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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QT_순종의 결과는 순리대로 흘러감이다
2020-10-03
사무엘하 2장 1-11절1.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2.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을 데리고 그리로 올라갈 때에 3. 또 자기와 함께 한 추종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다윗이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읍에 살게 하니라 4.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 5.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령들을 보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그를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 6.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7. 이제 너희는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지어다 너희 주 사울이 죽었고 또 유다 족속이 내게 기름을 부어 그들의 왕으로 삼았음이니라 하니라 8. 사울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 9.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더라 10.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이스라엘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사십 세이며 두 해 동안 왕위에 있으니라 유다 족속은 다윗을 따르니 11.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칠 년 육 개월이더라 하나님의 뜻을 묻는 질문, “어디로 가리이까?”믿음은 순종으로 연결된다. “어디로 가리이까?”라는 질문은 하나님의 뜻을 묻는 질문이다. 사울이 죽은 후에도 일정 기간 블레셋 땅 시글락에 머물고 있던 다윗이 하나님께 여쭈었던 질문이다. 먼저 질문한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라는 질문이 블레셋 땅을 떠나 유다 성읍으로 가야 하겠다는 당위성이 있었던 질문이었다면, ‘올라가라’는 응답을 듣고 “어디로 가리이까?”라고 다시 여쭈었던 질문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의탁한 질문이었다.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 왕가는 죽음으로 그 막을 내렸고, 혼란한 정국이 다윗의 앞에 놓여 있었다. 당시 시글락 땅은 여전히 블레셋이 점령한 지역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북쪽에는 사울을 추종하였던 군대장관 아브넬이 이끄는 사울의 군대가 남아 있었다. 하나님이 명하신 곳은 헤브론이었다. 헤브론은 예루살렘 남쪽 약 30Km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리브가와 레아가 장사된 곳이다. 또한 도피성이 있던 곳이고(수20:7) 유다 지파의 영토 안에 있었다. ‘헤브론’의 뜻은 ‘연합’ 또는 ‘친교’이다. 왕위 계승을 앞둔 다윗에게 나름의 의미가 있는 땅이었다.이러한 상황 속에 다윗은 자신의 가야 할 바를 하나님께 묻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 속에서 가장 적실한 방향과 목적을 제시하신다. 하나님의 지시와 응답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바탕이 될 때 우리는 기꺼이 순종할 수 있게 될 것이다.하나님의 뜻을 묻고 순종한 결과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결과는 명확하다. 다윗은 그의 두 아내 아히노암과 아비가일을 데리고 헤브론으로 올라간다. 이미 다윗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그래서 다윗은 그들과 그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읍에 머물며 살게 한다. 그들은 다윗이 어려울 때 동고동락(同苦同樂)하던 이들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갈 곳을 정한 다윗은 잊지 않고 그들에게도 기거할 곳을 정해 주었다. 연이어 유다 사람들은 기름을 붓고 다윗을 유다 족속의 왕으로 세운다.다윗은 일생동안 세 번의 기름부음을 받는다. 첫째는 사무엘에게서(삼상 16:13), 둘째는 본 장에서 유다의 장로들로부터(삼하2:4), 셋째는 7년이 지난 후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온 이스라엘 왕으로 세움을 받는다(삼하 5:3).삼하 2장에서 다윗은 아직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순리대로 정리하고 있다. 먼저 사울의 시신을 매장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령을 보내 하나님의 복을 빌고, 자신도 그들의 선한 일에 보상을 약속한다. 이것은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된 이후 행한 첫 명령이었다. 그 와중에 사울의 군 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사울의 남은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는다. 갈등의 형국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헤브론 땅으로 가서 정착한 다윗과 그의 왕권 강화는 순적하게 진행된다. 순종의 결과는 순리대로 진행되는 모습에서 분명하게 찾을 수 있다.나 자신은 최근 어떤 리더십에 조금 더 순종해야 할까?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고훈 목사(진리샘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슬픔의 현장에서 기이한 사랑을 노래하다
2020-10-02
