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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매일 큐티

말씀 QT_슬픔의 현장에서 기이한 사랑을 노래하다
2020-10-02

사무엘하 1장 17-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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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18. 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19.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20.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21.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니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됨이로다
22.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23.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24.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25.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네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26.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27.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무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다윗이 부르는 ‘활의 노래’


사람은 사랑하는 자가 죽을 때, 애가(哀歌)를 지어 죽음을 애도하다. 사울은 한때 다윗의 정적이었으며 자신의 목숨을 노리던 왕이었다. 하지만 죽음을 애도하는데 있어서 다윗은 사울과의 지난 과거를 모두 묻고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한다. 그것은 다윗이 개인적으로 애가를 지었을 뿐 아니라 그 애가를 유다 족속 전체에게 가르치라 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애가의 첫 문장에서 다윗은 자신이 사랑하던 친구 요나단뿐만 아니라 자신을 죽이려던 사울마저도 ‘용사’로 칭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슬픔을 노래한 이 애가는 성경의 시편에는 기록되지 않았고 당시 전승 되던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다(18절). ‘야살의 책’은 ‘의인의 책’이라는 뜻으로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야살의 책’에 기록된 이 ‘활의 노래’를 통하여 우리는 다윗의 진실한 성품을 엿볼 수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 하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진정으로 실천할 수 있는 인격이 나에게 갖추어져 있는가?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려졌도다.”라는 애가의 후렴구는 반복적으로 사용되어(19절, 25절) 다윗의 안타까운 심정을 대변한다. 게다가 그것은 개인적 차원의 슬픔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공동체적인 슬픔임을 강조한다. 다윗은 더 나아가 이 소식이 적국인 블레셋 족속에게 즐거움이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20절).


21절에서 다윗은 심지어 두 용사가 죽임을 당한 ‘길보아 산’을 향하여 저주를 선포한다.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라는 다윗의 저주는 그 산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왕과 그 아들들이 죽임을 당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다윗이 자신의 개인적인 슬픈 감정 중에서도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얼마나 신실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단면이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기억하며 높여 드릴 수 있는가?


기이한 사랑을 추억하고 애도함


모든 죽음에는 슬픔이 있다. 다윗은 특별히 개인적 차원에서 요나단의 죽음을 깊이 슬퍼한다. 물론 사울과 요나단의 용맹함을 ‘활의 노래’에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특별히 다윗에게 있어서 요나단의 죽음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다윗은 25절에서 “요나단이 네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라고 개인적으로 그를 언급한다. 26절에서는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이라는 말로 그 안타까움을 절실히 노래하고 있다. 심지어 26절 하반절에서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라고 요나단과의 추억을 애도한다. 여기에 ‘기이하여(니플레아타)’는 주로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드러내는데 사용되었다(시9:1).


‘기이하다’라는 뜻은 흔하지 않다는 것이요, 일반적이지 않다는 뜻도 될 것이다. 요나단에게 있어서 다윗과는 자신의 왕위 계승을 위협할 사람이요, 아버지가 가장 싫어하던 적대적인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현실적 상황을 넘어선 우정이 있었다. 다윗은 이러한 요나단의 우정을 ‘기이하다’라고 노래한다.


이제 사랑하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떠나가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사람과의 ‘기이한 사랑’을 기억하며 추억하고 있다. 우리도 이러한 ‘기이한 사랑’을 이미 받은 존재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허물로 죽은 나를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다(롬 5:8).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도 ‘기이한 사랑’의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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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고훈 목사(진리샘교회)
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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