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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적응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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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김돈영  /  작성일 2020-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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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MikesPhotos from Pixabay

함께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모이기를 힘쓰는 데 제동이 걸렸다. 예배하고 식사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그뿐 아니다. 성도의 교제와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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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환경


‘아차’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난다. 동네 마트를 향하다가 마스크를 쓰지 않아서 집으로 되돌아갔던 일이 몇 번인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마스크를 써 본 일이 없다. 내가 마스크를 쓰는 것은 낯설고 새로운 일이며, 번거로운 일이다. 반복되는 실수에 급기야 현관문에 ‘마스크’라고 크게 써 붙였다.


몇 달이 지난 지금, 요즘은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다. 집을 나설 때 열쇠와 지갑을 챙기듯이 마스크를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렇게 낯설고 불편하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던 일이 계속 반복되면서 몸에 밴 것이다. 거리에나 식당, 영화관, 마트 등 모든 공간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볼 때면, 원래부터 마스크를 쓰고 생활했던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한다. 변했다. 환경에 ‘적응’한 것이다.


전망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개인의 일상뿐만 아니라 사회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함께 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모이기를 힘쓰는 데 제동이 걸렸다. 예배드리고 식사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그뿐 아니다. 성도의 교제와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 될 것인가? 어려운 상황이 빨리 끝나기를 고대하며 다양한 전망을 이야기하고 의견을 내놓는다. ‘포스트 코로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회, 과학, 의학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현재 상황과 향후 벌어질 일을 생각하고 전망한다. 이런 정보와 전망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전망을 한다. 어떻게 예배할 것인가, 어떻게 성경을 교육하고 다음 세대를 양육할 것인가, 어떻게 성도와 교제할 것인가 등 많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런 전망과 대안을 듣다 보면 불편한 마음이 느껴진다. 대부분의 방안은 온라인, 영상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중요한 대안이고, 중요한 방안이다. 그러나 ‘포스트 코로나’ 혹은 ‘위드 코로나’의 정답이 온라인만은 아닐 것이다.


시작은 비슷하다


오랜 시간 함께 직장 사역을 했던 분 중 비슷한 시기에 개척한 두 교회가 있다. 두 곳 모두 직원들이 교인이 되어 개척한 곳이다. 성도의 대부분은 직장과 연관된 사람들로 이전에 신앙생활을 해본 경험이 없는 이들이었다. 그야말로 맨땅에서 처음부터 시작하는 교회인 셈이다.


두 교회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한 곳은 최대한 성도를 배려하고자 했다. 매일 직장에서 보고 주일에도 봐야 하니 예배 외에는 최대한 부담을 주지 말자는 것이었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교회 청소와 봉사, 식사까지도 외부의 사람을 썼다. 매주 식당에서 배달한 음식을 먹고, 짧게 설교하려고 애썼다. 주보를 만들거나 안내하는 것, 예배당 정리하는 것도 혼자서 직접 했다. 예배시간 외에 어떤 모임도 만들지 않았다. 대다수가 처음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니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었다.


반면에 다른 곳은 매일 직장에서 보지만 교회는 또 다른 공동체라고 생각했다. 처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기에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소와 봉사, 식사 준비 등 역할을 나누고 그에 맞는 역할을 하도록 했다. 주일에는 강해 설교와 성경공부 시간을 가졌고 필요에 따라 주중에 모이는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적응’한다


3년 정도 지났을 때, 두 곳은 분명하게 달라져 있었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었다. 공통점은 두 곳 모두 교회 공동체를 떠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열정적으로 처음에 동참했던 사람의 절반 정도가 떠난 것 같다. 물론 나간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고 새롭게 들어온 사람도 있어서 전체 수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 떠나간 이유도 분명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무언가 불만이 있거나 본인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너무 할 일이 없어서 나갔거나 반대로 맡겨진 일이 부담스러워서 나갔을 것이다.


반면에 분명한 차이가 눈에 보였다. 배려를 많이 했던 곳은 3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예배의 순서를 맡은 사람조차도 예배에 늦거나 고의로 빠지기도 했다. 여전히 봉사하는 사람은 없다. 식당에서 배달해오는 밥을 먹은 후 삼삼오오 모여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거나, 각자 갈 길로 흩어지기 바쁘다. 식사 후 그릇을 정리하는 일을 돌아가면서 하도록 했지만, 하는 이가 없다. 남은 뒤처리는 오롯이 교역자의 몫이다. 예배와 봉사를 위한 담당자가 정해져 있으나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붙잡아 놓고 교육을 하거나 강요하지 못한다. 부담스러워 할까, 혹시 교회를 떠나지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아니 교회 생활은 다 이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곳은 제법 조직적인 모습이었다. 예배를 준비하는 사람,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예배당 청소를 하는 사람까지 각자가 맡은 역할을 감당했다. 예배 후에는 성경공부 모임이나 다른 소모임을 갖기도 했다. 물론 리더로 세워진 몇몇 사람이 주도해서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다른 이들도 자연스럽게 동참하는 것을 보면 크게 거부감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평일에는 리더 모임과 소그룹 성경공부 모임도 진행된다고 한다. 이들도 교회 생활은 다 이렇다고 생각하고 있다.