사무엘하 1장 17-27절17.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18. 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19.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20.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21.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니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됨이로다 22.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23.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24.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25.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네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26.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27.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무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다윗이 부르는 ‘활의 노래’사람은 사랑하는 자가 죽을 때, 애가(哀歌)를 지어 죽음을 애도하다. 사울은 한때 다윗의 정적이었으며 자신의 목숨을 노리던 왕이었다. 하지만 죽음을 애도하는데 있어서 다윗은 사울과의 지난 과거를 모두 묻고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한다. 그것은 다윗이 개인적으로 애가를 지었을 뿐 아니라 그 애가를 유다 족속 전체에게 가르치라 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애가의 첫 문장에서 다윗은 자신이 사랑하던 친구 요나단뿐만 아니라 자신을 죽이려던 사울마저도 ‘용사’로 칭송하고 있기 때문이다.인간적인 슬픔을 노래한 이 애가는 성경의 시편에는 기록되지 않았고 당시 전승 되던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다(18절). ‘야살의 책’은 ‘의인의 책’이라는 뜻으로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야살의 책’에 기록된 이 ‘활의 노래’를 통하여 우리는 다윗의 진실한 성품을 엿볼 수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 하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진정으로 실천할 수 있는 인격이 나에게 갖추어져 있는가?“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려졌도다.”라는 애가의 후렴구는 반복적으로 사용되어(19절, 25절) 다윗의 안타까운 심정을 대변한다. 게다가 그것은 개인적 차원의 슬픔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공동체적인 슬픔임을 강조한다. 다윗은 더 나아가 이 소식이 적국인 블레셋 족속에게 즐거움이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20절).21절에서 다윗은 심지어 두 용사가 죽임을 당한 ‘길보아 산’을 향하여 저주를 선포한다.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라는 다윗의 저주는 그 산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왕과 그 아들들이 죽임을 당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다윗이 자신의 개인적인 슬픈 감정 중에서도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얼마나 신실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단면이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기억하며 높여 드릴 수 있는가?기이한 사랑을 추억하고 애도함모든 죽음에는 슬픔이 있다. 다윗은 특별히 개인적 차원에서 요나단의 죽음을 깊이 슬퍼한다. 물론 사울과 요나단의 용맹함을 ‘활의 노래’에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특별히 다윗에게 있어서 요나단의 죽음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었다.다윗은 25절에서 “요나단이 네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라고 개인적으로 그를 언급한다. 26절에서는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이라는 말로 그 안타까움을 절실히 노래하고 있다. 심지어 26절 하반절에서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라고 요나단과의 추억을 애도한다. 여기에 ‘기이하여(니플레아타)’는 주로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드러내는데 사용되었다(시9:1).‘기이하다’라는 뜻은 흔하지 않다는 것이요, 일반적이지 않다는 뜻도 될 것이다. 요나단에게 있어서 다윗과는 자신의 왕위 계승을 위협할 사람이요, 아버지가 가장 싫어하던 적대적인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현실적 상황을 넘어선 우정이 있었다. 다윗은 이러한 요나단의 우정을 ‘기이하다’라고 노래한다.이제 사랑하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떠나가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사람과의 ‘기이한 사랑’을 기억하며 추억하고 있다. 우리도 이러한 ‘기이한 사랑’을 이미 받은 존재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허물로 죽은 나를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다(롬 5:8).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도 ‘기이한 사랑’의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고훈 목사(진리샘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거룩한 분노를 발하다
2020-10-01
사무엘하 1장 1-16절1.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쳐죽이고 돌아와 다윗이 시글락에서 이틀을 머물더니 2. 사흘째 되는 날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영에서 나왔는데 그의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그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3. 다윗이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 왔느냐 하니 대답하되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하니라 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너는 내게 말하라 그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가운데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5. 다윗이 자기에게 알리는 청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6. 그에게 알리는 청년이 이르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가 보니 사울이 자기 창에 기대고 병거와 기병은 그를 급히 따르는데 7. 