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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매일 큐티

말씀 QT_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거룩한 분노를 발하다
2020-10-01

사무엘하 1장 1-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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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쳐죽이고 돌아와 다윗이 시글락에서 이틀을 머물더니
2. 사흘째 되는 날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영에서 나왔는데 그의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그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3. 다윗이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 왔느냐 하니 대답하되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하니라
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너는 내게 말하라 그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가운데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5. 다윗이 자기에게 알리는 청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6. 그에게 알리는 청년이 이르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가 보니 사울이 자기 창에 기대고 병거와 기병은 그를 급히 따르는데
7. 사울이 뒤로 돌아 나를 보고 부르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
8.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그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9. 또 내게 이르시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 중에 있나니 청하건대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10. 그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의 곁에 서서 죽이고 그의 머리에 있는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하니라
11.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12.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13. 다윗이 그 소식을 전한 청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15. 다윗이 청년 중 한 사람을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그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16. 다윗이 그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언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전환의 국면 속에서 발견된 거짓과 갈등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역사의 국면이 전환되고 주인공이 바뀌었다. 사무엘상 마지막 장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 왕과 그 아들들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사울왕은 사라졌다. 새로운 국면에서 주인공이 된 다윗은 또 다른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그들의 거처였던 시글락에 머물고 있다(1절).


물론 히브리 성경은 열왕기서와 사무엘서를 한 권으로 보기에 이런 구분이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제 다윗을 핍박하던 사울이 죽음으로 그가 역사의 전면부에 서게 된 것은 확연해진다. 우리는 모든 역사의 흐름이 사람의 직급과 능력 여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2절~10절을 보면 아말렉의 한 청년이 등장한다. 그는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사울의 왕관과 팔 고리를 다윗에게 전한다. 스스로 자신을 아말렉 사람이라고 밝힌 것을 제외하고, 그가 전하는 소식에는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 먼저, 그가 우연히 올라간 길보아산에서 적의 병거와 기병이 급히 따르는 와중에(6절) 사울 왕이 그를 불러 자신을 죽여 달라고 했다는 점이다. 사울이 그 급박한 상황 속에서 군대와 상관없는 일개 청년에게 죽음을 갈구할 정도의 여유가 있을 리 없다.


더구나 사무엘상 마지막 장에서 사울의 죽음은 스스로 칼에 엎드려 죽은 것으로 나온다. 또한, 사무엘상 31장 4절에서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고 고백한 사울이 할례 받지 않은 아말렉 청년에게 자기 죽임을 요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말렉 청년은 자신이 사울을 죽여 그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거짓으로 보고한다. 다윗을 통하여 보상을 기대했던 청년은 일생일대의 오판을 한 것이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우리도 삶 속에서 진실을 왜곡하여 자신만의 실리를 채우려고 하는 인간적인 생각 때문에 혹시 갈등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개인 관계보다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시선과 관점


슬픔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이 다르다. 다윗은 아말렉 청년이 전하는 사울왕의 죽음 소식을 듣고 자기 옷을 잡아 찢으며(11절) 슬퍼하고 울며 금식한다(12절). 다윗의 이러한 행위는 인간적으로 사뭇 이해하기 힘들다.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히고 심지어 죽이려했던 상대의 죽음에 슬퍼할 이유가 사실은 없을 것이다. 자기 옷을 찢고 해가 질 때까지 금식하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전례에서 극렬한 슬픔이 있을 때 하는 애도 행위였다(삼하 3:35).


여기서 다윗은 개인적인 은원(恩怨)관계를 떠나 더 큰 관점에서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죽음을 통한 여호와의 이름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짓밟힌 것을 통분히 여긴 것이다(박윤선 성경주석 사무엘서). 우리도 싫고 좋음의 개인적인 관계성만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관점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가?


저녁때까지 슬퍼하며 금식한 후 다윗은 그 소식을 전한 아말렉 청년을 다시 불러 심문한다. “너는 어디 사람이냐?(13절)”라고 물은 것은 사실을 재확인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아말렉은 불과 며칠 전 다윗과 전쟁을 벌였던 민족이며 하나님이 사울 왕에게 진멸을 명하셨던 족속이다. 사울왕의 죽음에 아말렉 족속 사람이 결부되어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여하튼 보상을 바라던 아말렉 청년은 다윗의 반응에 적지 않게 당황했을 것이다. 상황이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전혀 다른 형국으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14절을 보면 다윗은 이 어리석은 아말렉 청년에게 죽임을 명한 명백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라는 질문이다.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메쉬아흐 예호와)”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총 11회 사용되었으며 거의 대부분이 사무엘서에 나온다. 사울은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사울을 죽인 행위는 여호와의 주권을 침해한 종교적인 범죄가 된다(카리스종합주석 사무엘하 1-12장).


다윗은 시종일관 사람과 사람의 인간적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의식하고 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이름이 적들에게 능욕 받는 것에 대한 거룩한 분노가 있었다.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천시되는 일들에 다윗과 같은 거룩한 분노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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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고훈 목사(진리샘교회)
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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