 축소하는 것이 좋은지, 확대하는 것이 좋은지, 자본을 시장에 맡기는 것이 좋은지, 정부가 주도권을 가지는 것이 좋은지 등에 대한 내용은 성경에 명확히 제시된 영역이 아니다. 최고의 사회 정책들은 이 양극단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성경은 모든 시간, 장소, 문화에 딱 들어맞는 그 지점을 정해주지는 않는다.


또 교회가 특정 정당과 연계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윤리적 일괄 거래’(Ethical Package Deals) 때문이다. 현대의 정당은 모든 사안에서 적절한 입장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공식 입장을 전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한 가지 사안에 대해서 입장을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 정당의 정책이 좋다고 말하게 되면 그 하나의 정책이 좋은 것이 아니라 그 정당의 모든 정책을 다 좋아하는 것처럼 청중들은 느끼게 된다. 이것이 교회가 가지는 딜레마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있다고 할 때, 성경의 기준으로 보면 두 정당 모두의 정책 중에는 지지하는 정책과 지지할 수 없는 정책이 섞여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한 사람을 섬기고, 노동자들이 대우받는 사회를 원하지만 동시에 결혼 전에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다. 그러나 노동자와 억울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은 진보적으로 보이지만, 결혼 안에서만 성적인 관계를 허용하는 입장은 보수적으로 보인다. 이렇게 사회 문제에 대해 그리스도인의 입장은 현대의 정치적 지형과는 100 퍼센트 들어맞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한쪽의 선택지로 몰리게 된다. 어느 한쪽의 정책이 성경과 맞지 않다고 해서 그 정당의 모든 정책이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이 아니다. 동일하게 어느 한쪽 정책이 성경과 일치한다고 해서 모든 정당의 정책이 성경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팀 켈러는 리디머교회의 교인들에게도 개별적으로 정당에 참여하여 정치활동을 하라고 권면한다. 그러나 모든 정당의 정책을 다 받아들이지 말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공공선을 위해 노력하라고 말한다.


아브라함 카이퍼도 ‘제도적 교회’와 ‘유기적 교회’를 구분하면서 제도적 교회로서의 사명은 말씀과 성례를 시행하고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고 제자를 삼는 것이지만, 유기적 교회로서의 사명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복음을 살아내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면 정치와 상관없는 이원론으로 세상의 죄악에 방관하든지, 이와 대조적으로 정치에 너무 깊이 관여하여 아주 세세한 정치적 사안까지 위압적으로 입김을 불어넣으며 심지어 입법 활동까지 하려는 모습을 보일 수가 있다.


교회는 정치 집단이 아니다. 교회를 통해 힘의 방식으로 세상이 변화되는 것도 아니다. 목회자 개인이 어느 정당의 지지자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정책의 지지자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도 지혜와 분별이 필요하다. 복음보다 정당의 지지가 우상이 되면 우리가 복음을 선포할 때 한쪽 지지자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할지도 모른다. 정치는 중요한 영역이지만, 정치가 우상이 되지 않도록 균형이 필요한 시기다.

복음보다 정당의 지지가 우상이 되면 우리가 복음을 선포할 때 한쪽 지지자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할지도 모른다. 정치는 중요한 영역이지만, 정치가 우상이 되지 않도록 균형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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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고상섭

고상섭 목사는 영남신학대학교와 합동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그 사랑교회'를 개척해 섬기고 있다. ‘팀 켈러 연구가’로 알려져 있으며 CTC코리아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최근 공저한 ‘팀 켈러를 읽는 중입니다’ 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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