사울이 뒤로 돌아 나를 보고 부르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 8.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그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9. 또 내게 이르시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 중에 있나니 청하건대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10. 그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의 곁에 서서 죽이고 그의 머리에 있는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하니라 11.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12.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13. 다윗이 그 소식을 전한 청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15. 다윗이 청년 중 한 사람을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그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16. 다윗이 그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언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전환의 국면 속에서 발견된 거짓과 갈등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역사의 국면이 전환되고 주인공이 바뀌었다. 사무엘상 마지막 장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 왕과 그 아들들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사울왕은 사라졌다. 새로운 국면에서 주인공이 된 다윗은 또 다른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그들의 거처였던 시글락에 머물고 있다(1절).물론 히브리 성경은 열왕기서와 사무엘서를 한 권으로 보기에 이런 구분이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제 다윗을 핍박하던 사울이 죽음으로 그가 역사의 전면부에 서게 된 것은 확연해진다. 우리는 모든 역사의 흐름이 사람의 직급과 능력 여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2절~10절을 보면 아말렉의 한 청년이 등장한다. 그는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사울의 왕관과 팔 고리를 다윗에게 전한다. 스스로 자신을 아말렉 사람이라고 밝힌 것을 제외하고, 그가 전하는 소식에는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 먼저, 그가 우연히 올라간 길보아산에서 적의 병거와 기병이 급히 따르는 와중에(6절) 사울 왕이 그를 불러 자신을 죽여 달라고 했다는 점이다. 사울이 그 급박한 상황 속에서 군대와 상관없는 일개 청년에게 죽음을 갈구할 정도의 여유가 있을 리 없다.더구나 사무엘상 마지막 장에서 사울의 죽음은 스스로 칼에 엎드려 죽은 것으로 나온다. 또한, 사무엘상 31장 4절에서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고 고백한 사울이 할례 받지 않은 아말렉 청년에게 자기 죽임을 요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말렉 청년은 자신이 사울을 죽여 그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거짓으로 보고한다. 다윗을 통하여 보상을 기대했던 청년은 일생일대의 오판을 한 것이다.그 결과는 참혹했다. 우리도 삶 속에서 진실을 왜곡하여 자신만의 실리를 채우려고 하는 인간적인 생각 때문에 혹시 갈등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개인 관계보다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시선과 관점슬픔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이 다르다. 다윗은 아말렉 청년이 전하는 사울왕의 죽음 소식을 듣고 자기 옷을 잡아 찢으며(11절) 슬퍼하고 울며 금식한다(12절). 다윗의 이러한 행위는 인간적으로 사뭇 이해하기 힘들다.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히고 심지어 죽이려했던 상대의 죽음에 슬퍼할 이유가 사실은 없을 것이다. 자기 옷을 찢고 해가 질 때까지 금식하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전례에서 극렬한 슬픔이 있을 때 하는 애도 행위였다(삼하 3:35).여기서 다윗은 개인적인 은원(恩怨)관계를 떠나 더 큰 관점에서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죽음을 통한 여호와의 이름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짓밟힌 것을 통분히 여긴 것이다(박윤선 성경주석 사무엘서). 우리도 싫고 좋음의 개인적인 관계성만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관점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가?저녁때까지 슬퍼하며 금식한 후 다윗은 그 소식을 전한 아말렉 청년을 다시 불러 심문한다. “너는 어디 사람이냐?(13절)”라고 물은 것은 사실을 재확인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아말렉은 불과 며칠 전 다윗과 전쟁을 벌였던 민족이며 하나님이 사울 왕에게 진멸을 명하셨던 족속이다. 사울왕의 죽음에 아말렉 족속 사람이 결부되어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여하튼 보상을 바라던 아말렉 청년은 다윗의 반응에 적지 않게 당황했을 것이다. 상황이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전혀 다른 형국으로 치달았기 때문이다.14절을 보면 다윗은 이 어리석은 아말렉 청년에게 죽임을 명한 명백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라는 질문이다.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메쉬아흐 예호와)”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총 11회 사용되었으며 거의 대부분이 사무엘서에 나온다. 사울은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사울을 죽인 행위는 여호와의 주권을 침해한 종교적인 범죄가 된다(카리스종합주석 사무엘하 1-12장).다윗은 시종일관 사람과 사람의 인간적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의식하고 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이름이 적들에게 능욕 받는 것에 대한 거룩한 분노가 있었다.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천시되는 일들에 다윗과 같은 거룩한 분노가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고훈 목사(진리샘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마지막 인사와 축복