작은 차이 큰 변화


두 곳 모두 처음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로 시작했다. 3년이 지난 후, 그들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한쪽은 리더로서 활동하고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쪽은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이 보살펴야 하고, 혹시 떠나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들이 가진 내면의 신앙은 어떤지 알 수 없으니 뭐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모습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두 곳을 언급하는 것은 어느 쪽이 바람직한 목회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적응’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두 목회자의 출발은 비슷했다. 바르게 목회하는 것을 소망했고, 처음 믿는 성도들이 든든한 신앙인으로 서기를 바랐다. 여느 목회자와 같이 성도들을 사랑했다. 다만 표현하는 방식이 조금 달랐고, 중요하게 여기는 바가 조금 달랐을 뿐이다. 성도를 생각하고 위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이다.


처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잘 적응하고 바른 믿음을 갖도록 ‘배려’한 것이다. 처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잘 적응하고 바른 믿음을 갖도록 ‘교육’한 것이다.


적응하더라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같은 말을 한다. 사람들이 ‘적응하더라’고 말이다. 신앙생활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느 쪽이든 처음 경험하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새롭고 낯선 일이라는 것이다. 매 주일 예배에 나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예배에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잡음이 있었다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적응하면서 태도가 달라졌다고 한다. 새로운 것이 몸에 익숙해지면서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배려가 어색하지만 편해서 좋다고 여겼다. 하지만 익숙해지니 당연한 것이 되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봉사를 하는 것이 불편했지만 익숙하고 적응하니 당연한 것이 된 것이다.


우리가 ‘포스트 코로나’를 말할 때 이러한 모습을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새로운 상황에 어떤 방법 혹은 어떤 절차를 내놓아도 결국 그것을 접하는 이들에게는 새롭다는 것이다. 그리고 적응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쉬운 일도 시간이 지나면 적응이 되고, 좀 더 복잡한 일도 적응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무엇을 고려해야 하겠는가? 목회자로서 무엇을 생각하며 코로나 시대의 대안을 마련해야 하겠는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겠는가? 그 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 바로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이다. 말씀을 따르는 것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적당히 섞어 놓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편의성, 접근성, 다양성, 재미와 감동 등이 가장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말이다. 오직 성경, 바른 신앙을 갖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정상인듯 비정상인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 정상인듯 그러나 비정상적인 상황에 있다. 예배와 찬양을 마음껏 하기 힘들고, 침을 튀기며 큰 소리로 부르짖던 기도시간이 그립다. 예배 후 삼삼오오 모여 밥을 먹으며 수다 떨던 시간과 오랜만에 만난 성도를 꼭 안아주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러나 이러한 비정상적인 시간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모일 수 없어서 영상으로 예배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은 흐려졌다. 빨리 끝나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고민한다. 그것에 적응하고 있다. 주일 시간이 많이 남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정상적인 시간이 정상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럴 때 ‘포스트 코로나’를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점검해야만 하는 것이다.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니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온라인 예배’, ‘온라인 성경공부’, ‘온라인 수련회’ 등 지금 상황에서는 좋은 대안이다. 그러나 ‘온라인 성찬’, ‘온라인 세례’, ‘온라인 교회’ 등 점차 확장된 개념으로 시도하는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정말로 그것이 바른 것인지, 최상의 방법인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교제하며, 우리의 믿음을 지키고, 성장하도록 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방법인지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만일 바르지 않은 것이라면 버려야 한다. 포기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조금도 아쉬워하지 말고 돌아보지도 말아야 한다. 번거롭고 불편한 것, 비효율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께 올바르게 예배하고, 말씀대로 사는 방법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택해야만 한다.


비정상적인 시간을 보내며 힘들어하는 성도들이 많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더 많이 아껴주고 싶은 마음에 배려하고, 조금 더 쉽게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그래서 쉬운 방법을 제시하겠는가?


바르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 그것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포스트 코로나’는 ‘온라인’이라는 천편일률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쉽지 않더라도, 불편하더라도, 혹여 돌아가서 시간이 걸릴지라도 바른 것을 찾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모습, 누구나 성경을 읽고, 성직자가 아닌 그리스도께 고백하고, 가운을 벗고 설교단에 서는 일 등은 그것이 바른 신앙이라고 확신했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가는 길을 버리고 바른 것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했다. 아니 목숨까지도 내놓고 대항해서 변화시킨 것이다. 동굴로 들어가는 것이 바른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이라고 여겼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오늘 우리가 있는 것이다.


거창하게 개혁이라는 이름을 달기보다는 내게 맡겨주신 곳에서부터 고민해보자. 전해 들은 것을 어떻게 바르게 전달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이 바른 것인지 말이다. 목숨을 거는 것은 아니더라도 불편하고 번거로울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무엇을 하든 결국 적응할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변화는 생길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방식’이 아닌 ‘방향’을, ‘형식’이 아닌 ‘본질’을 고민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모습, 누구나 성경을 읽고, 성직자가 아닌 그리스도께 고백하고, 가운을 벗고 설교단에 서는 일 등은 그것이 바른 신앙이라고 확신했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가는 길을 버리고 바른 것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했다. 아니 목숨까지도 내놓고 대항해서 변화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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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돈영

김돈영 목사는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CTS라디오조이 ‘찬양의자리’ 진행자와 BASE성경교육원 공동대표로 섬기고 있다. ‘직장선교아카데미’와 ‘군세움프로젝트’를 통해 성경을 강의하며, 다양한 집필 활동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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