2020-09-30
골로새서 4장 10-18절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1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17.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18.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동역자의 중요성이 강조모든 교회와 성도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유대인 출신 아리스다고, 마가, 예수 유스도, 그리고 이방인 출신인 에바브라, 누가, 데마를 소개하며 골로새 교인들에게 인사한다. 이들의 이름이 언급된 것은 단순히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문안 인사하는 정도의 관계성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바울에게 동역자들로 그들과 함께 전도하며 여행을 했고, 또 감옥에 함께 투옥되었던 고난을 내포하는 것이다.바울 혼자 전도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많은 동역자들이 함께 수고하며 전도하고 있음을 말하며 다시 한번 골로새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계속 이어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유대인 출신의 동역자들이 함께 동역했다는 것은 복음이 얼마나 널리 퍼져가고 있는지를 말해준다.다시 유대인들 대부분은 제자들의 전도 사역에 동참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싫어하고 방해하는 입장이었다. 11절에서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할례파는 곧 유대인 출신임을 의미하며 ‘이들만은’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 세 명의 동역자가 유대인 출신으로 얼마나 희귀했는지를 강조한다.그리고 유대인에게 복음이 흘러가고 있으며 더 나아가 유대인 출신의 동역자와 함께 하는 것이 바울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아울러 이 소식을 통해 골로새 교인들 역시 큰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복음을 전하는 사명의 중요성사명은 계속되야 한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골로새 교회와 연관성을 가진 곳에도 문안하며 인사한다. 그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모든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에까지 퍼져가도록 권면한다.그들은 바로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는 에바브로가 이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하였기 때문에 연관성이 있다. 또한, 빌레몬의 아들로 여겨지는 아킵보는 당시 에바브로의 투옥과 관련하여 이를 대신하여 골로새 교회를 섬기고 있는 직분자일 것이다.즉, 골로새 교회와 관련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두 복음 전파의 사명을 붙들 것을 요청한다. 그 사명의 중요성과 가치를 지금 성경을 읽는 우리에게도 전해진다.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바울의 투옥 상황을 언급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멈추지 않기를 권면한다. “나의 매인 것을 생각하라”에서 ‘생각하라’ (μνημονεύω 므네모뉴오)는 ‘기억하다, 인식하다’의 뜻이다. 기도 중에 어떤 것을 상기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지금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자신의 복음 전파 사명을 본받고 이어받으라”고 말한다. 즉, 이는 권면과 동시에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복음의 사명이 계속되어야 함을 묵상하며 기도해야 하겠다.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백성훈 목사(이름없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기도와 외인에 대한 권면
2020-09-29
골로새서 4장 2-9절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4.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5.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8.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기도에 대한 권면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항상 기도해야 한다. ‘감사하라’는 말은 앞선 3장 17절의 ‘감사하라’와 연결된다. 결국 새사람의 옷을 입은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영역에 대하여 감사해야 함을 강조한다.그런데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가 하면 계속 기도함으로 감사해야 한다. 기도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살전 5:17) 한다. 여기서 ‘계속’과 ‘쉬지 말고’는 사도 바울이 기도를 강조하면서 사용한 중요한 표현이다. 곧 “깨어 있으라”를 실천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소개된다.이 기도의 가르침은 결국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소망하는 성도의 기다림으로 완성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오심의 때를 미리 알지 못하기에 깨어 있으라고 말했다(마 25:13). 따라서 여기서 ‘계속’은 단순히 지속하라는 의미를 넘어 재림에 대한 성도의 깨어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기도는 성도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한다. 기도는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대한 소망의 원동력이 된다.또한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향한 기도의 권면을 복음 전파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는 표현은 현재 바울이 감옥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중단된 복음 전파의 사명이 골로새 교인들로 인하여 계속되기를 권면한다.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여기서 ‘기도’는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대한 소망이 전제되어 있다. 기도가 복음 전파로 연결되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우리의 일반적인 모든 기도에 대하여 재림과 복음 전파의 개념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외인에 대한 권면거짓을 분별하고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하다. 5절에서 ‘외인’이라는 말은 이단에 속한 자들을 포함한다. 그들에게 지혜로 행하라는 것은 고린도전서 2장 7절에서 언급한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의미한다.이는 당시 골로새 교회의 거짓 교사들이 가르치는 지혜와 비교된다. 결국, 계속 기도함이 복음의 전파로 귀결된다. 또한, 하나님의 지혜가 거짓 교사들을 대하는 것으로 귀결되면서 골로새 교회가 밖으로는 복음을 전하고, 안으로는 거짓 진리에 대응하며 교회의 참다운 모습을 회복해 나가게 된다.이것이 골로새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면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이 권면을 실천해야 한다.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는 명령형으로 이를 강조하고 있다. 즉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서 이 권면을 실천하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제 바울은 이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그 복음의 전파와 하나님의 지혜를 행해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즉, 자신과 골로새 교회의 설립자인 에바브로의 투옥 소식을 자세히 알려 줌으로 설득력을 더한다.바울은 이를 위해 자신의 사정을 알려줄 사람으로 두기고와 오네시모를 골로새 교회로 보낸다. 두기고는 바울의 3차 전도여행 때 수행을 했던 사람이다. 오네시모는 원래 골로새 교회의 교인인 빌레몬의 종이었고 후에 바울을 만나 개종한 사람이다.바울은 이들을 통해 소식을 전함으로 골로새 교회가 거짓 교사들의 방해를 이겨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로 일어설 것을 권면한 것이다. 이 사실은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방향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준다.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백성훈 목사(이름없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 된 자의 삶
2020-09-28
골로새서 3장 12-4장 1절3장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4장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새사람의 옷을 입어야새사람의 옷을 입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평강을 주신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새사람의 옷을 입게 되었음을 말한다. 여기서 새사람의 옷은 무엇인가?12절의 “옷을 입으라”에서 명령형인 ‘입으라’(엔뒤시스데)는 구체적으로 다음 5가지의 옷을 의미한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의 옷이다. 새사람의 옷은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부터 시작된다.14절에서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는 말씀으로 다시 강조된다. 그 사랑이 더해진 새사람의 모습은 우리의 삶으로 깊이 스며들어 13절에서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함으로 이어진다. 특히 ‘자비’(크리스토테타)는 일반적인 개념보다 더 전문적이고 극단적인 자비를 의미한다. 따라서 “용납해 보라” 또는 “용서해 보라”의 부탁이 아니라 ‘용납하라, 용서하라’와 같은 명령이다.이제 새사람의 옷을 입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거하게 된다. 15절에서는 이 새사람의 옷을 입음으로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됨을 말한다. ‘주장하다’(브라뷰오)는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사용되었으며 ‘주관하다, 통치하다’의 의미다.따라서 새사람의 옷을 입어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를 주관하도록 해야 한다. 이 문장은 16절과 17절의 ‘감사하라’로 이어지며 ‘감사할 수 있게 된다’로 연결된다.새사람의 옷을 입은 자의 생활모든 일과 모든 관계를 그리스도의 평강 안에서 대해야 한다. 18절 이하는 새사람의 옷을 입은 자의 생활에 대해 말한다.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 종들과 상전의 관계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을 어떻게 나타내야 하는지를 말함과 동시에 이 모든 영역들이 곧 23절의 ‘무슨 일을 하든지’로 귀결된다.아울러 모든 관계는 상호 간에 관계로 맺어진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권면한다. ‘복종하다’ ( 휘포탓소)는 순순히 복종하라는 의미로 예수님이 하나님께 복종했다는 전제로 말하고 있기에 질서 앞에 복종하는 개념을 말한다.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는 구절에서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복종은 앞서 새사람의 옷을 설명하며 언급한 겸손과 연결되는데 겸손한 마음이 복종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또한, 남편들은 아내를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 이는 단순한 부부관계를 넘어 남편에게 그리스도의 평강 안에 있어야 함을 요청하고 있다. 그 평강이 아내를 사랑하여 돌보게 한다.자녀들이 부모에 대하여 순종하는 것 또한 아내의 남편에 대한 복종과 같은 의미이다. 단지 자녀들의 복종은 ‘모든 일’이라는 표현으로 아내의 복종보다 더 강조되고 있다. 반면 아비들은 자녀를 노엽게 하여 낙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종들은 상전에게 복종하되 ‘정직함’의 개념으로 강조된다.상전은 종들과 그리스도의 평강이 전제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 전제를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무슨 일을 하든지”는 17절의 “무엇을 하던지”와 함께 삶의 전 영역에 해당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새 사람의 옷을 입은 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관계를 맺고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백성훈 목사(이름없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찾을 것과 버릴 것
2020-09-27
골로새서 3장 1-11절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위의 것을 찾아야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 위의 것을 찾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전 단락도 ‘그러므로’로 시작했고, 1절에서 4절까지의 소단락이 끝나고 5절이 시작될 때도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지는 인과관계를 통해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이 선명하게 대조된다.‘위의 것과 땅의 것’, ‘옛 생명과 새 생명’, ‘옛 사람과 새 사람’과 같이 반복되는 선명한 비교를 통해 우리가 찾고, 생각하고, 입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게 된다. 우리는 위의 것을 찾아야 한다.“위의 것을 찾으라!”는 말은 결국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추구하라는 말이다(1절). 여기서 ‘찾으라’(ζητεῖτε, 제태이테)는 말은 광범위한 의미가 있다. 문맥상 목적이나 방향감각에 대한 추구를 의미할 수 있다. 즉, 온 종일 종교 생활에 심취하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행동하는 삶의 원리를 위에서 찾으라는 말이다.이미 십자가에 못 박은 내 생명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새로운 생명에 집중하라는 말이다(3절). 예수 안에서 새롭게 된 자아를 통해 새로운 방식의 삶을 살아내라는 말이다.‘찾으라!’, ‘생각하라!’는 현재 명령형으로 쓰여, 자연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해 의지를 가지고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거짓 교사들이 땅의 것을 찾는 활동을 하는 것과 대등하게 위의 것을 찾는 사람도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그러나 땅의 것을 찾는 자들이 자신의 자격을 스스로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면, 위의 것을 찾는 자들의 노력이란 그 은혜로 시작한 일을 끝까지 은혜로 마치고자 하는 노력이다. 예수님은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을 것이다.”라고 자주 말씀하셨다.사도 바울도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라고 말했다.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의 전적인 은혜로 시작된 구원을 끝까지 은혜의 선물로 여기는 삶을 지속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놓치지 않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새 사람의 생활이 가능해진다.옛 사람을 벗어야옛 사람을 벗는 것은 새 사람을 입는 것과 다른 말이 아니다. 위의 것을 찾는 사람은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땅에 있는 지체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을 죽인다. 그러나 골로새 교회에는 아마 위의 것을 찾아야 할 성도들이 땅의 지체에 속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 같다.서로 싸우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부끄러운 말과 거짓말 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아직도 우리는 이런 교회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살던 옛 사람의 모습이다(7절).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벗어 던져야 한다.옛 사람을 벗는 것은 새 사람을 입는 것과 다른 말이 아니다. 새 사람을 입었지만 옛 사람을 벗어야 하는 새로운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식의 접근이 오히려 거짓 교사들에게 미혹 당하는 이유다. 새 사람을 입으면 자연스럽게 옛 사람을 벗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찾고 새롭게 된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면 결코 옛 사람을 벗을 수 없다.새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무엇인가? 그들에게는 차별이 없다(11절). 왜 그런가?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생각해 보라. 먼저 포도원에 들어와 일한 사람이나 늦게 포도원에 들어와 일한 사람이나 똑같은 삯을 받았다. 먼저 와서 열심히 일한 사람이 나중에 와서 덜 일한 사람과 비교하며 화가 난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옆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정작 주인과 자신이 한 약속은 유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새 사람은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놓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차별하여 대우하지 않는다.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김성호 목사(따뜻한 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성장의 비결
2020-09-26
골로새서 2장 16-23절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20.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잘못된 시도육체의 것으로 육체를 금하기 때문에 성장이 없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거짓 교사들이 음식이나 거룩한 날들에 대한 규례들을 가지고 너희들을 비판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16절),”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18절).”고 말한다.여기서 ‘정죄하다’(καταβραβευέτω,카타브라붸토)라는 말은 “심판관 혹은 상을 주는 사람으로 행동하다”라는 의미이다. 즉, 거짓 교사의 비판에 신경 쓰거나 그들을 심판자가 되게 하여 그들의 말에 묶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왜냐하면 그들이 비판하고 판단하는 근거는 모두 그림자(σκιὰ, 스키아)와 같은 것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17절). 먹고 마시는 것과 관련된 것들과 거룩한 날짜와 관련된 것들은 모두 장래에 나타날 것에 대한 그림자일 뿐이지, 실재가 아니다. NIV 성경에서는 17절에 몸(σῶμα,소마)을 reality로 번역한다. 왜냐하면 ‘σῶμα’는 문맥에 따라 몸(body) 혹은 실재(reality)로 번역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오늘 본문 19절에 몸(σῶμα,소마)은 body로 번역된다.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본 것에 의지하여, 그들의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여, 그림자가 마치 실재인 것처럼 만들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지키는 규례(그림자)가 병든 자를 고치고 자유하게 하는 것(실재)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하였다. 즉, 이런 그림자를 실재보다 더 중요한 ‘종교’를 고안해 낸 사람들이었다(18절). 이런 종교에도 유익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자기 자신을 숭배하게 하거나 겸손하게 보이는 기술을 연마하거나 몸을 괴롭게 하여 경건하게 보이는 데는 유익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육체를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23절). 신앙생활을 오래 해도 성장이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육체의 것으로 육체를 제어하려고 하기 때문에 성장이 없다.우리는 많은 걱정과 고민을 하면서 살아간다. 미래에 대한 걱정, 건강에 대한 염려, 관계에 대한 고민, 가족들과 연관된 복잡한 문제들이 끊이지 않는다. 아무리 오래 신앙생활을 해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고민을 반복하면서 쳇바퀴 돌 듯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다시 힘을 내서 기도도 해보고, 성경도 읽어보고, 예배도 더 열심히 참석해 보지만 오히려 더 회의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왜 그럴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그리스도의 몸으로 살기그리스도에게 연결된 몸만 성장이 있다. 모든 육체의 욕망이 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나친 욕망은 언제나 우리를 파멸하게 만든다. 그래서 내 욕망을 해결하기 위한 종교는 파멸을 막지 못한다. 성도의 성장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머리이신 예수님에게 연결된 몸일 때만 성장이 일어난다(19절).내 욕망과 연결된 몸은 그저 육체(flesh)일 뿐이다. 그리스도께 연결된 몸(σῶμα, 소마)은, 그림자가 아니다. 그것이 실재요, 육체(flesh)를 넘어서는 것이다.그러므로 그림자와 같은 것을 실재인 것처럼 속이며, 자기를 숭배하는 육체의 종교를 조장하는 세상의 초등학문에 대해 죽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갈 5:24).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이제 더 이상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을 때처럼 세상에서 살던 방식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붙잡지도, 맛보지도, 만지지도 말아야 한다. 오직 그분만 붙잡고, 맛보고, 만져야 한다.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김성호 목사(따뜻한 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예수님께 사로잡히기
2020-09-25
골로새서 2장 8-15절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거짓된 교훈에 사로잡히는 이유은혜의 복음을 붙들어야 거짓된 것에 속지 않는다. 사도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주의하라고 명령한다. 누군가 거짓된 교훈으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성도들을 사로잡을 생각이다.속임수의 특징은 속이는 것을 감추는 것이다. 거짓 교사들은 예수를 믿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를 믿는 것은 좋은 시작이라고 격려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예수를 믿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처럼. 이처럼 속임수는 교묘하기 때문에 주의하지 않으면 어느새 거짓된 교훈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복음을 듣고 성도가 된 그들이 거짓된 교훈에 이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은혜의 복음을 오해하기 때문이다. 거짓 교사들은 그리스도가 아닌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르는 사람들이다(8절). 그들이 따르는 바에 의하면,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과정은 일정한 자격을 획득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영적 체험이나 특별한 지식을 갖는 것이나 금욕적인 생활이 필요하다거나 특별한 규례와 규칙을 잘 준수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격을 획득해야 한다. 언뜻 들으면 너무나 공평하고 합리적인 생각이 아닌가? 그러나 누가 그런 자격을 획득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의 복음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나 이런 거짓된 교훈에 속을 수밖에 없다.종교적으로 누구보다 더욱 열심인 사람들이 이단에 더 잘 빠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은혜의 복음을 오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이르기 위한 자격을 획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런 자격을 확실하게 얻고 싶기 때문에, 은혜의 복음을 버리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 안에 머물지 않고, 주의하지 않으면 우리도 언젠가 미혹될 수 있다. 이 시대의 가장 현명한 사고라고 여겨지는 철학과 헛된 속임수는 계속해서 은혜의 복음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그리스도께 사로잡혀야 할 이유예수님 외에는 더 필요한 것이 없다. 거짓 교훈에 미혹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신성의 모든 충만이 예수의 육체 안에 있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다(9절). 하나님께로 나아갈 방법이 예수 밖에는 없다는 확신에 거하는 것이다. 예수 안에 있는 신성의 충만한 것을 보고, 오직 예수 안에서만 사는 것이 유일한 비결이다.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 안에서’라는 말을 반복한다(10, 11, 12절). 예수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해 마음의 할례를 받고, 세례를 받는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기도 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어나기도 한다. 예수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는 사해지고, 우리에게 불리한 법조문도 지워진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이 아무리 정죄해도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고 자유롭게 된다.‘Jesus + Nothing = Everything’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한국어로 번역된 책의 제목은 ‘Jesus All’이다. 복음에는 어떤 것도 덧붙일 것이 없으며, 오히려 덧붙일수록 복음을 훼손하게 될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문구들이다. 우리는 마치 예수님이 부족한 것처럼 예수님 밖을 기웃거린다.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일이 마치 부족한 것처럼 무엇인가를 더 보태려고 하지 말자.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충분한 것을 보도록 더욱 예수님께 사로잡혀야 한다. 그것이 전부다.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김성호 목사(따뜻한 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우리는 누구인가?
2020-09-24
골로새서 1장 24-2장 5절1장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2장1.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4.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영광의 소망을 따라 사는 자고난이 기쁨이 되는 이유는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때문이다. 바울은 교회를 위해 받는 자신의 고난으로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11-12).”이처럼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과 더불어 기뻐하며 즐거워하였다. 심지어 자신이 받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24절)으로 표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음을 즐거워한다.이에 덧붙여 바울은 자신이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가르쳐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밝히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사명과 목적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로 인해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에게도 같은 사명과 목적을 제시하며 함께 할 것을 당부한다.이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소망을 따라 세상 가운데 주를 전해야 하는 사명자다. 이것을 깨닫는 것으로 우리는 주님의 남은 고난 속에서도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게 된다.믿음 위에 서는 자믿음 위에 설 때 흔들리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깨닫게 된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은 다음과 같이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느니라(3절).” 곧 이단의 가르침에 흔들리고 있는 골로새 교인들을 향해, 너희들이 깨닫게 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이 담겨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족함을 주장하며 성도들을 교묘하게 흔들어 놓는 이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선 더욱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머물러야 하며, 지금과 같이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 함을 선포하고 있다.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세상의 지식과 철학에 신앙이 쉽게 흔들린다. 바울이 말한 골로새 교회의 규모와 믿음의 굳은 것을 우리의 신앙 속에서도 이루어 내어 어떤 속임수에도 흔들림 없는 신앙생활을 이루어야 한다.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조병옥 목사(움직이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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